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시내 둘러보기

Jul 15. 2019

레에 왔다. 내가 드디어 레에 왔다. 잘 다니던 직장을 한방에 그만 두게 만들었던 레 사진 한 장. 어제밤은 너무 설레이고 기분 좋아 밤새 미소짓다 늦게 잠이 들었다.

역시 레는 고산지역이라 그런지 아침 저녁으로 꽤 쌀쌀했다. 물 부족지역이라 온수는 주인 아저씨한테 부탁하고 한참 기다린 후에 데운 물 한 양동이를 주셨다. 그 양동이에 찬물을 적당히 섞어서 양을 두배로 불려 야스랑 나랑 반반씩 조그만 바가지로 아껴서 샤워를 했다.

레의 아침.

사람들의 생김새도 날씨도 그리고 그들의 미소조차도 다른 인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게 무엇인지는 확실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르다. 건물 색깔도 다르고 하늘에 나부끼는 많은 색깔의 타르초들은 진짜 내가 레에 왔음을 더 실감하게 해준다. 이곳 사람들은 인도의 다른 곳들 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 같다. 미친 듯이 달리는 릭샤왈라도 택시기사도 없다. 차분히 집앞을 빗자루로 쓱쓱 쓸며 하루를 맞이한다.

간단히 뚝바로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좀 쉬다 숙소 바로 뒤로 보이는 레 왕궁으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 뒤로 나있는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니 오래된 길이 하나씩 나온다. 왕궁으로 들어 가기 전부터 이미 기분은 좋다. 레 왕궁 입장료는 100루피. 굳이 갈 들어갈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냥 바깥 사진만 찍고 그 위로 하얗게 보이는 남걀 곰파로 올라갔다.

아차 했다. 조리 신고 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자갈로 덮여 있는 산을 올라가보기로 했다.

“헉헉. 넬리상 조금만 쉬다 가요. 죽겠어요”

생전 운동 따윈 하지 않고 담배만 열심히 핀 귀여운 야스가 말한다. 누군가 우리 둘이서 조리를 신고 올라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줬으면 했다. 계속 미끄러져 결국엔 둘다 조리를 손에 들고 맨발로 자갈산의 돌을 밟으며 걸어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니 레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그냥 이것만 보면서 며칠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도시가 하얗지. 레에 가본 사람만 알 것이다. 이 경이로운 풍경을. 가슴이 뛰고 벅차 오른다. 절대 열심히 맨발로 자갈산을 올라서 숨 차서 그런건 아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야스가 고산증 증세를 보인다.

“넬리상. 아무래도 저 고산증 온 거 같아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몸에 힘이 없고 식욕도 없어요. 이거 고산증 맞죠?”

맞다. 고산증이다. 타지키스탄을 여행하고 인도로 날라온 나는 이미 타지키스탄의 고산도시 무르갑에서 고산증을 겪어봐서 안다. 무르갑은 레보다 무려 700미터가 높은 4200미터에 위치해 있다. 그때 나도 무르갑에서 사흘동안 끙끙 앓으며 시들시들했었다. 그 사랑하는 담배도 사흘동안 끊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