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_장소_5.연구원 자료실
대학 4학년 때 영어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 내가 전공하고 있는 문헌정보학 관련 책을 번역하는 스터디모임에 나갔었다. 당시 번역 모임에서 알게 된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가 마침 재단법인 주택산업연구원 자료실 내에 사서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셋째 아이 출산으로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었다. 언니가 혹시 관심이 있으면 지원해보라고 연락을 주셔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게 된다.
초등학교 학교도서관 보다는 연구원 부속 자료실이라고 하니 업무도 왠지 전문적이고 좀 더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최종 면접을 통과해서 2008년 3월부터 여의도에 있는 재단법인 주택산업연구원 자료실에서 주임이라는 직책으로 30대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주택 관련 제도 및 주택 시장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연구를 통해 주택시장 안정과 주택산업 선진화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주택 전문 연구기관이었다. 연구원 자료실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연구보고서와 월간 뉴스레터가 있어서 사서의 주 업무는 발행되는 자료들을 우편으로 유관 기관에 발송하고, 매월 발행되는 뉴스레터 원고를 취합하고 편집 및 오탈자를 검수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그리고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주택,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뉴스 기사를 연구원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하고 뉴스레터를 기자들에게 발송하는 업무가 일과였다.
자료실 예산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정기적인 수서 업무는 따로 없었고, 연구원들이 희망하는 자료와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을 취합하여 분기별로 도서 구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연속간행물(해외 정기간행물, 잡지, 보고서 등)들을 도서전산화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분류하는 일은 기존 도서관과 업무와 비슷했다. 연구원 자료실은 외부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곳이어서 연구원 내에 석, 박사 연구원 15명과 유관기관(주택건설협회, 대한주택보증)과 자료를 특별히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만 대출이 제한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자료실은 연구원들의 회의실 겸 박사님들의 방송 인터뷰 촬영 장소로 사용되었다.
직원은 원장님을 포함해서 15명 정도여서 정말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근무할 당시 신규로 연구원도 3명이 채용되었는데 그때 입사 동기로 함께 근무했던 연구원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와 연구원 한 명은 심지어 고등학교 후배여서 급속히 친해졌다.
책임연구원은 거의 박사급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었음에도 나에게는 모두 잘 대해주셨고, 이곳에서 별일이 없다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직원들과 단합도 잘 되었었고, 하계연수도 1박 2일로 다녀오기도 하고, 연구원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세미나 운영 스텝으로 업무 지원하기도 하면서 도서관 사서와는 조금은 다른 업무들을 해보면서 일의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대학교수, 신문기자, 방송국기자, 주택건설협회 직원, 대한주택보증 직원 등 주택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만나고 일대일로 적극적인 참고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업무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2008년 3월 입사 후 2년이 되는 2010년 1월에 나는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소식을 듣게 된다. 계약직 신분이었던 나를 행정실 팀장님이 조용히 면담한다며 불러서 계약직의 경우 2년 근무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현재 연구원 사정도 좋지 않고, 기존 자료실을 폐지하고 홍보실로 바꿀 예정이라고 그래서 사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나에게 2월 계약종료로 근무가 종료된다고 했다.
순간 머리가 띵하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던 거 같다. 이런 결말은 상상해보지 않았고, 더군다나 자료실이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원 원장님이 2009년에 바뀌면서 새로 취임한 원장님은 연구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외부 용역 보고서나 연구를 많이 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제한적 이용자에게만 개방되었던 자료실은 없어져도 되는 곳이라 생각하셨다고 후에 듣게 되었다.
한 달간은 멘붕 상태로 마음도 잡지 못하고 출퇴근을 했었던 거 같다. 그런데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을 알기에 주어진 한 달여 기간 동안 업무 마무리를 잘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신규로 채용된 홍보 담당 직원에게 자료실 업무를 인수인계 해주고 계약만료라는 사유로 강제적 퇴사를 당하게 된다.
연구원 자료실을 계약만료로 퇴사하고 다행히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진로에 대해 무지하게 고민했던 것같다. 퇴직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학시절부터 영어에 관심이 있었고 어학연수도 가보지 못해서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자 싶어서 한국 나이로 33살이 되던 2010년 5월에 나는 캐나다 토론토로 어학연수를 가게 된다.
토론토에서 5개월간 어학원을 다니며 12주 동안 ELS과정을 수료하고 ESL Methologies for Children유아테솔 8주 취득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만 해도 이제는 도서관 사서가 아닌 영어교육 관련 직종으로 이직할 수 있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귀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