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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를 떠나 마날리로

바쉬쉿

by nelly park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레를 떠난다. 밤 10시 픽업이라 조금이라도 더 레를 보고 느끼려고 해봤다. 이미 다 가본 곳이라도 또 가보고 골목골목 걸어도 보고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 사진도 찍지 않았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레.



날이 어두워지고 가방을 1층 로비에 내려 놓고 야스랑 멍하게 앉아있으니 추적추적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행을 하면서 정말정말 떠나기 싫은 곳을 떠날 때마다 비가 오곤 했다. 방콕을 떠날 때마다 그랬고 도쿄를 떠날 때 그리고 오래동안 살았던 벤쿠버를 떠날 때 그랬다. 야스와 함께 배낭을 메고 담배 하나씩 물고 터버터벅 비를 맞으며 픽업 장소로 걸어갔다. 10시쯤 되니 픽업벤이 왔다. 레에서 마날리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날답게 미니버스 다섯 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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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두워진 레를 끝까지 바라보며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는 덜컹덜컹 마날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눈을 좀 붙이고 있으니 몇시간 지나 잠깐 휴식시간이라고 밖에 나와서 화장실 갈 사람 담배 필사람 다녀 오란다.



왜 오늘을 마지막으로 마날리로 가는 도로가 닫히는 줄 알 것 같다. 조리를 신고 있는데 눈이 온다. 너무 춥다. 아직 10월 촌데. 장작을 모아서 곳곳에 불을 피우고 다들 옹기종기 모여 손을 비비며 따뜻한 짜이 한잔씩 마시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바뀔 수 있는 건지. 신기한 건 신기한거고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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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타고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마날리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한 2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마날리 어딘가에 우리는 내렸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여서 일단 무작정 걷다가 보이는 오토릭샤를 잡아서 바쉬쉿으로 가달라고 했다. 바쉬쉿은 마날리 바로 옆에 있는 마을인데 히피들이 장기로 머무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일단은 거기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바쉬쉿에 있는 후지 게스트하우스 알아요?”


릭샤왈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네 당연하죠 타요. 한명당 100루피씩 내요”


우리는 손을 저으며


"알겠어요 그럼 딴 거 타고 갈께요”


릭샤왈라는 당황하며 따라오면서


“오케이오케이 얼마 원해요? 한명당 50루피 오케이? 타요타요”


“한명당 30루피! 아님 말고요”


릭샤왈라는 난감해 하며 알겠다고 타란다. 오늘도 흥정 성공!


바쉬쉿으로 가는길은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많았다. 생각보다 거리가 되네 하고 있는데 갑자기 릭샤가 멈추고


“기름이 없어서 그런데 여기서 5분만 걸어서 올라가면 되요”



어이가 없었다. 100루피 주면서 거스름돈 달라니 잔돈이 없단다. 오랫동안 미니벤을 타고 왔더니 실랑이 하기 귀찮다. 그냥 알겠다고 하고 가라고 그러고 어두운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15분을 걸어도 숙소는 나오지 않는다. 점점 불안했지만 다행히 불빛이 나오기 시작해서 오늘 밖에서는 안자도 되겠다 하고 5분을 더 걸어 올라갔더니 제일 가장자리에 드디어 숙소가 보였다.



후지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한 인도인 아저씨가 말을 건다.


“내가 미스터 후지야. 방 안내해줄게. 따라와”


그렇게 방을 안내받고 짐을 풀고 좀 씻었다. 그리고 좀 앉아있으니 후지아저씨가 오시더니 너네들 딱 보니까 이거 좋아하지? 하면서 대마초를 쓱쓱 말기 시작한다.


“이거 인도 최고 바쉬쉿산이야. 싸게 해줄게. 이만큼에 1200루피만 줘”


그리고 우리가 필요없다고 하니 언제든지 연락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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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그 아저씨는 후지게스트 하우스 주인인 미스터 후지도 아니고 종업원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대마초 파는 아저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우리를 방안내 해주고 키도 주고 방에 불 켜주고 선풍기 작동법 가르쳐주고 했는데 결국 게스트하우스랑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라니. 역시 인도는 재밌다. 다음날도 길가다 만났다. 미스터후지가 아닌지 알았지만 그냥 가끔씩 담배 하나씩을 주고 이야기하며 재밌게 놀았다. 레는 아니지만 여기는 아직 인도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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