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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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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Feb 26. 2021

나 홀로 신주쿠에서의 긴 밤

신주쿠 

여행이 시작되었다. 난 분명히 휴가로 일본을 간건데 여행이 되어버렸다.


인천공항에서 도쿄 하네다 공항 도착 예정 시간은 밤 11시. 그런데 비행기를 댈 곳이 부족한지 부족했는지 도쿄 하늘을 한참 뱅글뱅글 돌다 11시 20분이 되어서야 비행기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항심사. 미쳐버리겠다. 일본인 여권 소지자는 몇 명 없는데 외국인 여권 소지자 검사 창구와 일본인 여권 소지자 창구의 수가 같다. 일본인들은 쓱쓱 빨리도 통과하고 나간다. 반면에 줄서 있는 외국인들은 몇 백 명은 되어 보였다. 일본인 우선이라는 규정이 있나보다. 어마어마하게 기다렸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12시 10분. 오늘 머물기로한 사토시상과는 아사가야역에서 12시 반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전철 시간을 봤지만 이미 마지막 전철은 끊겼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물어보니 2시까지 신주쿠행 리무진 버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밖으로 뛰어 나가니 12시 23분. 


12시 25분 차는 이미 만석이고 다음 차가 1시라는 말에 얼른 공중전화를 찾아 사토시상에게 전화했다.


“죄송한데 1시차를 타고 신주쿠에 가면 2시쯤 될 것 같아요. 거기서 택시타고 아사가야역까지 가면 2시 반쯤 될 것 같은데. 그때 아사가야역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나 때문에 잠도 못 자는 사토시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며 담배를 하나 피고 버스 표를 끊고 1시차를 줄 서서 기다리는데 직원이 오더니.


“죄송한데 1시차는 이미 만석이고 다음 차 1시 40분 차를 타세요”


그래서 다시 전화했다.


“사토시상. 방금 눈 앞에서 1시차를 놓쳐서 1시 40분 차타고 가요. 그래서 신주쿠 도착하면 2시 40분. 택시 타고 아사가야 역까지 가면 3시쯤 되겠네요. 차라리 신주쿠에서 혼자 대충 술 한잔 하면서 기다리다가 첫차 타고 갈게요. 일단 주무시고 계세요!”



그렇게 다시 공항에서 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원래 항상 10시가 되면 잠들고 싶지 않아도 곯아 떨어진다. 일 때문에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일 마치고 온 거라 당연히 피곤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본에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서 잠들면 신주쿠역에 못 내린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그렇게 졸리진 않았다. 버스를 타고 오며 새벽 두 시의 잠든 이 도시를 느꼈다.


신주쿠역에 도착하니 2시 10분.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다. 30분만에 도착했다.


홍대에 살았던 나는 신주쿠와 홍대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홍대는 24시간 먹고 마실 곳이 있지만 신주쿠는 그렇지 않았다. 이 곳은 잠들기 시작 한 것 같다.


‘이럴줄 알았으면 택시타고 아사가야까지 갈걸. 첫차시간까지 뭐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무작정 불빛이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전에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한국에 흔한 큰 빌딩에 있는 화장실 같은 건 없었다. 한국에 널리고 널린 24시간 카페도 없었다. 문을 연 식당이나 술집이 있어도 화장실만 쓰고 나오긴 좀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신주쿠의 길도 모르는 주제에 큰 배낭을 들쳐 메고 30분은 걸었다. 봄이 찾아와 따뜻한 한국과는 달리 생각보다 쌀쌀한 도쿄에서 남방 한 장에 큰 배낭을 메고 정처 없이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나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잘 안가는 후미진 곳도 없다. 노상방뇨도 안된다. 한계가 찾아 올 때쯤 옆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함성소리도 들린다. 여기구나. 작은 바(bar)겸 클럽 같은 곳이다.



입구에 있는 코인 로커에 돈을 넣고 큰 배낭을 그 안에 구겨 넣고 바(bar)로 들어갔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다들 춤을 추고 있다. 일본인은 한 두 명.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남자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일단 다 필요 없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가장 급한 용무를 마치고 바(bar)로 가서 주문했다. 그랬더니 바텐더는


“여기 오더는 끝났어요. 3시에 문 닫아요”


시계를 보니 2시 50분이다. 허탈해하며 테이블에 앉아 담배 하나만 피고 나가자하고 불을 붙였더니 아까부터 계속 나를 쳐다보던 서양인 남자가 내 옆에 앉는다.


“혼자 왔어?”


뭔가 이상하다. 말투도 이상하고 나를 바라보는 눈이 뭔가 촉촉하다. 게이다. 이건 문제가 아니다. 여기 있는 모든 남자가 게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게이바에 잘못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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