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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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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Aug 01. 2020

칭칭룽장 가는 길

칭칭룽장 

오늘은 더 일찍 일어났다. 어제 집에 오니 형 아이폰 충전기를 타이베이 집에 놔두고 와서 충전을 못했었다. 오늘 충전기 사러 가야 된다고 형은 아침부터 더 서두른다. 피곤함도 이제 익숙하다. 그것보다 설레임이 더 크다. 이제 사진에서 보고 가이드북에서도 본 르웨탄으로 간다. 형이 하도 르웨탄 멋있다고 해서 더 기대되는 것도 있다. 

형네 삼촌이 차를 빌려주셨다. 일단 차를 타고 삼촌네 사무실로 가서 직원들이랑 인사를 하고 형이랑 삼촌이랑은 충전기를 사러 갔다. 잠시만 사무실에서 기다리라 해놓고 1시간 넘게 있다 왔다. 난 형이 오고 나서야 사무실에 와이파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좀만 더 일찍 알았다면 1시간동안 멍때리고 있지 않지 않았을까.



충전기를 사려고 아침부터 난리 친 이유. 폰이 없으면 네비게이션 사용을 못해 목적지에 갈 수가 없다. 이제 차를 타고 출발 하려는데 충전이 안 된다. 아이폰 짝퉁 충전기를 사왔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길을 물어 물어 전자상가로 다시 갔다. 이번엔 충전기를 사기 전 가게에서 충전이 되는지 시험까지 해보고 드디어 르웨탄으로 출발했다.



어떻게 이렇게 타이완 북부와 남부가 다를 수 있는지. 너무 감동해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파아란 하늘과 열대성 나무들이 나타났고 넓은 도로 옆으로 초록색 밭들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두 시간쯤 달려 타이완에서 기차여행을 한다면 꼭 들른다는 조그만 지지역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작은 마을을 둘러 보고 다시 이번엔 달렸다. 산 위에 엄청난 크기의 호수로 유명한 이곳은 정말 장관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나온 큰 호수에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었는데 페리를 타려고 부두쪽으로 들어가서는 약간. 아주 약간 실망스러웠다. 생각보다 더 많이 관광지화가 되어 있었다. 많은 상점이 들어와 있었고 어떤 아주머니가 오더니

"주차하고 페리 티켓까지 300에 해줄께"

그래서 생각 좀 해 본다고 하고 차를 돌리려니 다급하게 소리 치신다.

"알았어 200에 해줄께"

그래도 별 마음이 없었던 나는 창문을 올리자

"100! 100! 100!"

300에서 100까지 깎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냥 항구쪽으로 가서 경치를 구경하다 너무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는지 이제 마지막 목적지로 가자고 형을 졸랐다.



마지막 목적지 칭칭룽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위치한 농장. 올라가는 길이 산을 구불구불 뱅글뱅글 2차선으로 계속 돌아 올라가는 길이라 형이 계속 불안해했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형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올라가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숙소에 딱 도착하니 이제 밤이 되었다.

지금까지 항상 형집 아니면 형네 할아버지댁에 있다 처음으로 돈을 내고 호텔에 왔다. 여기는 산속이라 게스트하우스가 없단다. 방 하나에 2층 복층 구조로 생긴 우리방은 너무 좋았다. 발코니도 있어 산 앞으로 뷰가 보인다. 뭐 어두워서 지금은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내일은 어마어마하겠지.



짐을 내려놓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숙소 앞으로 나있는 길을 10분정도 걸어 밥을 먹으러 갔다. 산속이라 빛이 거의 없어 정말 어두웠다. 이런 곳에 식당이랑 편의점이 있다니. 아마도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는 세븐일레븐이 아닐까. 밥을 맛있게 먹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씩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해서 폰을 찾아보니 없다. 분명히 폰을 가지고 식당에 간 것 같은데. 식당에 가서 와이파이를 쓰려고 찾아보니 없어 숙소에 뒀나 보다 하고 와서 보니 여기도 없다. 바지 뒷주머니를 보니 반쯤 옆으로 뜯겨져 있다.



'아차 식당가는 길에 떨어뜨렸나보다'

갑자기 지금까지의 타이완의 여정과 앞으로의 미래가 필름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폰이 없으면 앞으로 3일이나 남았는데 한국이랑 연락도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돈도 없는데 다시 폰을 사야할거고 내가 여행다니는 것을 이제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부모님한테는 또 뭐라고 말을 할 것이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왔건 길로 되돌아가면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다시 걸어서 식당까지 갔다 지금까지 갔던 길을 다 찾아다녔지만 없다. 형이 걱정됐는지 편의점까지 자기 폰으로 플레쉬를 켜고 나를 찾으러 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계속 담배만 뻐끔뻐끔 펴대다 한번 더 나가보기로 했다. 이제는 어둡기만 한 게 아니고 주위에서 이상한 동물소리도 나기 시작했다.

폰 하나 찾으려다 내가 실종되겠다. 형한테 내 폰으로 메세지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 주웠으면 여기로 연락이 오게끔 중국어로 보냈다. 

내일 아침이 밝자마자 다시 찾으러 나가야지 하고 잠이 안 오지만 누웠다. 두 시간 정도 계속 뒤척이는데 갑자기 형 폰으로 전화가 왔다.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데

"세븐 일레븐. 내일 아침 7시나 8시. 감사합니다"

이 정도 알아들었다. 뭔가 느낌이 와서 형한테 물었다.

"형 무슨 전화야?"

형이 말했다.

"누가 너 폰 주워서 세븐 일레븐에 맡겼대. 어차피 24시간 오픈이니까 내일 일어나자마자 찾으러 가봐"

여행할 때 항상 운이 좋은 나는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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