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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섬 생활

캄퐁참

by nelly park

캄보디아에서의 삶은 단순 그 자체다. 요바나와 벤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삶은 더더욱 단순해졌다. 식당도 슈퍼도 없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와이파이도 없다. 밥은 끼니때가 되면 요바나에게 주문하면 요리해서 준다. 메뉴는 한 두 가지로 통일이다. 밥을 먹고 나면 커피 혹은 주스 한잔. 그리고 낮잠을 자거나 강가에 누워 멍하게 있거나 기타를 치거나 카드게임을 한다. 육지로 나가려면 하루에 몇 번 없는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철저히 고립된 캄보디아의 섬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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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는 이곳에서는 정말 오롯이 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강을 가만히 바라 보고 있으면 지난 내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또 그것을 곱씹고 다시 곱씹고. 그러다 갑자기 깨달음이 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노는 만큼 성공한다’ 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멍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생각이 떠오른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밤샘 회의 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라고 백날 말해봐야 소용없다. 하루 이틀 그들에게 휴가를 주고 멍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아이디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강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깨달음을 글로 혹은 영상으로 기록해 놓진 않았지만 많은 것을 느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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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로 갈 수가 없으니 숙소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나 콜라를 꺼내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요바나나 벤에게 주문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스박스 옆에 있는 공책에 자기 이름을 쓰고 꺼내간 물품을 써놓고 나중에 계산을 하면 됐다. 이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되면 꼭 이렇게 해봐야지.


멍하게 누워있지만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갈까. 어느덧 어둑어둑 해가 진다. 매트리스가 없으니 일단 임시로 모기장만 치고 딱딱한 나무 오두막 위에서 자야 한다며 벤은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밤새 허리가 아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잠을 설쳤지만 그것도 하나의 추억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 션형은 일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났다. 나도 잠을 설친 김에 형을 따라 나섰다. 아직은 불빛이 전혀 없어서 어두운 숲 속 길을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쭈욱 따라 걸어가니 탁 트인. 마치 ‘일출은 여기서 사진 찍으시오’ 라고 적혀 있을법한 곳을 발견하고 해가 뜨길 기다리고 사진을 찍었다. 섬 위에서 보는 캄보디아의 일출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뭐라 형용할 마땅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이 아름다운 일출덕분에 여기 있는 동안 매일 훌륭한 아침을 맞이 한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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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가니 다들 눈을 뜨고 따뜻한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대충 씻고 밥을 먹었다. 또 강가에 다들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맥주한잔하며 떠들고 기타치고 노래하고 웃고. 바쁘게 움직이는 이 세상에 마치 우리들만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계속 나른하게 누워있다 섬을 한 바퀴 돌며 산책도 하고 밤은 또 깊어오고 다음날 또 같은 날이 반복되었다. 동동은 약간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육지로 나가지 않을래?”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여기 너무 좋은데? 여기에 계속 있고 싶어. 평화롭고 한가하고 좋잖아”


동동은 인상을 찌푸린다.


“남자들은 몰라. 루도랑 션이랑 너랑 다 남자 자나. 여자는 좀 편한 침대에 자고 싶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좀 하고 싶고 그래.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여기 누워있는 것도 좀 지겨워”


듣고 보니 맞는 일리가 있다. 그래서 다음날 배를 타고 다시 선셋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문명을 즐겼다. 슈퍼에서 담배도 사고 음료수도 사먹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었다. 테라스에 앉아 다시 강 반대편에서 섬을 바라보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기분 좋은 나날들이지만 이제 떠날 때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침 루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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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퐁츠낭이라는 곳에 우리 부모님이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해서 거기 가볼까 하는데 어때?”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자”


내일은 또 다른 곳에서 다른 풍경을 보며 멍하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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