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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May 23. 2022

두 번 이상 같은 여행지를 가봐야 하는 이유

전남 담양 | 죽녹원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니 그간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어지러웠던 현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어느 것 하나가 떠올랐다.  


 '혼자 여행'.


 '혼자 여행'에 대한 갈망은 늘 있어 왔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에게 지방 여행은 먼 일처럼 느껴졌다.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들과 시간이 맞고, 가고 싶은 지역이 같은 '우연'만을 바랄 수만은 없었다. 자유롭게 다니며 내가 정한 지역, 내가 정한 장소, 내가 정한 교통수단, 내가 정한 귀가 시간에 돌아오고 싶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녹색이 보고 싶었고, 기차 여행이 가능한 곳, 시내버스를 타고 조금 더 도심과 멀어질 수 있는 곳, 서울에서 꽤 멀지만 당일로 다녀오기 괜찮을 곳, 트래킹처럼 마음을 먹고 고도를 올라가는 곳이 아닌 적당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평지가 있는 곳을 생각하다 문득 담양이 떠올랐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담양을 기억하는 단어는 '습도'였다.

처음 담양을 갔던 어느 날은 광주의 온도가 섭씨 27도를 웃도는, 봄 치고는 무더운 날이었다.

이 무렵 나는 전라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곳 담양은 그저 지나가는 소도시에 불과했고, 인생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손꼽는 죽녹원에서의 기억은 매우 단순했다.


 높은 기온, 높은 습도, 벌레, 줄 지어선 관광객.


 열흘에 가까운 여행 기간 동안 꽤 많은 지역을 다녔는데 유독 이곳에서의 기억만 부정의 이미지가 컸다. 대숲의 울창함을 느끼는 여유는 사치였다. 길게 줄지어 선 관광객들은 앞사람의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모든 부정의 요소를 끌어올리는 건 날씨였는데 높은 기온은 대숲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고, 높은 습도는 열돔을 형성한 듯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가는 건 다음으로 기약하고 습도와 더위, 사람을 피해 출구로 향했다. 아쉬움도 없었다. 이렇게 담양은 스쳐간 그저 그런 여행지로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마침 내가 떠나는 계절은 4월 중순의 봄이라 아직 찬 대기의 온도와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광주까지 KTX를 타고,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죽녹원까지 갈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담양으로 결정했다.

 처음으로 떠나는 '혼자 여행'은 준비할 것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건 교통편과 시간 분배였다.


 여행 계획을 짠 건 출발일 기준으로 일주일 전이었다. 기차를 타고 싶었기에 광주 송정역까지 가는 KTX를 결제했다. 광주 송정역에서 광주역까지 가는 통근 열차도 결제했다. 돌아오는 건 시외버스를 타고 싶어 담양터미널에서 서울 센트럴시티로 오는 시외버스를 결제했다.

 

 여행사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일정표를 짜는 건 수월했다.

교통 시간이 결정되니 지역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할 수 있고, 지역에 머무르는 시간이 결정되니 여행지가 결정되고, 여행지가 결정되니 여행지 간 이동 경로가 계산이 되고, 이동 경로가 계산이 되니 여행지를 둘러볼 시간이 정해진다. 이제 챙겨갈 물건을 생각해본다. 얇은 책 한 권, 카메라, 16mm·56mm 렌즈, 보조 배터리면 충분했다.


 떠나는 날 AM 06:24. 특실 1인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영사기를 통해 송출되는 영상처럼 다소 낯설게 표현되는 풍경이 흘러가고 있었다. 두 번의 환승 끝에 담양 죽녹원에 도착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인지 죽녹원은 고요했다. 매표소를 가기 전 횡단보도 앞부터 이미 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리 잡아 있었다. 죽녹원이 이런 느낌이었나. 7년 만에 찾은 죽녹원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곳과 많이 달라 생경했다. 매표를 하고 입구를 지나 천천히 걷는 길을 걸은지 몇 분 되지 않아 나는 후회했다.


 '조금 더 일찍 와볼걸.'


 대숲 사이로 들어오는 맑은 햇살은 대숲을 더 푸르게 만들어줬다. 적절한 일조량은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을 하며 이곳을 자신의 기억 창고에 넣기 바빴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열댓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한 무리는 부부 동반으로 온 듯 보였다. 손에 큰 현수막을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얼굴과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해 보였다.


 그 무리를 지나 발길을 옮겨 본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요란히 흔들리는 댓잎 소리가 남았다. 소리에서 푸르름이 느껴진다. 적막한 주변과 생명의 생동감이 넘치는 소리는 대비를 이뤄 공간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빼곡히 들어찬 대나무는 입체감을 주고 있었다.

 대나무 사이로 죽순이 올라온다. 4월의 죽녹원은 새순이 자라나고 있었다. 차가워 보이는 색으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새 생명의 따스함이 만나 차가움이 중화된다. 이미 이곳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은 잊힌 지 오래였다. 넘쳐흐르는 대자연의 감동을 이제야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말소리 없이 바람소리만이 가득 찼다. 풀의 향기, 낙엽의 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촉감은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걷는 중간마다 보이는 작은 정자는 운치를 더해주고, 편히 바람을 맞을 수 있게 공간을 내어준다.

 반셔터를 눌러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원하는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다 보면 그 순간과 머리에 담겨 있던 고민들이 교환된다. 사진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눈으로 오랫동안 그 공간을, 그 피사체를 담아보는 건 어떨까. 어느새 나를 지배하던 고민은 눈으로 무언가를 가득 담던 그 시간에 묶여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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