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인지 담배를 너무 많이 펴서 인지 아니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잠을 깊게 못잤다. 아침 7시 픽업이라 6시반에 알람을 맞춰놨지만 5시 반쯤 눈을 떠 그냥 침대에서 내려와 샤워를 했다. 오늘은 긴하루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걸까 왠지 샤워를 하고 싶었다.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서 나와 숙소 테이블에 앉아 픽업을 기다렸다.
어제 루도네 집에서 숙소에 오자마자 오늘 방콕가는 버스티켓을 예약했다. 옛날 같으면 여기저기 여행사 다 돌아다니며 가장 싼 티켓을 찾았었지만 이번 여행은 그냥 좀 여유롭게 하기로 했다. 터무니 없는 바가지 요금만 아니면 그냥 처음 간 곳에서 티켓을 산다. 숙소에서 미니벤을 타고 가면 11불이고 다이렉트 버스를 타면 15불이란다. 오 캄보디아 좋아졌구나. 캄보디아에서 태국 국경 세번 넘어봤는데 항상 국경을 지나면 미니벤으로 갈아탔었다. 이제 버스가 생겼구나. 15불이면 좀 비싸긴 하지만 먼 거리라 편안하게 가기 위해 버스표를 끊었다.
픽업 미니벤이 오고 다른 호스텔을 여기저기 다니며 픽업한다. 그리고 여행사로 간다. 여행사에 앉아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버스에는 반가운 글씨가 있다
'Siem reap <-> bangkok direct bus'
오오 이걸타고 국경넘어 계속 방콕까지 가는구나. 기분좋게 버스로 올라탔다. 비수기다 보니 여기저기 또 다른 곳을 다니며 픽업을 했지만 버스가 꽉 차지 않아 혼자 넓게 앉아왔다. 출발하고 2시간쯤 지나니 국경에 도착한다. 그리고 태국으로 들어오면 KFC앞에 직원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거기로 오라며 같은 회사 버스라는 표식의 목걸이를 나눠준다. 역시 한국여권에 친절한 동남아 국경 두개는 아주 쉽게 통과했다.
KFC앞에 아까 캄보디아에서부터 같이 버스를 탔던 다른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같이 다시 툭툭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5분쯤 지나 넓직한 식당앞에 내려준다. 여기서 한시간 휴식하며 점심을 먹고 이동할거란다. 역시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식당 딱 하나 있는 여기서 무조건 끼니를 해결해야한다. 다행히 가격은 로컬 가게보다 많이 비싸지 않아서 그냥 커피한잔이랑 팟타이를 시켜먹었다.
국경을 같이 통과하며 얘기하게 된 프랑스여자 사라. 스페인남자 데이비드 그리고 캐나다남자 카일러까지 같이 밥을 먹다 과연 우리가 미니벤이 아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넷다 버스를 타기 위해 미니벤 가격보다 몇 불씩 더 지불했다. 각자 캄보디아에서 지옥의 미니벤 경험을 얘기하며 제발 버스를 타고 가길 기도했다. 역시 불안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미니벤이 오고 다들 여기로 타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돈을 냈기때문에 불만을 얘기했지만 미니벤 기사는 단호했다.
"나는 미니벤 기사고 버스는 나도 모르겠어요. 따지려면 표를 산 캄보디아에 따지던지 하고 미니벤 타면 지금 다 같이 방콕으로 갈꺼고 버스는 나도 언제 올지 모르니까 알아서 하세요"
다들 어쩔수 없지 하고 작은 미니벤에 하나둘씩 끼어타기 시작했다. 사라와 카일러 그리고 나는 절대 안타겠다고 버텼다. 우리는 버스표 사려고 돈 더 냈지 미니벤 안탈꺼라고. 또 미니벤 기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따지려면 캄보디아 여행사에 따지라고. 버스는 나도 모르겠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탔지만 우리 셋은 시원한 콜라 하나 시켜서 식당 테이블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이제 미니벤 기사는 조바심이 낫나보다. 우리 셋때문에 미니벤 출발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니벤 기사는 씩씩대며 딜을 한다.
"그럼 버스터미널에서 버스타고 가요. 그대신 미니벤타면 카오산으로 가는데 버스터미널에서 타면 모칫으로 가요. 어떻할꺼에요?"
나는 모칫에서 카오산은 좀 멀긴 하지만 가는 방법을 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하니 오케이 하고 미니벤 기사가 툭툭으로 우리 셋만 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티켓창구에 얘기하고 두시반에 버스 오니까 기다리란다. 끝까지 미니벤을 안타고 버틴 우리의 승리다.
두시반이 되고 버스가 온다. 티켓 창구에 아주머니가 모칫모칫 하시며 이 버스에 올라타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머니한테 티켓 안주냐고 하니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그냥 버스타면 된다고 하신다.
버스에 올라타 뒷자리로 가 앉아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한시간쯤 지나니 어떤 아주머니가 앞자리부터 티켓검사를 한다. 우리한테도 티켓을 달래서 이미 다 안다고 해서 티켓없다고 했다. 영어가 아예 안통한다. 아주머니는 계속 태국어로 얘기하며 티켓을 보여주며 '티켓! 티켓! 한다. 그래서 운전기사를 가리키며 다 알고 있을꺼라고 얘기하더니 내 팔을 훅 잡아채더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있는 앞으로 따라오란다.
‘하 이건 또 왜 이래. 오늘의 2라운드인가’
버스아저씨도 영어를 못한다. 분명히 티켓 없어도 된다고 해서 그냥 탔는데 계속 나한테 머라고 한다. "노 티켓 머니 머니!" 이제 좀 무섭다. 말도 안통하는데 취조당하고 있다. 그래서 사라와 카일러를 가리키며 친구랑 얘기하고 온다니 오케이란다. 그러니 앞에 앉아 있는 태국 아주머니가 영어를 할줄 아신다.
"버스를 타면 무조건 티켓이 있어야해. 티켓없으면 백 몇바트 내야할꺼야"
그래서 상황 설명을 했다. 여행사를 통해서 방콕가는 버스를 예약했는데 아까 티켓창구 아주머니가 티켓 필요없다고 했다고. 그러자
"그 아줌마가 거짓말 했을 수도 있겠구만"
황당하다. 오늘 다들 왜 이러는걸까. 뒷자리로 가 사라와 카일러랑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앞에서 아주머니가 오케이! 하고 외친다. 아마 티켓창구와 통화를 했나보다. 휴 방콕가기 정말 힘들다. 그리고 버스는 하염없이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날이 저물어도 또 달린다. 모칫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이제 여기서 또 카오산으로 가야한다. 택시를 타기엔 돈이 너무 아깝다. 오랜시간 이동에 피곤해서 잠시 흔들렸지만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물어봐 로컬버스 3번을 타고 가기로 했다. 3번이 어디있는지 묻고 또 물어 찾아 드디어 올라탔다. 휴 이제 오늘의 여정이 얼마 남지않았다. 사라는 공항으로 바로 가야해서 택시를 타고 가고 카일러랑 둘이서 얘기하며 오는데 뭔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데 돈을 안낸다. 이건 공짜 버스다.
오늘 한 고생이 이걸로 보상받는건가. 우리는 참 단순하다. 별거 아닌 이거에 신났다. 공짜버스로 카오산 근처에 내려 카일러와 헤어지고 첫날에 묵었던 홍익인간에 체크인 했다.
오늘 하루종일 팟타이 하나 먹어서 배고팠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일단 맥주 한잔이 간절해 맥주를 마시며 다른 게스트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좀 늦게 잠들었다. 휴. 내일은 스리랑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