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쉬쉿. 마약같은 도시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긴 오르막 골목으로 이루어진 바쉬쉿의 맨 가장자리에 위치한 후지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우리는 거길 벗어나기가 너무 귀찮았다. 우리방 창문으로 보이는 식당. 걸어서 딱 1분거리에 있는 이 식당은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터지고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쌌다.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밥 먹으면 간단한 과자 혹은 담배 사러 숙소와 식당사이 그러니까 우리방에서 30초거리에 있는 이 슈퍼에 들렀다 방으로 돌아오는게 우리 일상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반가운 얼굴이 왔다. 레에서 만난 동갑내기 제일교포 친구 륭법이다.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간다는 걸 마날리로 다시 오라고 열심히 꼬셨는데 진짜 여기로 왔다. 반가웠다. 그리고 옥상에서 멍하게 앉아있던 일본인 여자애 카나짱까지 네 명의 멤버가 되었다. 카나짱도 세계일주 중이란다.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까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단다. 그리고 륭법이.
전직 프로 축구 선수. 무릎 부상 때문에 축구 선수를 은퇴하고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세계일주를 나왔다. 오늘 알아낸 사실. 위키피디아에 한국을 빛낸 제일동포 축구선수에 륭법이 이름이 나온다.
륭법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꽤 친해졌다. 그래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륭법이에게 궁금한 것이 생겨 물어봤다.
“한일전 축구 하면 너는 누구 응원해?”
륭법이가 코웃음 치며
“야 당연한 거 아니냐. 당연히 한국 응원하지!”
의외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고 지금까지 륭법이랑 일본어로만 대화해서 일본에 대한 애국심이 더 강할 줄 알았는데 결국은 한국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국말이 조금 서툴기는 하다. 그리고 륭법이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국이랑 북한이랑 전쟁하면 누구 편에 서야 할지는 모르겠어”
이건 더 의외였다.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런거지 하고 물었더니
“우리는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녀. 한국정부에서는 제일동포 교육 지원을 안해줘서 북한이 운영하는 조선학교에서 북한식 교육과 사상을 배워. 그래서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긴 한데 북한쪽 생각도 가지고 있어”
충격적이었다. 왜 한국정부는 제일교포 교육에 돈을 쓰지 않는 걸까.
그렇게 바쉬쉿에서 유명하다는 온천은 근처에도 안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하다 3일이 지나고 안되겠다 싶어 마날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륭법이는 이미 마날리를 가 본적이 있어서 걸어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길래 걸어 가기로 했다.
운동선수의 30분은 우리에게 1시간 정도였다. 거기다 바쉬쉿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쭉 내려가서 마날리에 도착해서 올드 마날리까지는 다시 오르막길 이었다. 자꾸 뒤쳐지는 카나짱 배낭을 내가 매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숙소를 찾아다녔다. 적당한 가격에 방 두 개를 잡고 짐을 풀었다.
아마도 마날리에서도 바쉬쉿과 비슷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