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나가르. 인간에 의해 지옥이 되어 버린 천국.
스리나가르의 달 호수 한 가운데에서 맞는 아침은 상쾌했다. 한숨자고 일어나니 보트 주인 인도청년이 갓구운 빵과 인도 인스턴드 라면 메기, 그리고 카슈미르 차를 주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하얀 햇살에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배를 타고 이동하며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도 보이고 물건을 팔러 바삐 노를 젓는 아낙네들도 있다. 배위에 걸터 앉아 한참을 멍하게 강을 바라보았다.
스리나가르에 있는 동안 여기에 계속 있으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비싸기도 하고 육지로 나가려면 일일이 주인한테 부탁해서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그래서 일단 스리나가르의 명물 하우스보트에서 하루를 묵었으니 육지에 숙소를 알아보러 나가기로 했다.
육지로 나가는 배는 그냥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좋다. 낭만있다. 배가 너무 작아서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 알아서 잘 노를 젓겠지 하고 풍경감상하며 육지로 나간다. 하우스보트에서 육지로 나가는 시간은 배타고 10분정도. 짧다면 짧지만 이 조그만 배가 없으면 이 배 주인 인도 청년뿐만 아니라 수많은 달 호수 위에 삶의 터전이 있는 인도인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 호수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혀 있는 건물 몇 곳에 들어가서 방도 보고 가격도 비교했다. 허름해 보이는 한 곳에 들어갔다. 지금은 비수기라 머무는 손님이 하나도 없단다. 우리의 행색을 훑어보더니 주인 아저씨는
“손님한테 딱 어울리는 방이 있어요. 히피룸. 뒤에는 개인 정원도 있고 창문으로 풍경도 잘 보이고 넓은 방이에요. 히피들이 이 곳에 오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머물죠. 한 사람당 100루피해서 200루피만 주세요”
대박이다. 방도 아주 넓어 마음에 들고 아무도 없고 우리밖에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저씨한테 내일 짐싸서 들어온다고 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이제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무작정 강을 따라 걸었다. 진짜 비수기라 그런지 우리 말고는 관광객이 단 한 명도 안보였다. 강가에는 수많은 가트들이 있었다. 왼쪽 강 끝에 가트 1부터 강따라 걸으니 가트 25까지 본 것 같다. 가트는 걸어서 거의 5분 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5분에 한번씩 호객꾼이 와서 달 호수 보트 트립을 가지 안겠냐고 한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도착해서 오늘은 좀 쉬고 내일 간다는 말만 30번 반복 한 것 같다. 하긴 지금 비수기라 손님이 없으니 우리를 보고 얼마나 반가울까. 그래도 내일 타야지.
한참을 걸었더니 피곤하기도 하고 날도 어둑어둑해져 일단 숙소로 가서 쉬기로 했다. 육지로 나올 때는 보트 주
인이 공짜로 태워주지만 다시 들어갈 때는 20루피를 내고 숙소로 가야했다. 좀 억울했지만 뭐 그런가 보다 했다.
숙소에서 한 시간 반정도 푹 자고 일어나니 우리는 강 한가운데 떠있다. 강 한가운데서 야스랑 카드놀이나 했다. 그러다 야스가 물어본다.
“슬슬 배 고프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저녁을 안 먹었다. 그런데 배고픔보다 다시 배타고 육지로 나가는게 너무 귀찮았다. 게임해서 진 사람 육지로 가서 밥 사오기 하자고 하니 싫단다. 야스는 정말 혼자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30분 동안 밥 먹으러 가자고 계속 조른다. 정말 미친 듯이 귀찮았지만 야스가 더 귀찮게 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와이파이의 노예. 이왕이면 와이파이가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밥도 맛있고 와이파이로 오랜만에 사람들이랑 연락도 하고 귀찮지만 육지로 나오기 잘했다. 불빛이 있는 곳은 강 위에서 하우스보트에서 비추는 불빛이 유일했다. 그래서 더 위험해 지기 전에 밥만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육지에서 보는 강위의 야경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