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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Jan 10. 2021

카톡 프사로 보는 남의 딸 성장기

그 아이의 탄생부터 100일을 지나 365일까지


아이는 속도위반으로 태어났다. 계획적이였던 아니던, 결혼식 후 1년도 안되어 세상에 불쑥 태어난 딸이었다. 만난지 6개월도 안되어 결혼에 골인해 주변을 놀라게 하더니, 또 6개월도 안되어 딸아이 사진이 카톡 프사로 올라왔다. 


평소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냥 미팅으로 서너 번 만나본 알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공통지인이 많아 서로의 배경에 대해 얼추 알지만, 그 외에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부터 자기 하소연을 서스럼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직장 상사가 자기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은근히 까이고 무시한다 등의 소심한 발언이었다. 흔히 말하는 허물없는 사람으로, 이런 대우를 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원하던 원치않던 저장된 핸드폰 번호로 카톡 연락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 사람이기도 했다. 덕분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바뀌는 이 사람의 카톡 사진으로 연락하지도 않는 사람의 소식통을 꿰고 살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금방 기억에서 잊혀졌을 내 인생의 NPC1의 결혼과 딸아이 소식까지 알 이유가 없었다. 


일명 미국 명문대 코스를 밟고, 적당히 부유한 집안에, 수수한 외모를 가진 결혼 적령기가 슬슬 걱정되는 그런 여자였다. 딱 한 번 이 사람 연애 푸념을 들어준 적이 있었다. 누가 봐도 애인이 찍어준 사진이 프사로 올라오던 때였다. 


요즘 소개로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머진 그런데로 괜찮다는 식이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지만, 얼굴만 봐서는 여자가 살짝 아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커플이었다. 이것저것 조급해질 결혼 적령기니 재력이나 성격 등은 괜찮은데 얼굴은 자기 이상형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6개월도 안되어 결혼에 골인할 줄 누가 알았을까. 

혹시라도 그때 동조해서 남편 흉을 안한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사람 일은 모르고, 뒷담화는 절대 까는게 아니었다. 


도대체 왜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의 결혼식장과 결혼식 스케일을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결혼식에 초대한다는 단톡 메세지와 사진이 이 여자의 프로필 사진을 도배했다. 물론 가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궁금하지도 않은 이 여자의 신혼여행 사진이 열심히 올라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유럽 어딘가로 신나게 여행을 떠난 모양이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삐까번쩍한 새 신혼집에서의 신혼 부부 사진이 올라오는 듯 하더니, 갓 출산한 딸아이 사진이 떡하니 올라왔다.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직전 겨울에 태어난 아이였다. 


직장에서 텃새가 너무 힘들었나, 이번을 놓치면 영영 결혼 못한다는 생각에 겁이 났을까. 시기적으로 보나, 올라오는 사진으로 보나 하여튼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여자였다. 


그때부터였다. 프사에 올라오는 카운트다운으로 아이가 태어난지 며칠 됐는지까지 알게 된건. 역시나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빠와 붕어빵인 딸아이의 얼굴과 생일과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남의 집 딸아이 사주와 관상을 풀어 미래까지 풀어볼 셈이었다. 


갓난아기들은 역시나 성장 속도가 남달랐다. 아기가 어쩜 저리 잘 웃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크고 이목구비가 자리를 잡아가는게 사진만으로도 보였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더니 엄마아빠 합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빠 판박이인 딸이었다. 노란색과 분홍색을 좋아하는 엄마 때문에 맨날 그쪽 계통의 공주님 옷을 입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사진에서는 여전히 말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절제라고 해야할까. 어색함보다는 누가봐도 미친듯이 사랑에 빠져 결혼한 사이는 아니란게 보였다. 


속도위반으로 너무 빨리 결혼을 해서 그랬을까. 둘 다 적당히 맞춰한 결혼이라 그럴까. 그래도 철없는 사랑으로 하는 결혼보다 조건맞는 사랑이 더 오래 간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이런 말을 백업해줄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가족 사진 속 엄마 아빠 사이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공주님만 유독 돋보였다. 저 아이는 어찌되었던 불황 속에서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최소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유아기 무의식 형성기 동안은 말이다. 


이제 성공은 잘 모르겠다며 찡얼거리던 이제는 엄마가 된 여자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아직은 여자의 성공은 남자의 재력에 달린 게 맞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면 몰매를 맞겠지. 행복은 무엇인가, 성공은 무엇인가 하는 의미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탄생 1주년 축하해요, 꼬맹이 공주님.


그런데 이제는 너희 엄마 번호를 지워 두 번 볼 일은 없을거예요.





photo credit: https://www.epicpxls.com/items/user-ava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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