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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Apr 27. 2020

입대 전엔 대한의 아들, 입대 후에는 느그아들

코딩하는 공익

  이제 신분상 완벽한 민간인이다. 공노비의 신분에서 탈출이다. 2등 시민에서 1등 시민으로. 일부 잃어버렸던 인권을 회복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 웰컴 백!


  사회복무제도는 유엔 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인정한 강제노역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지적했다가 2018년 12월에 대구지방병무청으로부터 수 차례 경고를 받았고, 구체적인 징계를 거론하는 위협도 받았고, 게시물을 검열당하기도 했다. 정부가 개입하여 출판을 저지당하거나 내용물에 수정을 당한 문학 작품을 금서라고 한다. 필자는 21세기에 금서 작가라는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여튼.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일단은 훈련 중 손상된 신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필자는 2018년 6월 11일 대구의 50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입소했다. 훈련을 2주 정도 받았을 무렵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화요일 아침, 기상체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왼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26년 인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통증을 느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뼈가 부러져 본 적이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이게 골절이라는 거구나."


  도무지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훈련을 다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필자는 중대장 훈련병이었다. 제식이 올바르지 않으면 따로 지적을 받았는데, 왼 발이 아픈데 어떻게 제식을 칼같이 하나. '뒤로 돌아' 동작이 제일 아팠다.


  신교대 대대 의무대를 방문했다. 여기는 엑스레이 기기가 없다. 다음날 사단 의무대로 이동했다. 아직 기억이 난다. 토요일이었다. 사단 의무대에서 x선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왠걸. 왼발에 뼛조각이 박혀 있었다. 쌀알 정도의 크기였다. 반깁스를 했다. 목발을 짚고 중대로 복귀했다. 중대장 훈련병이 깁스를 차면 어떡하냐며 꾸지람을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hban.tistory.com/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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