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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r 15. 2020

포도따기

마가렛리버

월요일이 되고 처음 일을 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미고렝 라면 다섯개를 끓였다. 그것도 모자라 식빵도 두개씩 토스트 했다. 소시지도 하나씩 구웠다. 처음 일 가는 거니 긴장되기도 하고 해서 든든히 먹기로 했다. 


아침 8시의 마가렛 리버의 공기는 꽤 차갑다. 항상 걷던 길을 기선이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벅터벅 걸었다. 바인파워 앞에 도착하니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준다. 


“자 여기 처음 오시는 사람은 앞에 있는 서류를 작성해주세요. 그리고 필요한 장비렌탈 칸에 체크해주세요. 물론 렌탈이 끝나면 약간의 수수료 빼고는 다 돌려드립니다.”


장비렌탈에는 포도 가지를 자를 가위와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을법한 가위 주머니 그리고 등에 바인파워가 적혀있는 형광색 조끼도 있다.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농사용 고무 부츠도 있다. 나는 골드코스트 식당에서 일할 때 사 놓은 작업화가 있어서 체크 하지 않고 기선이는 체크했다. 


이제 각자 차를 타고 포도농장으로 이동했다. 호주에 차가 없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타고 카풀 하는 대신에 하루에 5불씩 지불하기로 했다. 


포도 농장에 도착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지평선 넘어까지 끝도 보이지 않는 포도 나무들이 가지런히 줄을 쭉 뻗어있다. 



“여기 한 라인당 한명씩 서주세요. 나무에 달려 있는 필요 없는 가지들을 잘라내면 되는 거에요. 그래야 다음해에 건강한 포도 나무가 자라요. 아시겠죠? 그럼 시작!”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렌탈한 가위를 꺼내서 조금 작고 안 건강해 보이는 가지들을 자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신중하게 하나하나 자르면서 나아가고 있는데 방금 앞에서 설명했던 존이라는 남자가 오더니


“이런 건 더 잘라내야 해요. 이렇게!”


하며 사정없이 손으로 비틀어 가지를 막 뜯어버린다. 이 친구가 지나간 자리에는 가지가 앙상하게 몇 개 남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거구나’


나도 가위를 집어 넣어버리고 손으로 마구 뜯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며 마구마두 뜯으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다. 한 라인을 다 끝나가는데 존이 다시 오더니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요”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마 다음해에 포도가 거의 열리지 않았을 것 같다. 가지를 다 뜯어버렸는데 어디서 포도가 열릴까.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다시 또 일렬로 서서 다 뜯어버렸다. 생각보다 일은 힘들지 않다. 나무 한 그루당 22센트짜리도 있고 18센트짜리도 있다. 계산해보니 8시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면 80불 남짓이다. 생각보다 돈은 안 된다. 



일을 마치고 다시 타고 왔던 차를 타고 바인파워 앞에 도착해 렌탈한 장비들을 반납하고 기선이와 함께 간단하게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단 샤워를 해서 하루종일 포도나무와 씨름을 하며 묻었던 흙먼지들을 싸악 씻어냈다. 그리고 대충 밥을 먹고 쉬고 있으니 매니저가 와서 우리가 있던 도미토리룸을 여자 도미토리로 바꾼다고 다른 방으로 옮겨 달란다. 


“그럼 몇 인실로 가나요?”


“같은 가격으로 4인실로 옮겨 드릴께요. 괜찮아요?”


우리야 좋다. 거긴 하나라는 일본 여자아이랑 미켈이라는 이탈리아 남자애가 있었다. 둘 다 너무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조용한 성격이었다.


이 둘도 나처럼 세계 일주중이란다. 그리고 둘 다 나처럼 동남아 여행을 하고 호주로 들어왔단다. 재미 있는 친구들이다. 아직 언어의 장벽 때문에 내가 자리에 없으면 기선이와 완벽한 대화는 되지 않지만 뭐가 좋은지 기선이는 항상 웃는다. 미켈이 나에게 묻는다.


“썬 저 친구 (기선이의 영어 이름은 SUN(썬)이다) 대마초 너무 많이 피는 거 아니야? 항상 너무 해피해”


“아니야 그런거 하는애 아니야”


그렇게 해피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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