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대박을 꿈꾸는 남편
“나 유튜브 해도 돼?”
J는 회사를 잠깐 다니다 퇴사를 한 뒤, 이제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건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재취업을 포기(?)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그러다 내가 개인사업자를 내게 되자, 혹시 모르니 사업자 업종에 유튜버도 추가하자고 했다. 유튜브는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래 그러자.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찾아왔다. 사업자를 낸 지 한 달여만이었다.
"그래서 무슨 영상을 올릴 건데?"
"과일 리뷰를 할 거야."
작은 영화제지만 수상경력도 있고, 영화제 초청도 받아보고, GV(감독과의 대화)도 해봤다는 J다. 이런 프로영상촬영편집러인 남편이 유튜브 영상을 만들겠다고 하자, 퀄리티에 대한 신뢰는 있었다. 그런데 그 금손으로 과일 리뷰를? 심지어 아무 말 없이 깎기만 한단다.
1년도 안된 신혼이라 그런가, 씌어도 단단히 씌어서 뭘 해보겠다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그래, 한 번 해봐! 그때까지만 해도 영상 하나를 찍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장비를 사게 될 줄 몰랐다.
내가 Yes를 하자, 집에 택배가 연이어 도착하기 시작했다. J는 자신의 영화도 찍고 친구들의 영화에도 참여하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온갖 일을 했다 보니 촬영장비에 익숙했다. 이거는 꼭 있어야 하고, 이것도 있으면 좋고...
하얀 조명을 샀는데, 추가 조명으로 색색깔 불이 들어오는 전구를 또 산다고 했다. 거기다 그 전구를 위한 장스탠드도 필요했다. 잔잔한 젠더부터 촬영 소품까지 하루에 몇 박스씩 택배가 왔다.
널브러진 택배박스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니게 되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고퀄리티를 내려고 하는지, 삼각대만 서너 대가 되었다.
"얘는 어디꺼야?"
"아 그건 조명."
"이거는?"
"그건 카메라."
"이거는?"
"아 그것도 카메라. 아, 아니다 그것도 조명."
그렇게 택배 퍼레이드가 끝나고, 어지러워진 집안을 정리했다. 얼마 뒤, 진짜로 촬영을 시작했다. 과일 리뷰라는 아이디어를 낸 D가 카메라 앞에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짜로 아무 말 없이 사과를 깎기만 했다!
집안일에 능숙한 D는 역시 범상치 않은, 그러나 깔끔한 손놀림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촬영 어플 자체 문제나, 각종 값 설정 오류 때문에 첫 촬영일에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었다. 원 테이크(one take: 편집 없이 한 번에 촬영하는 기법) 영상이기에 오류가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과일을 깎아야 했다. 덕분에 그날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첫 영상에 대한 우리의 감상은 "졸린다"였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D의 손이 사과를 깎는 걸 지켜보다 보면, 특히나 저녁시간에는 슬며시 잠이 오려고 했다. asmr을 염두에 두고 찍은 건 아니었는데 사과를 깎는 '사각사각' 소리나 도마에 칼이 내리 꽂히며 나는 '탁'소리도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졸린다고 할까? 친정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보여줬더니, 말없이 사과만 깎는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다가 뭐가 이렇게 졸리냐고 했다. 그렇게 과일 리뷰로 시작한 영상은 보고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졸리는 영상으로 콘셉트의 방향을 잡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영상은 대부분 호흡이 빠르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봐도 뭔가 장면이 빨리빨리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오죽하면 유튜브 편집에 익숙한 나머지 지상파 방송을 보면 속이 답답할 정도였다. 빠른 호흡의 영상들 가운데, 이렇게나 지루한 영상이라니. J는 지루하고 졸리면 성공한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음력 1월 1일, 드디어 채널 "FruitsLab"을 오픈했다.
영상은 총 3가지가 오픈되었다. 사과, 레몬, 오렌지. 그 많은 삼각대들은 저마다 역할을 잘 해내서, 영상의 때깔이 꽤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몬 깎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군침도 돌았다.
영상 업로드에 그치지 않고, J는 주변 지인들에게 유튜브 채널 홍보를 하며 각종 피드백을 수집하는 중이다. 영상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의견이 많아서 아기들이 이 영상을 봤을 때 울음을 그친다던가, 잠을 잔다던가 하는 일들이 생기는지 등의 궁금증도 생겼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한 J와 D가 세심하게 BGM을 골랐기 때문에 시도해볼 만한 실험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한 그날부터 채널 오픈을 한 오늘까지, 마음이 편했다면 거짓말이다. 가계부를 잡고 있는 입장에서, 사업자 대표로서, 매출이 불확실한데 카드값은 쌓이니, 유튜브 제작을 지원해주는 것이 잘한 선택인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영상을 제작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오히려 더 고가의 장비까지 필요해져 버렸다.
그러자 퇴사 후 내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을 때, 돈은 내가 벌어오겠다며 염려 말고 공부하라던 J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비값 그까짓 것 내가 좀 벌어오면 되지 뭐!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J의 모습을 되새기며, 굳게 마음먹었다. 앞으로 계절이 지날수록 더 다양해질 과일 영상을 기대해보며, 장비값을 벌기 위한 고군분투를 새해 다짐으로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