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
션형은 시엠립에 처음 와서 내가 안내하기로 했다. 전에 갔던 야마토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도미토리방은 역시 그대로였다. 하룻밤에 2불. 션형은 자기가 돈 좀 더 낼 테니까 에어컨 있는 방으로 가지 않겠냐고 한다. 어차피 오늘 짜증도 났고 피곤해서 시원하게 있고 싶긴 했다. 야마토2 라는 건물이 바로 뒤에 있었다. 거기는 에어컨이 있는 더블룸만 있는 듯했다. 짐을 내려놓고 샤워하고 게스트하우스 식당으로 가 밥을 먹으면서 차가운 생맥주 한잔씩 했다. 역시 캄보디아 맥주는 좋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더운 날에 마시는 맥주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시 온 캄보디아에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 미소. 거대한 나무들. 찌는듯한 더위. 모든 것이 그대로다. 올 때마다 변해가는 것이 보이는 태국이 아쉽다.
캄보디아의 아침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의 찌는듯한 더위는 온데간데 없고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지적이는 새들이 귀를 즐겁게 한다. 캄보디아에서 에어컨이 있는 방에 머물긴 처음이었다. 뭔가 캄보디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쾌적한 방에서 개운하게 아주 잘 잤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고 게스트하우스 식당으로 가 간단한 아침과 모닝맥주 한잔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션형은 어제 예약한 대로 아침에 앙코르왓 투어를 갔다. 나는 이미 가본 곳이라 흥미 없어 숙소에서 좀 쉬다 자전거를 빌려 시엠립 시내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1년반전 여기 왔을 때는 1년중 가장 덥다는 4월. 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더위와 싸우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면 이번엔 성수기가 시작된다는 11월. 그때보다는 그나마 덜 더웠지만 캄보디아의 열기가 어디 갈까.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다시 시엠립에 왔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펍스트리트와 나이트마켓을 혼자 뱅글뱅글 돌아봤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전거로 톤레삽 호수를 갔다 왔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시간도 많고 기분도 좋은데 자전거를 타고 길이 나있는 곳으로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나는 길치라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구불구불하지만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돌아올 때 이 길을 따라오면 다시 숙소로 돌아오겠지 하고 페달을 밟았다. 한 20분쯤 갔을까. 길 옆으로 늪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그 늪지대는 거대한 호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톤레삽 호수다. 대부분 투어로 여기에 온다고 하지만 혼자서 자전거로 여기에 왔다는 성취감에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호수다. 구글맵에서 동남아시아 전체의 지도가 한눈에 다 보이게 크기를 줄여도 보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수다. 그래서 그런지 가도가도 끝이 없다. 후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톤레삽 호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고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호수란다. 규모도 규모지만 이색적인 호수의 모습이 눈을 때지 못하게 만든다. 우기가 막 끝이 났는지 황토색의 탁한 물 색깔과 제멋대로 솟아있는 엄청난 수의 나무와 풀들 그리고 캄보디아인의 일상이 돋보인다. 아이들에게 낚시를 가르치고 있는 아버지도 보이고 물이 가슴높이까지 오지만 호수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채취하는 아가씨와 노를 저으며 한가로이 떠도는 뱃사공들까지 보인다. 혼자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서서 사진도 찍고 풍경에 흠뻑 취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하고 자전거 머리를 돌려 가는데 오두막 같은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가보니 더위를 피해 현지사람들이 오두막 안에서 주섬주섬 맥주를 꺼낸다.
"같이 한잔 해요"
그래서 오케이 했더니 빈 페트병을 칼로 잘라 임시 컵을 만들어주더니 맥주를 따라준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보는 맥주다.
'캄보디아에 흑맥주가 있었나?'
한참 목이 마른 나는 벌컥벌컥 마셨다. 캄보디아 맥주는 맛있다. 꿀맛이다. 오두막 안의 사람들 중 한 명만 영어를 모든 통역을 해주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가방에서 살아 있는 자라 한 마리를 꺼낸다.
"이거 요리해먹으면 맛있어. 방금 여기 호수에서 잡은 거야. 밤에 요리해먹을 건데 너도 올래?"
나는 웃으며 사양했다. 자라는 무슨 맛일까 궁금했지만 밤에 혼자 여기까지 또 오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더운데 맥주까지 마셨더니 취기가 돌고 잠이 슬슬 오기 시작했지만 정신차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너무 즐겁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 가방에 있는 현금을 다 털었더니 딱 5불 나온다. 그래서 영어 할 수 있는 친구한테
"미안한데 이거밖에 없어. 이거라도 맥주 값 할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손을 저으며
"너는 우리 친구야 돈은 안 줘도 돼. 다음에 또 놀러 와"
기분 좋게 톤레삽 구경하고 기분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낮잠을 좀 자고 식당에 앉아 있으니 투어를 마치고 션형이 돌아온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