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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May 29. 2022

진짜 여수를 만나고 싶다면

전남 여수  |  금오도 비렁길

 토요일 오전 여수 연안 여객선 터미널 대합실은 조용했다. 금오도 함구미로 향하는 배의 출항을 기다리며 안내 책자를 열어본다. 다시 한번 이번에 계획한 코스를 살펴보며, 걸을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본다. 

승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출항했다. 여수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서 함구미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다소 들뜬 기분, 그늘의 편안함, 대기를 가로지르는 바람, 배 여행이라는 낯선 분위기. 
햇살을 즐기기에 좋은 날이었다.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선실 밖에 놓인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니 노래에 맞춰 감정선이 변화한다. 

 항해 끝에 금오도에 다다른다. 금오도는 '비렁길'이라고 하는 1구간부터 5구간까지 총 5개의 코스의 트래킹 코스가 있다. 이날은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둘러볼 요량이었기에 욕심을 버리고 1 코스만 걷을 예정이었다. 운동화 끈을 바르게 고쳐 매고 1박 2일 치의 짐을 멘 배낭을 정리했다. 섬의 고요함과 바다의 잔잔함이, 마음을 안정시켜줌과 동시에 발걸음을 재촉하게 마음을 들썩였다.


  비렁길 1코스로 접어드는 길부터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우거진 풀숲의 사그락 사그락 하는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옷감 위로 닿는 풀의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발 끝에 닿는 고르지 않은 길은 모험심을 자극했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곧 다가올 여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무의 푸르름이 가득했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앞서 간 사람들의 흔적마저 사라져 오롯이 온 숲이 내 것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저 멀리 옥빛의 바다가 보인다. 송골송골 맺힌 땀과 배낭의 무게는 잊은 지 오래. 숲으로 들어갈수록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다. 높이 자란 나무들의 세상에 동화되고 싶어 나무의 냄새를 맡고, 손 끝으로 흙을 만져본다.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조각은 숲의 끝자락을 기대하게 했다. 드넓게 펼쳐질 바다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기암괴석을.


 걷고 걸어 '미역 널방'에 도착한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는 옥빛의 바다가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먼바다를 볼 수 있는 망원경으로 바다를 살피다 거짓말처럼 상괭이가 수면 위로 잠시 나타난다.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상황이 완벽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 보고 가는 단순한 포인트가 되는 곳일 수 있겠지만 내겐 이전에 가봤던 육지의 여수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잊히게 하는 장소가 되었다. 풍부한 일조량은 바다에 색감을 입혀주고, 드넓게 펼쳐진 탁 트인 시야는 알 수 없는 감동을 전해줬다. 


 아직도 이곳에서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살짝 내보이는 아름다움을 서둘러 만끽하고 싶어 빠르게 움직이던 발에 신겨진 운동화의 끈이 묶인 강도도, 걸음마다 들썩이던 배낭의 무게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순간 느껴진 검지 마디에 닿던 햇빛의 따스함도, 난간에 기댄 순간의 몸의 감각도, 뜨겁게 데워진 망원경의 온도도 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신선대를 향해 발길을 옮겨본다. 신선대로 가는 길은 비록 바다가 보이는 포인트는 없지만 정돈되지 않은 길을 따라 걷으며 자연을 마음에 담아오기 좋은 곳이다. 하늘을 가린 키가 큰 나무들은 이곳을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인지 따가운 햇빛을 가려주어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해 줬다. 이 구간에서는 오가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아 코 끝으로 들어오는 기분 좋은 냄새를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곳곳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지겹도록 반복됐던 일상을 지워버렸다. 바위틈으로 흐르던 물길은 더위를 잊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왔던 길을 돌아가며 바다 위에 떠있는 작업선과 배와 바다를 감싸주는 작은 섬들을 바라본다. 내가 아는 여수는 내륙의 여 수가 아닌 이곳이 될 거라 확신이 드는 순간이다. 편리한 교통과 편안한 호텔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북적이는 사람, 누구나 가는 보편적인 관광지를 피해 금오도에 와 보기를. 예상했던 것보다 넓은 바다, 푸른 바다, 비워지는 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늦어도 내년 내에는 이곳에 다시 와 3코스를 걸어볼 계획이다. 선명하게 지나가는 아름다움이 1코스보다 더 크다고 하니 시간을 맞춰 다시 와야지. 그때까지 지금처럼만 순수한 자연이 유지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오늘도 휴대전화로 옮겨 놓은 그날의 사진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며. 




- 여행 계획 수립 : 여수 1편 바로가기 클릭

- 여수로 향하는 기차 : 여수 2편 바로가기 클릭

- 여수 여행에서 가야한다고 하는 곳 : 여수 4편 바로가기 클릭

- 소소한 도보 여행 : 여수 5편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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