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돈
어제 정신없이 놀았더니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오랜만에 7시 넘어 일어났다. 푹자고 일어난거 같은데 몸이 무겁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시간을 즐기지도 못하고 초점나간 눈을 하고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다들 좀비같이 하나둘씩 나온다. 일단은 배가 고파 아침을 먹고 또 숙소로 돌아와 이리딩굴 저리딩굴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들 오늘은 아무생각이 없나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오늘은 송크란의 메인이다. 추석으로 치면 추석당일이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랑 아주머니 친구들도 숙소앞 식당에서 음악 틀어넣고 맥주 마시며 신나게 춤추고 논다. 평소 같으면 나도 내려가서 같이 놀았겠지만 오늘은 안되겠다.
또 점심을 먹고 각자 자리에서 딩굴딩굴 거렸다. 카드게임도 좀 하고 다시 낮잠도 자고. 드디어 내일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버스티켓을 끊었다. 한 사람당 16불. 원래는 여행사 앞에서 픽업인데 crazy gecko에 머문다니 숙소 앞으로 보트가 픽업 갈거란다. 숙소 옆에 강으로 내려 가는 작은 길이 있는데 거기로 보트가 오나보다. 픽업 시간은 8시 10분. 캄보디아 도착 예정 시간은 1시반. 나는 몇번이나 국경 넘어 캄보디아로 가봤기 때문에 안다. 국경까지 미니벤이나 버스를 타고 갔다가 국경 넘으면 작은 미니벤이나 택시로 갈아타야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확인했다.
“여기서 VIP 버스라고 적혀 있는데 국경 넘으면 버스로 갈아타요? 아니면 미니벤이에요?”
그러자 여행사 직원은 웃으며
“걱정마세요. 보트타고 선착장가서 미니벤으로 갈아타서 미니벤으로 국경까지 가서 국경 넘으면 아주 좋은 VIP 버스가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믿기지는 않지만 일단 오케이하고 왔다. 사실 미니벤으로 가는거랑 버스로 가는거는 꽤 차이가 크다. 한시간 가는 거면 미니벤도 괜찮지만 장기간 이동이라면 꼭 버스로 가려고 노력한다. 미니벤은 일단 좁다. 의자 하나에 두사람이 앉을 수도 있다. 다리를 펴기도 힘들다. 버스는 좀 느릴 수는 있지만 그나마 의자 하나에 한 사람이 앉아서 간다. 그리고 라오스 돈이 간당간당하게 남아서 50불 더 환전 했다. 어차피 내일 라오스를 떠나서 다 못 쓸꺼라는걸 알지만 난 확신한다. 언젠가 또 라오스로 올꺼 같다. 그렇게 벌써 라오스에 네번이나 왔으니 다섯번은 어렵지 않지.
그리고 숙소로 가기전 마지막으로 섬을 좀 더 돌아보고 싶었다. 매트와 지원이는 피곤하다고 숙소로 먼저 가고 나와 라우라는 항상 타운쪽으로만 걸었었으니 반대쪽으로 걸어서 이 섬의 반대편을 보고 싶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니 외국인이 아예 없는 그냥 시골 마을이다. 경치도 좋고 사람들은 더 순수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섬이 크다. 해가 지려고 점점 어두워지는데 아직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한참 남은 듯하다. 물론 어제 다들 취하기는 했었지만 어제 어두워서 숙소를 찾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는 밤이 되면 불빛이 아예 없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완전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 당구대가 있어서 넷이서 당구를 치기로 했다. 매트랑 나, 그리고 지원이랑 라우라. 남자 둘 여자 둘이다. 2대2로 편을 어떻게 짜지 하고 고민하는데. 지원이가 말한다.
“그럼 남자 둘이서 하면 우리가 불리하니까 남자끼리 가위바위보 하고 여자끼리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끼리 한팀 그리고 진 사람끼리 한팀하면 되겠네”
그렇게 하면 되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라우라가 황당해 하며 말한다.
“왜 여자끼리 한팀하면 지는거야? 여자끼리 한팀해도 이길 수도 있지!”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여자는 남자보다 약한 존재 혹은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인 것 같다. 남녀가 데이트가 끝나고 매번 남자가 여자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여자가 매번 남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고 여긴다. 남녀가 같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무거운 음료수나 쌀을 남자가 들고 가벼운 야채나 과자류를 여자가 들고 같이 집으로 가는 것은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넷이서 대댄찌를 해서 남녀가 한팀이 되었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