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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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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Aug 04. 2020

이제 안녕 대만

아침부터 긴장이 많이 된다. 오늘 집에 가는 날인데 카오슝에서 타이페이까지 가서 거기서 또 비행기타고 한국으로 가야한다. 평소대로라면 그냥 예약해놓은 버스 타고 가기만 하면 되는건데 3일 전에 타이중에서 버스로 카오슝으로 올때 3시간에서 길어봐야 4시간 걸린다고 해놓고 차가 밀려서 6시간 반 걸려서 왔기 때문이다. 카오슝에서 환승하게 될 타이페이 화쳐잔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단다. 그리고 다시 공항까지는 30분정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비행기는 저녁 6시 반이지만 집에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버스 시간은 아침 9시. 어제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이것저것 이야기한다고 늦게 자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더 힘들었다. 7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얼른 샤워하고 이미 다 싸놨던 배낭에 세면 도구만 쑤셔 넣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장거리 버스를 탈 것이니 숙소 앞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두 개랑 잠을 깨기 위해 커피 하나를 사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아직 8시 반쯤. 버스 안내하는 직원분에게 예약한 티켓을 보여주며 

"9시! 타이페이 화쳐잔 오케이?"

그러자 버스가 오면 말해줄 테니 안내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란다. 

내가 영어로 얘기했더니 옆에서 어떤 동양인 남자가 말을 건다.

"어디서 왔어? 나는 루이스야"

하고 악수를 청한다. 

"나는 한국에서 왔어. 대만 여행 끝나고 오늘 집에 가기 싫은데 버스타고 타이페이로 가서 집으로 가야해"

그랬더니 웃으며

"그렇구나. 옷이 너무 스타일리쉬해서 왠지 한국에서 왔을 것 같더라고"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페이스북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 친구는 버스가 와서 먼저 갔다. 시간이 조금 남아 안내 데스크 바로 앞으로 가서 담배를 하나 폈다. 이번에는 다른 동양인 여자가 말을 건다.

"어디서 왔어? 여행중이야?"

검은색 긴 생머리에서 가방에는 여러나라를 여행하고 모은 것으로 보이는 국기 벳지를 달고 있었다. 딱봐도 여행자다.

"아 나는 한국에서 왔어. 이 벳지들 어디서 났어? 멋지다! 나도 대만 오기 전에 2년 정도 여행하다 지금은 한국에 있어"

여행자는 여행자를 좋아한다.

"아 진짜? 나도 3년정도 여행하고 잠깐 집에 왔어. 또 나가야지"

여행 얘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58분이다. 얼른 안내 데스크로 가서 버스 언제 오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약간 화난듯이 난처해하며

"내가 여기 있으라 그랬잖아요. 손님이 안와서 버스 이미 출발했어요"

황당했다. 

"아직 9시 안됐는데요?"

그 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더 어이없어 하며

"저기 저 버스 보이죠? 손님 오기 딱 10초전에 떠났어요"

절망적이었다. 이렇게 한국에 못 가는 건가. 이제 울먹거리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진짜 잠깐 담배 피러 여기 앞에 있었어요. 어떻게 안돼요? 나 오늘 한국에 돌아가야해요 제발"

그러니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중국어로 뭐라고 하더니 다행히 10분후에 다시 버스가 오니 그걸 타라고 한다. 다행이다. 이번엔 아무데도 안가고 데스크 앞에만 서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왔다.



역시 대만 버스는 넓고 쾌적하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다. 또 차가 막히면 집에 못가는거다. 음악도 듣고 졸고 하면서 열심히 달렸다. 가는데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건 내 여행 징크스라고 해야하나. 좋은 점이라고 해야하나. 항상 내가 여행을 마치고 그 나라를 정말 떠나기 싫을 때는 마지막 날 비가 온다. 오늘도 나는 정말 떠나기 싫나 보다.



다행이다.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1시쯤 넘었다. 비를 피해 지붕 밑으로 들어가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멍하게 서있었다. 여행 중 뜻밖에 만나는 비는 언제나 좋다. 비에 조금 젖으면 어떤가. 다 낭만이다. 30분 정도 기다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2시 좀 넘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4시간 남았다.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를 즐기며 그 동안의 대만 여행을 추억하고 미소지으며 공항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짧지만 강렬했던 대만 여행. 꼭 다시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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