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심규선 (Lucia) - 나의 색깔
*음악과 함께 읽기 추천
아무것도 피어나지 못하는 얼어붙는 땅임을 알면서도 뿌리를 내린다. 정착한 곳에 상관없이 동토를 뚫고 자리를 잡으려는 건, 딱히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도 꿈을 펼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원초적 본능에 의해 태어나고 태어났음을 기릴 뿐이다. 무감각한 세상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몸부림은 먼지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칠흙같은 세상에 꽃 한송이를 피운들 갑자기 마법처럼 세상이 빛을 발하지 않는다. 나의 탄생과 존재로 인해 세상을 바꾸리라 상상해본 적 없다. 세상을 채워나가는 건 빛이지,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꽃 한 송이가 아니다. 동토 위에 피어난 꽃이 전해주는 희망의 크기는 딱 새끼 손톱만할 뿐이다.
외로움을 아는 건 행복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새까만 공간에서 자신이 외롭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한 번도 진심으로 행복해본 적이 없던 탓이다. 외로움이 일상인 자는 외로움을 외로움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남들이 보기엔 슬픈 눈을 담고 있어도 그것이 슬픔임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탓이다. 두 눈덩이 속에 비치는 건 내가 태어나버린 이 땅 위의 공허함 뿐이다. 딱딱한 몸뚱아리 속에 아무리 황홀한 보석이 심어져있다 한들,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 세상 앞에 내놓기 전까지는 아무런 감정도 가치도 없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애초에 새벽의 얼어붙은 땅에 버려져 한 번도 따뜻함이 무엇인지 느껴본 적이 없다.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차가운 땅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숭고함이나 이타심 따위의 고귀한 이상을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윤회에 얽힌 기계적 반복에 불과하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조차 없다. 이 몸으로 봄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지금 세상이 이렇게 척박하고 차가운 이유가 겨울이기 때문이라는 걸 얘기해준 이가 없기에 우직하게 살아가는 우매함에 불과할 뿐이다.
몸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찢어 무언가를 피워내라고 하는 건 무조건적인 희생 탓이 아니다. 아직 겪어본 적도 없는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도 아니다. 나를 자석처럼 무겁게 땅 속으로 끌어당기는 자연의 법칙 때문이다. 내 속에 심어져있는 아직은 피어나기 이른 보석덩어리와 이 세상의 기운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태어난 적은 없었다. 그런 숭고한 희생과 이타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적도 없었다.
단순히 우직한 인고의 힘으로 버텨 피어나보니 나의 연보랏빛 꽃송이에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을 뿐이다. 나의 색깔로 세상을 밝히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정의감 넘치는 마음을 심어줄 존재도 없었다. 그러니 남들이 힘들게 피워낸 내 꽃떫기에 감탄을 할 때면 오히려 그들의 반응이 신기해 빤히 바라볼 뿐이다.
나의 꽃떫기가 마음에 드시나요. 나의 색깔이 정말 그렇게 영롱하고 신기한가요. 당신들도 나와 같이 어둠 속에서만 살아와 이런 색깔을 난생 처음보나요. 나의 피와 고통으로 피워낸 색깔이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내가 대신 더 아파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당신을 즐겁게 해주길 바라나요. 그렇다면 나는 당신들로 인해 처음으로 행복을 배웠네요. 어둠 밖에 비치지 않던 당신들의 눈동자 속에 연보랏빛 꽃을 피워내는 기쁨을 배웠네요.
얼어붙은 땅 위에 어울리지 않게 피어낸 나의 색이 당신의 번진 마음을 흔들어 놓나요. 잊고 있던 당신만의 색깔을 그리워하게 만드나요. 나의 존재에 당신을 투영해 어느 순간 변해버린 세상에 의문을 가지게 했나요.
나는 궁금해한 적이 없는데 행복을 가르쳐주고, 외로움을 배운다. 한 번도 기대해본 적이 없는데 봄을 갈망하고, 현재를 증오하게 만든다. 세상이 어두컴컴한게 당연한 줄 알았던 무지해서 무덤덤하고 행복했던 시간들. 지울 수는 없어도, 되돌릴 순 없어도 당신도 다시 당신의 색깔을 그려가기를. 잊고 있던 감각과 색깔을 깨워 나 혼자서는 바꿀 수 없던 세상에 함께 색깔을 입히길. 그리하여 나의 존재에도 어떤 희망과 의미를 가지길.
*위대하신(!) 심규선 님의 "나의 색깔"을 오마주로 썼습니다. 규님의 원곡과 큰 해석 차이가 있습니다.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기록 <말장난>
모두가 한번쯤은 마주해야 할 깊은 무의식으로 떠나는 성장형 에세이. 숨겨두었던 기억 속 어둠을 의식 밖으로 끌어내어 내면의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는 치유의 여정. 태어나버린 모든 이들을 위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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