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
숙소 예약도 없고 그냥 온 거라 여기서도 열심히 발품 팔며 이곳저곳을 다녔다. 비도 추적추적 내려 귀찮았지만 더 이상 베트남 사기꾼에 당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돌아다녔다. 베트남은 숙소가 쓸데없이 비싸다. 도미토리 방도 없다. 골목 앞오토바이에 앉아 있는 한 청년이
“우리 숙소 좋아! 우리 숙소에 안 머물러도 되니까 일단 한번 보기만 해봐. 오토바이로 태워줄께”
밤새 버스로 이동하고 비도 추적추적 내려서 피곤해서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위치도 나쁘지 않아서 일단은 일박하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를 하고 조금 눈을 붙이고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비가 계속 내려 많이는 돌아다니지 못하고 숙소 주변만 이곳저곳 둘러봤다. 확실히 시골마을 닌빈 보다는 식당도 많고 여행자들도 많이 보인다.
훼에 일단 오기는 했지만 어디를 가봐야 하고 뭘 먹어야 할지 몰라 숙소의 컴퓨터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니 올드타운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고 강을 따라 쭈욱 있는 왕궁을 보트로 돌아보는 투어가 유명하다고 한다. 내일은 왕궁을 좀 봐야겠다.
나에게 훼는 비 오는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는 날은 구름이 잔뜩 낀 흐린날 뿐이었다. 평소에 비를 좋아하는 나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푹푹 찌는 베트남에서 매일 같은 비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지만 우산 살 돈이 아까워 우산이 없는 우리는 걷다 비가 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비를 피하러 건물안에 들어갔다 심심해서 여권을 펴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이거 베트남은 무비자 15일인데 왜 우리는 13일만 찍혀있어! 하아.. 베트남 끝까지 이럴꺼냐..”
그래도 보름의 비자가 나오니 날짜는 다 채우고 베트남을 나오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려니 하고 좀 일찍 나가야지 했지만 그레이스는 아닌가보다.
“아 열받아. 베트남 사기꾼들 국경에서 돈 뺏어가더니 비자도 제대로 안줬어. 안되겠어 베트남 대사관에 전화해봐야겠어!”
뭐 그런 것 가지고 베트남 대사관까지 전화하냐 했지만 그레이스는 국경에서 나보다 돈도 더 많이 뺏기고 지금까지 베트남에 쌓일대로 쌓인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서 네이버에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찾아서 숙소 전화로 전화를 했다. 바로 대사님이랑 통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서 대사관에서 다시 숙소로 전화가 왔다.
“대사님. 저희는 베트남 여행을 하고 있는 한국인인데요. 혹시 국경에서 여행자들한테 1불씩 빼앗아 가는 걸 알고 계셨나요? 1불이 큰 돈은 아니지만 저희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한국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대사님께서 나서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원래 베트남에 무비자 체류 보름 아닌가요? 저희 여권에는 13일 밖에 안찍혀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요?”
대사님은 난처해 하셨지만 차분하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분명히 한국인 피해자가 더 있으시겠지만 1불 착취로 제가 나선다면 이건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변하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하기 힘듭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이런 사건이 접수된다면 제가 꼭 나서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체류기간에 대해서는 다음 국경으로 넘어 가실 때 입국 날짜와 체류 만류일을 보여주고 원래는 15일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럼 처리해줄 거예요. 물론 국경과 담당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어요. 이건 제가 장담을 못드리겠네요”
음. 결국은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15일 체류했다가 나가면 복불복으로 잘 해결될 수 있거나 아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 사실 난 대사님이랑 통화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누가 1불 뜯긴 걸로 신고하겠는가. 이런걸로 친절하게 답해주신 대사님도 참 사람 좋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