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
어제 자전거로 시엠립 시내와 톤레삽 호수까지 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고 션형에게 말했더니 카메라를 챙겨 한번 더 가자고 따라 나선다. 시엠립을 자전거로 정말 몇 번이나 돌고 돌아 길치인 나도 길을 거의 다 외울 정도 지만 언제나 좋다.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아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마을로 들어가니 션형의 카메라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션형은 사진도 잘 찍지만 무엇보다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지식도 많고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조그만 개울에서 빨개 벗고 수영하며 노는 캄보디아 아이들.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바삐 등교하는 학생들. 길거리에서 시원한 코코넛 주스를 파는 상인들까지. 사진을 찍을 대상은 넘치고 넘쳤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캄보디아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들. 나도 덩달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내 카메라는 그렇게 좋은 모델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똑딱이다. 항상 배낭을 메고 장기여행을 즐기는 나는 크고 무거운 DSLR은 사치라고 생각해왔다. 결국 여행이 끝나고 남는 것은 사진인데. 좀 더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사진 찍을 시간에 그 순간을 좀 더 즐기자는 생각이었다. 션형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듯해 보였다.
"넬리야 여기 정말 사진 찍기 좋은 것 같아. 우리 저기서 쉬면서 여기만 계속 한번 사진 찍어보자. 한 곳을 찍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 빛이 바뀌니까 계속 다른 느낌이 날 거야"
션형의 말이 맞았다. 한곳에 가만히 서서 그곳만 사진을 찍어도 계속 다른 사진이 나왔다. 신기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남짓 사진을 찍고 목이 말라 사탕수수 주스 하나 사먹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내 자전거는 바퀴에 바람이 많이 없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어쩐지 계속 형보다 뒤쳐지는 게 이상하다 했다. 죽을 힘을 다해 힘껏 페달을 밟아 숙소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빨래도 좀 해놓고 둘 다 뻗었다. 역시 낮잠은 쾌적한 에어컨이 있을 때 더 푹 잘 수 있는 것 같다.
바닥에 물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 온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쏟아 붓는다. 동남아 여행에서의 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에 더욱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해준다. 빗소리에 잠을 깬 듯한 션형이 좀 당황한 것 같다.
"넬리야 이제 우리 뭐하냐?"
"우리 할 것도 없는데 카드나 해요. 제가 일본카드 게임 가르쳐 드릴께요"
그렇게 남자 둘이 침대에 앉아서 카드게임을 시작했다. 일본카드게임 다이후고를 몇 번하다 션형은
"야 이거 너무 어렵다. 너 훌라 할 줄 아냐? 내기 훌라 하자"
션형은 훌라는 너무 잘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잘한다. 내가 계속 진다.
"넬리야 우리 10번해서 한번이라도 니가 이기면 니가 이긴 걸로 하고 내기 걸자"
그리고 10판 내리 졌다. 알고 보니 형은 아이큐가 140이 넘는 사람이었다.
"형 게임 해서 돈 걸고 하면 기분도 상하고 싸우고 하니까 나이트마켓에서 티셔츠 사주기로 해요"
"야 밥 한끼가 2불도 안 하는데 티셔츠 걸고 하면 더 기분 상하지 좀 비싼 거 아니냐?"
"형 여기 티셔츠 2불이에요. 가끔씩 많이 사면 서비스도 주고 원플러스원 이런 거도 많아요"
그렇게 열심히 카드게임을 해 각자 형이 좀 져줘서 티셔츠 3장씩 사주기로 하고 비가 그치면 나가기로 했다.
비가 그칠 때쯤 반가운 연락이 왔다. 방콕 지니네 게스트하우스에 있을 때 만난 중국 친구 동동. 이번에 방콕에 갔을 때 중국 잠깐 들어갔었다고 해서 못 만났었는데 내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오늘 시엠립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것도 남자친구랑 같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야마토 게스트하우스에 있다니까 남자친구가 여길 아는지 오토바이 타고 금방 온다고 한다.
1년반만의 재회. 프랑스인 남자친구 루도.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를 또 다른 여행지에서 만나는 것만큼 행복하고 스릴있는 일이 있을까. 그 동안의 각자 여행 얘기를 하고 루도와도 아주 가까워졌다. 루도는 캄보디아에서 4년째 살고 있단다. 캄보디아어도 능숙하다. 오늘은 동동과 루도가 비행기타고 오느라 피곤하니 간단하게 맥주한잔만 하고 내일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동동과 루도가 캄보디아에서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을 이때까지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