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퉁트렝
어제 다들 푹 쉰 덕분에 일찍 일어났다. 8시 10분 숙소 옆 보트가 댈 수 있는 곳에서 픽업이라 얼른 짐을 싸놓고 밥을 먹었다. 픽업 시간이 되도 보트가 안 오길래 우리를 까먹고 그냥 지나 갔으면 어떻하나 돈뎃에 하루 또 머물러야 하나하는 걱정도 했었다. 오토바이나 미니벤 픽업은 익숙한데 보트 픽업은 처음이라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리고 보트는 8시 반쯤에나 온다.
보트에 짐을 싣고 나카송 선착장에 도착. 국경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는 곳은 우리가 팍세에서 여기로 왔을 때랑 같은 버스 정류장이다. 9시가 안되서 도착했지만 버스는 10시에 온단다. 실제로 우리의 목적지 캄보디아 스퉁트렝은 거리상 얼마 안 걸리는데 기다리고 뭐하고 하는 시간까지 하면 1시 반 도착이라는건가. 신기한 건 이 시골마을의 조그만 버스정류장에 우리나라에도 없는 무료 와이파이가 있다. 심지어 꽤 빠르다.
10시가 되어 미니벤이 오고 라오스 국경을 향해 달렸다. 역시나 얼마 걸리지 않는다. 라오스 국경 넘는 거쯤이야 익숙하지 하고 여권을 내밀었더니 스탬프 피로 2불을 달란다. 이건 언제부터 생긴거지. 옛날 같았으면 ‘와이?’ 하고 따지면서 버텼을텐데 그냥 2불 주고 통과했다.
이제 조금은 긴장되는 캄보디아 국경 넘기다.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때마다 귀찮게 하고 돈도 요구했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준비된 사진과 비자피 35불을 줬다. 그러니 신기하게 비자를 그냥 뚝딱 만들어준다.
‘엇 이럴리가 없는데. 아 비자는 그냥 주고 도장 받는데서 귀찮게 하려나’
하고 비자가 붙어있는 여권을 내밀었더니 그냥 도장을 찍어준다. 엇 이상하다. 캄보디아도 국경마다 다른가보다.
드디어 캄보디아 입성. 캄보디아 국경을 지나니 오토바이 탄 기사가 손가락으로 조그만 로컬 슈퍼마켓을 가리킨다.
“저기서 기다리세요”
슈퍼 앞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려도 역시나 버스는 오지 않는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그냥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랑 분명히 같이 라오스 국경을 넘었던 다른 서양여행자들이 한시간이 지난 이제야 나온다.
“너네 지나가고 뒤에 다른 그룹이랑 같이 여권 냈는데 2불 달래서 그 그룹이 안내고 버티는거야. 그래서 우리도 버텼는데 이민국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는거야. 그래서 그 중 어떤애가 그냥 2불 낼께하고 한명이 내니까 다 따라서 내고 나온거야”
그 중 한명이 말한다. 알고보니 라오스에서 나올 때 2불 내는 법이 생겼단다. 안버티고 그냥 돈 내길 잘했다. 그리고 또 알고보니 버스가 안 온건 얘네들도 태우고 다 같이 캄보디아로 가야하는데 안 나와서 얘네들을 기다린거다. 이제 나올 사람이 다 왔는지 10분 있으니 버스가 온다. 역시나 버스는 우리 버스가 아니었고 옆에 작은 미니벤에 타란다. 어제 분명히 티켓을 살 때 몇 번이나 확인하며 ‘big VIP 버스’라고 했는데. 그래 내가 캄보디아에서 ‘big VIP 버스’를 본적이 없는데 이럴줄 알았다.
미니벤을 타고 한시간 반쯤 가니 스퉁트렝에 도착한다. 도착하니 세시쯤. 이동 거리는 다 합쳐서 두시간 반쯤 되지만 총 소요시간은 7시간이 걸렸다. 이래야 동남아지.
툭툭을 타고 강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짐을 풀고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적당한 곳에 들어가 밥을 먹고 맞은 편에 꽤 간판이 세련되고 깔끔한 카페가 보인다. 난 죽어도 저기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해야겠다. 너무 덥고 피곤하다. 여긴 간판만 봐도 에어컨이 있는 게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릴 반긴다. 얼마만에 에어컨인가. 그리고 얼마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 생각 같아선 여기 죽치고 앉아서 안 나가고 싶었지만 일단은 숙소로 돌아왔다. 여긴 국경 도시라 그런지 뭔가 사람들이 경계심도 있는거 같고 불안정한 느낌이다. 라오스에서 와서 그런가. 캄보디아랑 라오스 사이가 안 좋아서 국경 마을에 긴장감이 감도는건가. 사실 라오스에서 캄보디아로 넘어오기 몇 일전부터 육로로 라오스에서 캄보디아로 오는 국경이 닫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두 나라가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겨 군대 배치까지 됐다는 기사도 읽었다. 일단은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왔는데 다행히 국경을 문제없이 넘긴 했지만 모르겠다. 최대한 조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다.
어차피 여기는 캄보디아에 와서 잠깐 쉬었다 갈 생각으로 온 도시라 내일 바로 크라쩨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픽업시간은 아침 7시반. 원래 나 혼자 여기서 크라쩨로 가고 매트와 지원이는 앙코르왓이 있는 시엠립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이 친구들이 생각을 바꿔 같이 크라쩨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숙소 앞에서 맥주 한잔하며 밤이 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고팠지만 돌아다니지 않고 그냥 자고 내일 먹기로 했다. 밤은 더 조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