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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핫산 Jun 07. 2024

꽁꽁 얼어붙은 업계 위로 기획자가 걸어 다닙니다 - 1

중소기업은 5년 차 연봉과 신입 연봉이 비슷하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닙니다.



따뜻한 봄이 오고 이제 여름에 들어서면서 '얼어붙은 한강 위의 고양이 밈'은 한 바퀴 돌고 시들시들 해졌지만, 여전히 취업 시장은 얼어붙어 있다. 취업 시장이 도통 녹지 않는 데는 경기 악화를 포함한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저 임금 인상'과 '신입에 대한 기대치 상승'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이야기의 배경이 중소 게임회사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그러므로 대기업 게임 회사의 생태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니 대기업 지망생은 참고만 해주길 바란다.


나는 13년 차 게임기획자이고, 그중에 7년은 인디 개발과 스타트업을 병행했다. IT직종의 다른 업계에서 일하다가 게임 업계 들어온 지 7년쯤 되었을 때, 중소기업인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기획자가 개발 경험을 쌓기 위해 인디 개발을 하거나 소규모 스타트업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현업 경력으로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7년 간 게임 기획을 하고 출시 경험도 있었지만, 신입으로 입사했다. 요즘은 이런 걸 '중고 신입'이라고 하는 것 같다.


모두가 대기업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왜 중소기업으로 왔는가. '용'의 꼬리 보다 '뱀'의 머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임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주니어 기간 동안 잡무만 하고 싶지 않았고, '내 기획'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인디판과 스타트업판에서 오랫동안 임금 불안정에 시달렸기에 꾸준하고 안정적인 급여를 바랐다. 그 모든 조건에서 이 회사는 최적이었다. 가끔 대기업에 다녔다면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견실한 중소기업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게임 업계 불황과 프로젝트 드랍에 따른 개발팀 대규모 해고, 급여 체납 등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더욱 그랬다. 


나는 입사 당시에 열심히 일해 온 과거(IT 업계 경력, 인디 개발, 스타트업 경력 등)를 임원에게 높게 평가받아 경력이 인정되지 않았음에도 전 직장보다 40% 높은 연봉을 받고 입사했다. 동기들과 비교해도 30% 높은 연봉이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년 성과를 쌓아가면서 고속 승진을 했고, 입사 5년을 채우기 전에 과장 승진에 이어 매니저 승진을 했다. 쌓은 성과만큼 연봉 상승률도 높은 편이었고 어느덧 회사 내에서도 고액 연봉자에 속하게 됐다. 하지만 내 경우는 정말 특이케이스다.




중소기업은 5년 차 연봉과 신입 연봉이 비슷하다.


우스개 소리로 들리겠지만 중소기업을 다니거나 다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게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시장 경제와 물가 상승에 따라 최저 임금은 매년 인상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경력자들이 신입이던 시절의 초봉과 지금 신입의 초봉의 폭이 확연하게 커졌다. 연봉 인상률보다 최저 임금 인상률이 높다 보니, 그 시절 낮은 연봉으로 입사해서 매년 꾸준히 올린 5년 차의 연봉이 이제 막 입사한 따끈따끈한 신입의 연봉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내 경우가 정말 특별한 케이스이고, 대부분의 중소기업 경력자는 낮은 연봉으로 시작하여 낮은 상승률을 거쳐 여전히 신입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조금 나은 연봉을 받고 있다. 최저 연봉이 2천만 원도 채 되지 않던 시절에 입사한 경력자는 7년이 넘는 근속 기간에도 신입 연봉과 근소한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서 일어난다.


이 상태에서 연차가 쌓인 경력자 중 일부는 실무자로서 신입 지원자의 서류 합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면접에도 참여한다. 이때 신입의 초봉은 자신들의 연봉과 비교되며, "이 정도 연봉을 받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의 기댓값을 바라게 한다. 지원자가 '신입'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받을 '연봉'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받을 '연봉'과 '같은 연봉을 받는 사람'의 업무량과 퀄리티가 '신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서류나 면접의 불합을 결정하는데 꽤 큰 영향을 준다. 최저 임금의 인상과 함께 더 엄격한 잣대가 신입들에게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경력 같은 신입'만이 합격 목걸이를 거머쥐는 상황이 온 것이다.



물론 신입 기준에서는 전체적으로 높아진 업계 연봉(대기업 기준) 탓에 중소기업에서 제안하는 연봉이 턱없이 낮아 보일 수 있다. 요즘 들어오는 지원서들을 보면, 적당한 실력으로도 중소기업 정도는 충분히 입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입'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연봉을 받는 경력자가 회사에 존재하는 한, '적당한 실력'의 '신입'은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거다.  그들의 '게임 기획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전의 선배들보다 더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다른가? 자본주의에서 회사는 근로자에게 임금을 제공하고, 근로자는 회사에게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급여가 높다는 것은 급여의 대가로 제공해야 하는 노동력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그들이 제공하는 임금 수준에 맞는 업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결국 지금의 사회가 '신입'에게 제공할 '임금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회사가 '신입'에게 바라는 '업무 능력의 수준'이 높아졌고, 그에 따른 높아진 잣대가 지금의 게임 업계 취업난을 불러오는 원인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입을 대하는 기준이 높아진 것은 비단 '임금'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임금 상승'에 이어서 '신입에 대한 기대치 상승'을 부른 다른 요인은 무엇인가. 다음에는 무엇이 회사가 바라는 신입 게임 기획자의 기준을 높여 놓았는지,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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