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수식어⌟를 읽고 나의 여행을 이야기하다
⌜당신의 수식어⌟, 전후석 지음, 창비, 240페이지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 사람의 피부색이 나와 다르다면? 더군다나 그 말이 영어나 스페인어 혹은 서툰 한국말이라면 나는 그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전 세계에 750만 명이나 있다고 한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부르는 말인 ‘한국인’은 대한민국 국적자에 한정된 단어이다. 한반도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조선족, 자이니치, 고려인, 재미 교포, 한인 입양아, 탈북자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릴 뿐이다.”(P.9) 이 수식어는 일부일 뿐이다. 코피노라 부르는 필리피노, 특별 거주 자격으로 한국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도 있다.
이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른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 자의나 타의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을 디아스포라라고 말한다. 18세에 결정한 그의 국적은 미국이다. 국적 선택 후 “미국에서 태어났다 뿐이지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인으로 살아온 내가 순식간에 미국인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존재했다”(P.76)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우연히 떠난 쿠바 여행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만난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해야 한다.
작가가 쿠바에서 만난 한국인이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주도한 헤로니모 임의 손녀라는 것, 또 헤로니모의 부친이 백범과 서신을 주고받은 임천택 선생이라는 것을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1905년 황성신문에 실린 부유한 나라, 따뜻한 나라, 질병이 없는 나라에서 부농이 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멕시코를 향한 1,033명의 조선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에네켄(henequen) 농장에서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삶으로 바뀐다. 우리는 그들을 ‘애니깽’이라 기억하고 있다. 그사이 조선은 사라진다. 돌아갈 나라와 돈조차 없는 그들은 그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일부가 쿠바를 향한다. 쿠바 한인 1세대다. 혁명 쿠바에서 체와 함께 일을 한 헤로니모는 은퇴 후 쿠바에 있는 한인을 규합했고, 한인이 최초로 상륙한 마탄사스 항구에 기념탑을 세웠다. 탑은 전통 기와지붕 모양이다. 지붕의 한쪽은 그들의 고향, 한반도를 향해있다.
마침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 경로에 쿠바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기념탑을 쓰다듬고 싶었고 마탄사스 항구에 직접 가고 싶었지만 장기 여행의 많은 변수는 나를 막아섰다. 하지만 나는 하바나에서 두 개의 태극기를 만났다. 하나는 새벽에 도착한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였다. 태극기는 젊은 여행자의 배낭에 거꾸로 붙어있었다. 조심스레 바르게 붙여주었다. 젊은 여행자는 몹시 부끄러워했다. 이내 공항에서 헤어졌지만 이튿날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 가벼운 인사를 다시 나눌 수 있었다.
두 번째 태극기는 하바나 구시가지의 골목길에서 만났다. 낡은 자전거에 매달린 태극기는 더 희게 느껴졌다. 뒷좌석에 두 명이 앉을 수 있게 개조한 자전거 의자에는 덕지덕지 테이프가 발라져 있었다. 근거리 이동수단으로 보였다. 한국인 여행자를 위한 태극기일까, 자전거 주인이 한국인일까. 두 가지 모두일까. 주인을 만나고 싶어 살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동안 자전거 옆에서 사람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자전거 옆에서 모자를 벗어 들었다. 태극기에게, 그 자전거 주인에게, 그의 할아버지에게 잠시 고개를 숙였다. 여행자인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것이 전부였다.
책의 작가 전후석은 헤로니모의 삶을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로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70여 명의 한인 후손과 인터뷰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들에게 남한과 북한 중 어느 쪽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이들의 대답은 모두 같았다.
“나는 ‘하나의 한국인(Uno Coreano)’입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바로 그곳에서 오셨어요.”
내가 쿠바에서 만난 ‘두 개의 태극기’는 한국인의 디아스포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