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 이야기

by nelly park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지난 밤에 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비가 언제 왔냐는 듯 햇살이 뜨거웠다. 아침으로 라오스식 샌드위치를 먹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라오스는 바게트빵에 이것저것 소를 넣어먹는 샌드위치가 유명하다.


햄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었다. 맛이 꽤 괜찮다. 오늘은 해가 쨍쨍하니 숙소에 돌아와 쉬면서 지금까지 밀린 빨래를 좀 했다. 여행하면서 웬만하면 직접 손빨래를 해서 돈을 꽤 절약한 것 같다. 태국은 1kg에 30바트 여기 라오스는 1kg에 만낍이다. 대충 한국돈으로 천원정도다.


날씨가 너무 좋다. 15일만에 루앙프라방에 이런 날씨가 찾아왔단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 이 도시를 떠난 사람들은 너무 안된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루앙프라방은 흐리고 비가 오는 도시라고 기억이 되겠지.


자전거를 빌려 메콩강을 따라 달려봤다. 여기는 우리나라의 하회마을처럼 전통적인 건물이나 유적지가 많아서 마을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마을 자체가 너무너무 예뻤다. 예쁘다는 말로 표현이 안되겠지만 그냥 예쁘다는 말 밖에 안나온다. 하늘은 왜 이렇게 새파란지. 메콩강은 왜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는지. 루앙프라방과 사랑에 빠진 느낌이다.


열심히 이곳으로 버스를 타고 또 타고 해서 온 보람이 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밥을 먹고 카메라를 찾으려고 온 방을 뒤져봐도 없다. 아무래도 우돔싸이에서 여기로 오는 버스에 두고 내렸나 보다. 버스가 너무 불편하고 좁아 다리를 올려 비스듬하게 앉아 가는 동안 바지 주머니에서 흘러 의자로 떨어졌나보다.


절망적이다. 산지 1년밖에 안됐다. 그 안에 지금까지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너무 아깝다. 어차피 돈 벌면 좋은 카메라 하나 장만하려고 하긴 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없어지다니.


일단 투어리스트 폴리스 센터로 가서 신고하고 카메라를 찾으면 꼭 연락해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찾을 리 만무하다. 카메라를 발견해도 먼저 본 사람이 가지지 않을까. 카메라는 가져가도 되는데 그 안에 있는 사진만 어떻게 주실수 없을까요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주동안 쌓아온 추억들 안녕이다.


축 쳐져서 숙소 테라스에서 비어 라오 한병을 마시면서 마음을 달랬다. 계속 앉아 있으면 더 우울해 질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달려 푸시힐 언덕으로 가서 메콩강과 주변 경치를 봤다. 우기라 탁한 누런 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메콩강과 그 옆으로 빨간 지붕의 집들과 사이사이에 자라나 있는 샛초록의 나무들이 조화롭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시계는 6시를 가리켜 나이트마켓이 열렸다. 낮에는 조용하게 비어있던 메인도로에 천막을 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반짝반짝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태국보다 무늬가 이쁜 가방, 옷 그리고 액세서리가 정말 많았다. 끝에서 끝까지 다 돌아볼 수도 없을 만큼 규모가 엄청나다. 손에 집히는 것을 다 사고 싶지만 꾹 참고 내일 다시 와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숙소 앞 테라스에 앉았다.

어떤 아저씨가 한국말로 말을 걸어온다.


“한국인이세요?”


그렇다고 그랬더니 괜찮으시면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해서 흔쾌히 오케이 했다.


원래 라오스에서 므앙 응오이 느아로 먼저 가려고 했던 건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 때문이었다. 그 한국인 부부는 나와 반대의 루트로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왔는데 내가 라오스로 곧 갈꺼라고 하니 라오스에서 가 볼만한 곳 이곳저곳을 추천해 주셨다. 그 중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말한 곳이 므앙 응오이 느아였다.


“므앙 응오이 느아는 너무 시골이라서 아무것도 할 게 없는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에요. 거기 가면 라오스에 오래 사신 한국인 아저씨가 계시는데 꼭 만나보세요. 한국인이라고 하면 엄청 잘해주실거에요. 거기서 자몽도 따 주시고 라오스 현지말도 하셔서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시켜줬었어요”


그 아저씨를 만나러 우리도 므앙 응오이 느아로 가려다 이틀 연속 실패했었다. 그런데 눈 앞에 있는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다.


“아 저는 라오스에 살고 있어요. 여기 루앙프라방에는 잠깐 은행 업무 때문에 여행왔고 원래는 음. 여기 들어 보셨을려나. 므앙 응오이 느아라고 시골에 살아요”


“혹시 일주일 전에 한국인 젊은 부부 만나시지 않으셨어요?”


“엇,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여자분은 안경 끼시고 남자분은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분 아니신가?”



세상은 정말 좁다. 만날 인연은 어디서든 만나는 것 같다. 아저씨 숙소로 가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저씨 이야기만 한 두 시간 정도 들어준 거 같다. 한국인이 그립고 한국어가 그리우셨나보다.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사신 아저씨였다.


아저씨 얘기를 잠깐 하자면 아니 결론부터 하자면 이 아저씨는 한국에서 수배자다.


“어떻게 하다 라오스 시골에서 살게 되신 거에요?”


이 얘기를 괜히 꺼냈다. 두 시간 동안 아저씨 말만 들었다.


“원래는 한국에서 주먹을 좀 썼었어요. 주먹으로 꽤 잘 먹고 잘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동생들도 많았죠. 내로라하는 높은 분들도 많이 알고 지냈어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번은 심심해서 중국 여행하다 사설 도박장을 갔어요. 같이 갔던 동생이 실력이 좋아서 돈을 많이 땄어요. 그러다 갑자기 돈 잃은 중국애가 이성을 잃더니 도끼를 꺼내더니 동생을 찍어버리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총으로 제가 걔를 쏴버렸어요. 바로 죽어버리더라고요. 아 총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친구한테 구했어요. 그냥 호신용으로 하나 받아놨는데 진짜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진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래서 동생 데리고 냅다 튀었죠”


“그래서요?”


“한국에 평소에 친형처럼 지내는 높은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전화했죠. 그 형님이 중국에 4성 장군하고 알고 지낸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은 공산주의니까 장군이 지시하면 다 어떻게 어떻게 되나보더라구요. 출국 하도록 손은 다 써놨으니까 라오스 같은 시골에 가서 조용해질 때까지 짱박혀 있으라고 해서 왔다가 이렇게 살고 있죠 뭐”


지금은 그냥 사람 좋은 아저씨 같은데 사연이 많은 아저씨였다.


“일단 오기는 왔는데 먹고 살아야죠. 우리 친형이 한의산데 어깨 너머로 약재 같은 거를 좀 봐났었어요. 라오스는 땅 70프로 이상이 산으로 되어있는데 한국에서는 돈줘도 못구하는 약재들이 지천에 널렸어요. 그래서 여기와서 책보면서 독학으로 공부했죠. 요즘에는 맨날 산 타면서 약초 캐서 한국에 보내면서 먹고 살아요. 한국에는 아직 수배중이라서 못 들어가니까”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일까. 긴가민가 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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