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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Jan 23. 2021

즐겨보던 유튜버가 죽었다.

그럼에도 영상들은 재생되었다. 



마지막 업로드는 두 달 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에너지로 구독자와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머리가 새하얀 외국 할아버지로 10년 동안 31,000명의 구독자를 모으신 분이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였다. 


다루는 주제도 자칫하면 별난 사람 취급 받을 수 있는 분야였다. 올라오는 영상은 커버도 없이 사실상 무편집으로 올리던 분이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우연히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분이었다. 할아버지를 처음 접했을 때, 나에겐 완전히 생소한 분야를 입문하는 참이라 이 분 영상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생각났다. 얼마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정신적 안정을 찾은 나는 굳이 이 분의 유튜브를 찾지 않았었다. 나를 포함한 사람의 본성이란 참 그랬다. 


이 분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기 보다, 묻어 나오는 연륜이 좋아 종종 틀어놓던 유튜버였다. 이런 세상도,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호기심이 앞질렀다. 상업성과 기교가 난무한 같은 분야 젊은 유튜버들보다 왠지 친근감이 가 구독을 했었다. 그런데 엊그제 올라온 영상에는 어지간해서는 비디오 출연을 꺼리던 아내 분이 얼굴이 보였다. 8주 동안 마음을 추스리느라 말을 전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2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실제로 만나본 적 한 번 없는 수많은 유튜버 중 한 분인데, 왜 순간 가슴이 철렁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열혈팬으로 정기적으로 달려와 소통을 하던 분도 아니었다. 댓글창은 이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댓글이 추모를 이루고 있었다. 한 순간에 지난 10년 동안 올라왔던 영상들이 추모영상으로 변해있었다. 영상 매체물이란 그랬다. 내가 현재 시청하고 있는 모습이 반드시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영상일 거란 보장이 없었다. 시간을 뛰어넘어 힘겹게 메세지를 전하는 것 마냥. 


가끔 자기는 10년 동안 3만명을 겨우 모았는데, 하루 아침에 떡상하는 유튜버들을 보면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자조적 농담을 종종 하시던 분이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같은 주제를 다루면 사람들은 알고리즘을 더 잘 타고, 더 젊고 예쁜 얼굴이 보이는 비디오를 클릭하는 건.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인생의 진리고, 100배는 더 깊이가 있어도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었다. 우선 비디오 자체가 보이지 않는데, 클릭은 나중의 일이었다. 사실상 아무런 기술적 기교도 없이 할아버지께서 대형 유튜버가 되는건 실질적으로 힘들어보였다. 


나이, 성별, 지위 불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유튜브로 뛰어드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할아버지 같은 분께는 세상이 어쩌면 조금 더 차가워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함부로 하는 동정이 아닌, 불공정하게 던져진 게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저렸다. 올라온 동영상들이 마치 네모난 프레임 속에 앉아 지나가는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모습 같아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유튜브 쪽에서는 하룻밤 사이 조작도 가능한게 좋아요고, 구독자 숫자인데. 여러 사람들에게 희망고문을 안겨주는 빅테크스러운 공간이라는 생각도 스쳤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아내의 말에 살짝 놀랐다. 그래도 10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준 유튜버 구독자들을 할아버지가 굉장히 아꼈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유튜브로 자신과 연이 닿아 치유해줄 수 있었던 인연들을 정말 소중히 하셨다 그랬다. 구독자들 중 몇몇 사람들에겐 자신이 하늘같은 존재라고 자신이 도울 수 있었던 생명들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랬다. 아닌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말씀을 철떡같이 신조로 믿는 구독자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채널을 없애지 않고, 아내 분이 종종 컨텐츠를 올리겠다 하셨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지나도 결국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치를 잃어버린 물질문명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죽은 사람의 디지털 흔적은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유튜버가 죽었다. 그의 비디오들은 오늘도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다. 이것은 죽음을 뛰어넘어 남긴 레거시(legacy)인가, 죽어서도 제공하는 끝없는 노동인가. 어쨌든 나를 포함해 이 분이 남겼던 영상들로 순간을 살아냈던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곳에서 편안하시길.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기록 <말장난> 

모두가 한번쯤은 마주해야 할 깊은 무의식으로 떠나는 성장형 에세이. 숨겨두었던 기억 속 어둠을 의식 밖으로 끌어내어 내면의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는 치유의 여정. 태어나버린 모든 이들을 위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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