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
정말 오랜만에 혼자 조용한 아침을 즐겼다. 숙소에 사람도 많고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라 항상 아침에 테이블에 앉으면 사람이 있었다. 어제 사람들이 다들 술을 많이 마셨는지 다른 곳으로 떠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일로 나 혼자다. 심지어 매트도 내가 일어나고 30분안에 항상 굿모닝 하고 나오는데 오늘은 피곤했는지 1시간 반 있다 나온다. 오랜만에 조용하게 멍때리고 일기도 쓰고 좋다.
매트가 나오고 간단하게 커피랑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루도에게 연락이 왔다. 루도는 5년전쯤 캄보디아 여행할때 만난 프랑스 친구다. 이 친구는 캄보디아를 너무 사랑해 정확히 말하면 딱딱하고 정형화 된 프랑스가 싫어서 캄보디아에서 계속 살고 있는 친구다. 예전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시엠립에 살며 운전기사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인 여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는 루도는 자기집 약도랑 오는 방법을 사진으로 상세하게 보내주며 놀러오란다. 날씨도 덥고 나가기 귀찮지만 오늘 못보면 이제 또 언제 볼지 모르기 때문에 툭툭을 잡아 사진이랑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루도집으로 갔다. 루도집까지 툭툭 기사랑 처음에 2불에 흥정했지만 도착해서 웃으며 3불 줬더니 툭툭기사 얼굴이 환해진다.
역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거랑 현지인집에 가는 거랑 너무 다르다. 현지인 집에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건 진짜 여행이 아닐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 친구집에 잤을때도 그랬고 대만친구집에 그리고 일본친구집에 잤을때도 그랬다.
5년만에 보는 루도와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작지만 아늑한 방이다. 라오스산 원두와 캄보디아 몬돌키리산 원두를 보여주며 어떤걸로 마시고 싶냐고 루도가 물어본다. 커피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뭔가 몬돌키리산 커피향이 더 좋다. 그러자 루도는 직접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준다. 그리고 루도랑 같이 여행하다 만난 다른 프랑스 할아버지 프랭키가 집으로 온다. 옆집에 산단다. 언제봐도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할아버지다. 이번여행에 네팔도 간다니 네팔 역사부터 지금 정치상황. 지진전과 후의 네팔인들의 생활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신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루도의 여자친구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온다.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한다고 한다. 선한 인상에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다. 루도가 묻는다.
"넬리야 배 안고파? 스파게티 해줄까? 맥주도 한잔할래?"
그러고는 여자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고기와 맥주를 사서 온다. 너무 미안해서 돈을 주려고 해도 절대 안받는다. 여자친구는 일하고 와서 쉬고 루도가 능숙하게 뚝딱뚝딱 요리를 해서 준다. 너무 맛있다. 스파게티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밥 먹으며 감동하고 있으니 캄보디아 꼬마 여자애가 또 집에 놀러온다.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에 수줍음도 많다. 밥 먹고 맥주한잔하고 있으니 과자도 몇 개 주고 간다.
"여기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이랑 다 가족이야. 저기 있는 강아지들도 맨날 우리집에 와서 자. 옆집 꼬맹이도 심심하면 우리집에 놀러와서 같이 밥먹고 밤에는 사람들끼리 같이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 기계 가져와서 노래도 부르고 좋아"
너무 좋아보인다. 맥주 세캔 정도 비우고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야할거 같아 루도에게 물었다.
"여기는 도시에서 좀 외곽에 있는데 툭툭 잡을 수 있을까?
루도는 웃으면서 말한다.
"여기 옆집도 툭툭있고 그 옆집도 툭툭있고 그 옆집은 오토바이도 있어. 걱정마"
하고는 옆집 아저씨 툭툭을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다들 테이블에 모여있다. 오늘은 바베큐 하는 날이다. 바베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맥주 한잔하며 놀고 있으니 바베큐를 시작한다. 루도네서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어 배터지게 먹었더니 생각보다 바베큐는 많이 못먹었다. 다들 맛있게 먹고 또 맥주 마시며 놀았다. 그리고 젠가를 했다. 그냥 젠가가 아닌 젠가 블럭에다 벌칙을 써놓고 그 블럭을 뽑으면 적혀있는대로 해야한다. 블럭을 빼다 젠가가 무너지면 샷을 하나 사 먹어야 한다.
벌칙은 다양했다. 비밀하나 말하기. 술 원샷하기. 옆사람한테 좋은 말 하나 하기. 티셔츠 바꿔입기 등등. 다들 술을 먹으며 조금씩 취하기 시작하고 나를 포함한 게임 멤버 대부분이 내일 아침 일찍 스케쥴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마지막엔 나를 포함해 네명이 남았다. 나도 피곤하고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여기서 마지막 밤이 끝나는게 너무 아쉬웠다.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만나서 캄보디아까지 계속 여행을 같이 한 매트와 지원이도 내일이면 다 흩어진다는 사실도 실감이 안난다. 여행을 꽤 많이 하면서 수많은 이별을 해봤지만 아직도 이별은 낯설다.
아쉽지만 나도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마지막날 답게 특별하고 진한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방콕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