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지만 아직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어제 윈디 (윈디는 날씨를 보는 앱이다) 를 봤을 때 오늘밤까지 폭우가 예정 되어있었다. 8시가 아침식사 시간이라서 모두 7시쯤 기상해서 짐을 싸 놨다. 비는 오지만 오늘 갈 길이 멀다. 테라스로 올라가니 부페식으로 아침이 차려져 있다. 무려 다섯가지 종류의 치즈와 빵, 오이, 토마토, 수박, 삶은 계란과 함께 올리브와 꿀과 잼이 있었다. 커피와 차이티는 무한리필이다. 뿌옇게 낀 안개속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맛있게 먹었다. 아주 잠깐 비가 그치더니 무지개가 나타나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로 덮히고 비가 쏟아진다.
가방을 메고 나왔다. 홍콩에서 빨래 맡기고 받아온 큰 비닐봉지 안에 모든 짐을 넣고 그 봉지를 가방 안에 넣고 잠궜다. 가방을 산 초반에는 완벽한 방수였는데 3년째 사용하면서 방수가 잘 안되는 것을 느낀다. 거기다 오늘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앞으로 남은 여정을 위해서라도 가방안은 절대 젖으면 안 된다.
레인자켓을 입고 가방을 메고 걷기 시작했지만 비는 점점 더 심해진다. 다행히 엄청난 오르막길은 없어서 걸을만하다. 옆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너무 예쁘지만 날씨가 맑았다면 더 예뻤을 것이다. 산 사이사이로 뿌연 안개가 더 신비한 풍경을 자아낸다.
세시간 정도 걸으니 마을이 나온다.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 두개가 마주보고 있는데 하나는 엄청 크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다른 하나는 가게도 작고 아무도 없었다. 후자를 선택했다. 작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서 노부부가 우리에게 오라고 계속 손짓했다. 온 몸이 다 젖은 상태에서 먹는 따뜻한 수프는 정말 온몸이 녹는 기분이다. 이어서 나오는 음식도 맛있다. 다시 힘이 생긴다. 사실 양말과 신발과 바지와 속옷까지 완전히 싸악 다 젖어서 얼른 다 걷고 숙소로 가고 싶다. 오늘 같은 날 캠핑은 무리다.
비가 좀 수그러들면 다시 걸으려고 했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안보인다. 식당을 나왔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려치고 천둥번개까지 친다.
세시간 정도 더 걸으니 마을이 다시 나온다. 이제는 그만 걸을 때다. 방 하나에 침대가 세 개가 있고 아침과 저녁까지 다 주는데 한 사람당 1000리리다. 어제 숙소의 반값이다. 온몸이 젖고 지친 우리에게 더 알아보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오케이 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히터를 켜고 젖은 옷들과 신발을 말렸다. 방 안에서 쿰쿰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쩔 수 없다. 내일 또 걸으려면 최소한 신발은 무조건 말려야 한다. 젖은 바지를 히터위에 올리고 말리다 바지가 녹아서 구멍이 생겼다. 지금 여행한지 한달도 안 됐지만 텐트에 구멍, 신발에 구멍, 이제는 바지에도 구멍이 생겼다.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구멍이 생길까.
샤워를 하려고 물을 트니 수압은 너무 약하고 찬물만 쫄쫄쫄 나온다. 너무 추워서 최대한 빨리 샤워를 하고 나왔다. 6시반쯤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엄청난 양과 다양한 음식의 부페다. 맛도 정말 기가 막힌다. 스위스 친구 쟝과 영국친구 엘리스도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쟝의 프랑스 엑센트 영어가 너무 귀엽다. 설탕을 보며 “와 반짝반짝 빛나는 거 봐. 다이아몬드 같지 않아?” 솜사탕 얘기를 하다가 솜사탕은 프랑스어로 아빠의 턱수염이란다. “빠아바바.” 앨리스는 스코틀랜드 트레일을 소개시켜줬다. 그리고 한달후에 진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내일은 다행히 비가 좀 그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