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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Jul 11. 2019

평화로운 맥간

왜 여자들이 맥간 (맥그로드 간지)을 좋아하는 지 이제 알았다. 인도 특유의 진한 그 색깔과 그 진한 향기가 여긴 없었다. 그 대신 진한 초록빛깔 나뭇잎. 맑은 공기가 있었다. 아마도 진한 색깔의 얼굴의 인도인 대신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북 동양인계의 티벳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밤새 이동해서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났다.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발코니에서 밖을 보면 끝도 없는 파아란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빨래를 하고 발코니에 빨래줄을 설치하고 널어놓으니 숲 속에 빨래를 너는 기분이다. 그냥 멍하게 야스랑 발코니에 서서 이야기하며 담배만 펴도 좋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듯한 이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이다. 굳이 힘들게 뭘 걸어서 돌아다니냐 여기가 이렇게 좋은데 이런 얘기만 계속 하다 어쩔 수 없이 배가 고파 밖으로 나갔다.

달라이라마가 망명해 있는 곳이라 그런지 티벳불교 승려들이 많이 보였다. 사실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는 생각보다 주황색 승복을 입고 까까머리를 한 승려들을 보기 힘들다. 아기자기한 이 마을은 호객행위도 없다. 사람들의 미소는 덤이다.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시원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노란색과 초록색 원색으로 칠해진 이 카페에서는 한국 음식도 있다. 이상하게도 인도에서는 신라면이 땡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타지마할 궁전을 보면서도 신라면을 먹었다. 기분이 좋으면 그런 가보다.



신라면을 맛있게 먹고 사치한번 부려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자리 잡고 앉아서 야스랑 카드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담배도 뻐끔뻐끔 피며 인도풍의 럭셔리한 이 분위기의 카페에서 한참 있었다. 원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흙먼지 날리는 거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뜨거운 짜이 마시는 걸 더 좋아한다. 음. 이상한 매력의 이 도시에 빠졌나보다. 안하던 짓을 다하고.

멍하게 카페에 앉아 있다보니 날이 어두워져 티벳식 국수 뚝바를 먹으러 갔다. 뚝바 가게는 참 많다. 어디를 들어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곳으로 들어가봤다. 친절한 할머니가 내주신 뚝바는 눈물 나게 맛있다. 맥간은 정말 맛있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좁게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걸어봤다. 관광객이라곤 우리 밖에 없는 진짜 인도인들이 사는 집들이 계속 되었다. 흐르는 물 따라서도 걸어보고 우리를 마중나온 귀여운 강아지들과 장난도 치고 물 긷는 아주머니랑 얘기도 나눠봤다. 어떻게 이렇게 평화로울까. 


맥간에 온 첫날부터 봐둔 옷을 사러갔다. 딱봐도 인도인과는 다른 티벳계의 아저씨. 후드가 달린 스웨터 재질의 옷을 500루피 부른다. 400루피로 아무리 깎으려고 해도 안된다. 아저씨는 말했다.


“나는 티벳사람이야. 우리는 사기안쳐. 500루피면 딱 정가라고 생각해”


인상 좋은 아저씨랑 첫날부터 그 길을 지나올 때마다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정이 들었다. 그래서 옷이랑 스카프 두 개를 더 샀다.



이곳도 떠나야지. 가장 좋을 때 떠나는 것이라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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