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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먹어도 고! vs 때되면 걸어줄게

by 옆집 교수언니

10개월, 갑작스러운 등장

평범한 오후였다.

달콩이가 소파를 붙잡고 서 있다가 갑자기 손을 놨다. 그리고..

뒤뚱, 뒤뚱, 뒤뚱...

"어???? 걸었다!"

10개월 남자아이 평균보다 빠른 편이었다.

아니 쌍둥이 중에서도 빠른 거였다.

옆에서 알콩이는 여전히 소파 붙잡고 서 있었다. 표정이 걸작이다.

'뭐... 때 되면 내가 걸어줄게.'

정말 그런 표정이었다.


주변의 불필요한 걱정들

"어? 달콩이는 벌써 걷는데 알콩이는 왜 안걸어요? "

"쌍둥이인데 이렇게 차이 날 수 있나요?"

"알콩이 좀더 자극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와~ 시작됐다.

쌍둥이 부모의 숙명인 '비교지옥'

모르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쌍둥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씨, 알콩이 잘 크고 있는데 뭐가 문제여?

맘 같아서는 그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애들 다 듣고 있수다!!'


개똥철학

나는 그때부터 이렇게 표현했다.

'달콩이는 조금 빠른 아이, 알콩이는 정상 아이'

12개월에 걷는 건 평균이다.

발달책에도 그렇게 쓰여있다.

알콩이는 딱 평균이었다.

뭐가 문제고 걱정인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유아교육 전공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걱정인형이 되어버렸을지도..

'한 놈은 벌써 뛰어다니는데 얘는 왜 안걸어?'

이런 생각을 했겠지..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유아교육, 특수교육 박사인 교육학 전공자다.

(교육학 박사학위를 2개나 딸때는 나 스스로도 내가 미쳤나.. 했는데 내새끼들을 위해 써먹는다.. 셀프 칭찬중..)

개인차가 있다는 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잘 알고 있다.


12개월, 드디어 등장

딱 12개월 되던 날.

알콩이가 갑자기 일어났다. 그리고 걸었다.

뚜벅... 뚜벅.... 뚜벅.....

달콩이처럼 비틀거리거나 넘어지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안정적이었다. (인생 2회차인줄...)

"어? 얘 언제 이렇게 준비했지?"

분명히 머릿속으로 엄청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을 것 같았다.

'발을 이렇게 내딛고, 중심을 이렇게 잡고, 팔은 이렇게 하고...'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니까 우리에게 보여준 거였다.


두가지 철학의 탄생

알콩이(신중파)

"준비되면 할께"

12개월까지 관찰하고 분석

확실해지면 한번에 성공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


달콩이(과감파)

"못 먹어도 고!"

10개월에 시작해서 넘어지고 일어나고 반복

되든 안되든 먼저 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음.


둘 다 결국 걸었다. 방법과 시간만 달랐을 뿐.

아이들은 냅두면 알아서 잘한다.


무사태평 엄마의 효과

내가 조바심을 안 냈던 게알콩이에게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빨리 걸어야지!"

"왜 못걸어?"

"달콩이는 벌써 걷는데!"


이런 말 한번도 안했다.

심지어 표정과 몸짓으로도 안했다.


알콩이는 자기 페이스대로 준비했고, 준비가 끝나니까 보여줬다.

만약 내가 재촉했다면? 알콩이 스타일 상 더 위축됐을지도 모른다.

이런 에피소드 중 대박인게 나중에 나온다!(기대하시길.. 애미는 속 문드러짐.. )


주변의 잔소리에 대한 답

"쌍둥이 인데 왜 이렇게 달라요?"

→ 쌍둥이라고 똑같은 이유가 뭔가요?

"알콩이 좀더 자극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제때 걸을 애가 왜 자극이 필요해요?

"달콩이 따라하게 해보세요"

→ 따라 할 필요 없이 지가 때 되면 걸어요.


정말 쓰잘떼기 없는 걱정들이다.

"비교 좀 그만해라. 얘네 각자 잘 크고 있다!"


지금생각해보니


알콩이: '준비하고 나서 하는' 타입

달콩이: '도전하면서 배우는' 타입


수영을 배울때도, 자전거를 탈 때도, 새 학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빠르다고 좋은 것도, 느리다고 나쁜 것도 아니었다.

각자의 학습 스타일이 다를 뿐이었다.

둘 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가는 방법이 다를 뿐.(모로 가도 서울만 가믄 되재~)



#옆집교수언니의기질육아실험실 #기질육아 #쌍둥이육아 #개인차 #걸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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