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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Jun 04. 2021

왜 이제야 온걸까

콜롬보

방이 너무 추웠다. 어제 방에 들어가자마자 춥다고 느꼈는데 사람들이 다 자고 있어서 시끄러울까봐 침낭을 못꺼냈다. 일어나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에어컨을 19도로 맞춰놨다. 더 자고 싶었지만 추워서 방앞에 있는 테라스로 나왔다. 테라스에서 본 스리랑카의 첫 아침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나뭇잎도 동남아시아랑 다르고 여기엔 까마귀가 많다. 건물 모양도 다르고 하늘색깔도 다른 것 같다. 배가 고파 1층으로 내려갔다. 어제와 다른 스태프가 있다. 어제는 야간 스태프였나보다. 



오늘 만난 항상 웃고 있는 이 스태프의 이름은 글렌. 여기 콜롬보에서 태어나고 자랐단다. 여기 근처에 아침 먹을데가 있냐고 하니 


“문으로 나가 왼쪽으로 꺾어서 가다보면 큰길이 나오는데 바로 오른쪽에 있어”



스리랑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메뉴 추천해달라고 하니 에그로티도 괜찮고 핀투도 먹어봐도 괜찮을거란다. 글렌이 말해주는데로 길 따라 가서 핀투랑 에그로티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에그로티는 태국에서도 먹어봤디만 핀투는 도저히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다. 카레랑 흰색 밥도 아닌 빵도 아닌 흰색 반죽같은게 있다. 옆에 다른 스태프한테 물어보니 이건 밀가루랑 코코넛 밀크랑 섞은거란다. 그리고 접시를 가져오더니 핀투를 붓고 카레랑 같이 먹으면 된단다. 스리랑카에서 먹는 첫끼라 맛있긴 한데 너무 맵다. 아침에 먹는 음식은 아닌거 같다.
 


밥을 먹고 1층 탁 트인 정원에 앉았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친구를 사겨서 루트랑 이것저것 물어보고 같이 갈 수 있으면 같이 갈 계획이었는데 여기는 동남아만큼 여행자가 많지는 않은것 같다. 앉아서 담배하나 물고 멍하게 있으니 친절한 스태프 글렌이 온다. 스리랑카에 처음 오기도 하고 아무 정보도 계획도 없으니 갈만한데 추천좀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글렌이 신나서 스리랑카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는데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졌다. 정보도 없고 나라도 그렇게 크지 않으니 캄보디아에서 폰으로 스리랑카에 2주 있다가 몰디브로 가는 티켓이 싸서 예약해놨다. 괜히 예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는 2주만에 돌아볼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대충 글렌이랑 2주 루트를 짰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좀 감이 생겼다. 갈 곳이 너무 많아 오늘이라도 당장 떠나야할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은 여기서 아무것도 안하더라도 좀 쉬기로 했다. 이틀 연속 이동만 했더니 지친다. 여기 앉아 있으니 많진 않지만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 아까 아침 먹으로 간 길 말고 반대쪽으로 나가면 바다랑 해변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잠깐 걷고 오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진짜 바다가 보인다. 반대쪽 메인로드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야자수와 아기자기한 건물이 군데군데 늘어서 있고 오래되어 때가 묻은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나를 반긴다. 아 이것이 스리랑카구나. 이번여행와서 3주만에 처음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동남아는 분명 즐겁지만 새로운 것은 없었다. 스리랑카는 아직 이렇다 할 즐거운 일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새롭다. 



내려쬐는 햇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열심히 걷다 목이 말라서 쥬스 그림이 있는 조그마한 가게 앞에서 메뉴를 보고 있으니 주인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들어오란다. 일단 들어갔다. 테이블이랑 의자도 하나밖에 없다. 말그대로 1인카페다. 뭘 마셔야 할지 몰라 맛있는게 뭐냐고 물어보니 아보카도 쥬스를 준다. 아보카도를 쥬스로는 처음 마셔본다. 달달하고 고소한게 꽤 맛있다. 분위기때문인지 내 기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다. 그리고 앉아서 주인 아저씨랑 한참 얘기했다. 
 


"여기 콜롬보에는 너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어. 좋은곳이야. 바다도 있고 술도 있고 여자도 있고 대마초도 있고 헤로인도 있고...."
 

원하면 모든 것을 다구해준단다. 처음엔 경계하고 그냥 웃으며 넘어갔지만 이 사람은 강압적인 장사꾼이 아닌 그냥 사람좋은 아저씨다. 덕분에 재밌게 얘기하고 다시 또 걸어갔다. 이번엔 메인로드로 걸어서 숙소로 가기로 했다. 역시나 모든 사람들이 내 머리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악수도 하고 다들 너무 친절하다. 



배가 고파 또 음식점 앞에서 메뉴 사진을 보고 있으니 또 들어오란다. 인도식 볶음밥인 비랴니랑 삶은 계란을 시켰다.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웃는다. 스리랑카는 외국인을 아주 환대하는 것 같다. 태국에서는 내 머리를 보면 흠칫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는 대놓고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수줍은지 말을 걸거나 하진 않는다. 여기 스리랑카에서는 쳐다보고 웃어주고 말도 걸어준다. 스리랑카에 왜 이제 왔을까. 밥을 맛있게 먹고 숙소로 와 샤워하고 잠깐 낮잠을 잤다. 지금까지 너무 피곤했는지 눈을 뜨니 밤이다. 밤 9시가 넘었다. 1층 테라스로 가 사람들이랑 또 얘기하고 놀다 다시 잠들었다. 


스리랑카에 대한 첫인상은 너무너무 좋다. 그렇게 둘째날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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