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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y 01. 2021

여행자들의 이런저런 이야기

비엔티안

생각해보니 나는 여기서 영웅 놀이를 좀 즐기고 있지 않나 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여행 고수 아키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동남아 가는 친구들은 이제 막 배낭 사서 메고 지금부터 여행 좀 다녀보렵니다!”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여기 라오스에 와서 이곳저곳 여행 경험을 얘기하면서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갔던 중앙아시아는 도시와 도시 사이에 대중 교통도 없어서 지프를 렌탈해서 다녀야 한다는 둥 카타르에서 왕자 통역관이었던 시절 장난 아니었다는 둥 인도 안 가봤으면 여행 시작도 안 했다는 등등. 이렇게 나도 여행 꼰대가 되어 가나보다.



어젯밤에 체크인한 한국인 조 형님. 올해 마흔 살에 외모는 그냥 평범한 한국인 남자처럼 보였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이랑 영어로 이야기할 때 외국에서 좀 살다 왔다 보다 할 정도의 영어 실력 말고는 잠깐 휴가로 왔나 보다. 왜 도미토리에서 머무는 거지 하는 생각만 했었다. 알고 보니 20대 때 어마어마하게 여행을 하신 분이었다. 


“형님. 저는 저 말고 중앙아시아 갔다 온 사람 처음 만났어요”


라고 말하니 형님은 웃으시며 말하신다.


“나는 60개국을 돌면서 나보다 영어 잘하는 한국인은 처음 봤다”


그건 당연하다. 나는 영어 선생님이다. 


“처음에 정체가 뭔가 했다. 서양 애들하고 얘기할 때는 미국 사람으로 변하고 옆에 일본애가 있으면 일본어로 했다가 또 나랑 얘기할 때는 한국말도 완벽하고. 얘는 도대체 뭐야 했어”


그리고 점심시간 때쯤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할아버지. 레바논 출신 알리 할아버지. 이분은 정말 전설적인 분이신 것 같다. 여행만 30년동안 하고 계시단다. 라오스에만 벌써 3년. 아직 10년 정도는 더 떠돌아다니실 거라고 하신다. 이미 라오스어와 말레이시아어까지 하신다. 동남아에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없었던 시절에 오셔서 영어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했지만 어떻게 일을 구하고 살아 남아 지금도 계속 여행을 하고 계신다고 하신다.



그렇게 낮술을 하다 도저히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시원한 에어컨 방에 조금 누워있자 해서 1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내려갔다. 그러자 알렉스가 말한다.


“내일 이 멤버들 중 대부분이 떠나니까 마지막으로 좀 괜찮은데 가서 밥도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하고 오자”


여기서 알렉스의 대단함을 배웠다. 알렉스가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나까지 합해서 12명이 모였다. 나는 그 중에 빌랄이랑 조 형 빼고는 인사만 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알렉스를 중심으로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이다. 알렉스는 숙소 앞 테라스에 앉아 모든 사람들한테 다 인사하고 말 걸고 거기다 재미있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12명이 우루루 밖으로 나가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MIX’ 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분수도 있고 라이브 공연도 하는 분위기 있는 곳이다. 처음에 들어가서 웨이트리스한테 말했다.


“12 (TWELVE)!”


여긴 로컬 식당이라 그런지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나 보다. 그래서 아껴뒀던 슈퍼파워를 썼다. 태국어로 억 이하까지는 숫자를 셀 수 있는 나는 태국어와 라오스어가 숫자 세는 게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12 (십쏘옹)”


그러자 그 웨이트리스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구석의 가장 큰 자리로 안내해준다. 각자 맥주를 시키고 나를 포함해 몇 명은 피자를 시켜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는데 천둥 번개랑 같이 비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비가 흘러 넘쳐 자연 분수대가 만들어졌다.



아무도 우산 가져온 사람은 없다 어떻게 집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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