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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의 기적

생각하고 말하는 아이 vs 바로 말하는 아이

by 옆집 교수언니

"엄마, 나는..."

알콩이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평소 같으면 이때 달콩이가 벌떡 일어나서 "알콩이가 뭐 하고 싶다는 거야!"라고 대신 말해주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1초.... 2초.... 3초......


알콩이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며 머릿속에서 단어들을 찾는 중이다.


4초.... 5초.... 6초......


달콩이는 다리를 살짝 흔들며 기다린다. 입은 꾹 다물고.


7초째, 드디어


"화장실 가고 싶어"

아, 알콩이만의 돌려 말하기다.

다른 아이들은 "쉬 마려워!"라고 직접 말하는데, 우리 알콩이는 항상 이렇게 완곡하게 표현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달콩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기다려주기 시작했을까?


몇 주 전만 해도..

"엄마, 오늘 놀이터에서..."

알콩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달콩이가 끼어든다.

"아! 그네 탔지? 재미있었지?"

"아니야, 그게 아니라...."

"그럼 미끄럼틀? 아니면 시소?"

결국 알콩이는 하고 싶었던 말을 못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알콩이가 하려던 말은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는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엄마, 놀이터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어."

알콩이의 또 다른 돌려 말하기가 시작됐다.

달콩이가 입을 열려다가... 멈춘다.

알콩이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7초째.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 이름은 지우야."

"와~! 정말? 지우는 어떤 친구인데?"

이제서야 달콩이가 질문한다. 기다린 후의 질문은 훨씬 더 따뜻하다.


알콩이의 신기한 돌려 말하기 패턴들

지금까지 관찰해 보니 일정한 패턴이 보였다.


놀이터에서 화장실이 급할 때:

"엄마, 이제 다 놀았어. 집에 가자."

'엥? 진짜 다 놀았나?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뭐지? 또다시 나와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아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알콩아~ 너 혹시 쉬 마려워?"

"응~ 그러니까 집에 가자~"

알고 보니 화장실이 급해서였다.


놀이터 옆 공중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랬더니 집에 가고 싶은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그러부터 30분은 더 놀아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

"엄마, 아빠한테 언제 오는지 물어보게 전화한다!"

"아빠 오늘 바쁘시다고 했는데? 전화하지마. 아빠 늦어!"

그 짧은 찰나에 전화는 이미 걸렸다.

"아빠! 언제 와?"

"아빠 오늘 늦는데..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알겠어.. "

아빠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아빠한테 자랑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빠가 빨리 안 와서 속상할 뿐이다..


배가 고플 때:

"엄마, 뭔가... 속이 허전해...."

"엄마, 우리 편의점 갈까? 엄마 커피 마시고 싶지?"


졸릴 때:

"엄마 나 오늘 좀 피곤한 거 같아.."


반면 달콩이는?

"쉬 마려워~"

"똥~"

"배고픈데 먹을 것 없어?"

"졸려!"

명확하고 직설적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 녀석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른 거지?


7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알콩이에게 필요한 그 7초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1초: 무엇을 말할까?

2초: 어떻게 말할까?

3초: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4초: 더 좋은 표현이 뭐지?

5초: 어떤 순서로 말할까?

6초: 이게 맞지?

7초: 말하자!!


달콩이는 2초 만에 생각과 입이 직통으로 연결된다.

이게 바로 기질과 성격의 차이다.

이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다.


7초가 가져온 변화들

달콩이가 알콩이를 기다려주기 시작한 후로 놀라운 변화들이 생겼다.

✨ 알콩이가 더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두 아이의 대화가 훨씬 길어졌다

✨ 알콩이가 먼저 말을 걸 때가 많아졌다

✨ 달콩이도 더 차분하게 듣게 됐다


겨우 7초

7초는 방송이라면 방송사고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만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 시간은 느린 기질의 아이인 우리 알콩이에게는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까다롭고 급한 성격의 우리 달콩이에게는 정말 한없이 긴 시간이다.

그렇지만 달콩이의 7초 기다림이 알콩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게 바로 기질 맞춤 육아의 시작이 아닐까?


다음 이야기

모든 육아맘, 육아대디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기저귀 떼기 대작전"

정말 모든 부모님들이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알콩이의 실화를 팩트 그대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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