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훼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비는 세차게 오고 오후 느즈막히 버스를 타고 호이안으로 떠났다. 또 한번 느끼지만 베트남 버스는 참 좋다. 닌빈에서 타고 온 초호화스럽게 느껴졌던 그래서 감동적이기 까지하던 그 슬리핑 버스에 침대가 아닌 앉아 갈 수 있는 버전 정도였다. 이 정도 버스라면 좀 더 타고 있고 싶지만 훼와 호이안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세시간 정도 걸렸다.
호이안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금새 어두워 질 것 같아 열심히 숙소를 찾아해맸다. 숙소 찾으러 돌아다니는 길에 보이는 건물들이 이미 예쁘다. 얼른 배낭을 내려 놓고 밖으로 나와보고 싶었다. 역시 여기에도 도미토리 방은 없어 이곳저곳 둘러보고 적당히 가격을 흥정해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중국과 동남아를 적당히 섞어 놓은 느낌이다. 날은 이미 저물어 온 동네가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거린다. 비는 오지 않지만 이미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선선하고 훼보다 여행자들도 많이 있는 것 같아 활기차 보이고 기분 좋다. 오랜만에 비 걱정 안하고 마음놓고 이곳저곳 돌아다녀봤다.
과연 낮의 호이안은 어떨까 하고 숙소로 돌아가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낮의 호이안은 예상대로 너무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호이안은 내가 가본 동남아시아 도시 중 예쁜 도시 TOP 3안에 든다.
내 마음대로 동남아시아 예쁜도시 TOP3
베트남 호이안
라오스 루앙프라방
말레이시아 말라카
이 여행 이후에 다른 도시도 많이 다녀서 몇 개의 도시가 더 추가되었지만 내 첫번째 동남아 여행에서는 이 세 도시가 가장 예뻤던 것 같다. 특별히 멋진 추억이 있었거나 숙소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도시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
호이안에는 맞춤 양복점이 많았다. 서양 여행자들은 싼 가격에 정장 몇벌씩 맞춰서 각자 자기네 나라로 보내는 것 같았다. 평소에 정장을 정말 싫어하기도 하고 한국으로 보내면 돈 들고 그렇다고 들고 다니기엔 짐이라 그냥 안샀다.
호이안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화이트 로즈와 튀긴 완탕 그리고 이름이 기억안나는 또 하나의 음식을 하나의 세트로 파는 가게가 있어 들어갔다.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맛있기는 했지만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차라리 훼에서 먹었던 분팃눙을 다시 먹고 싶었다. 그래도 맥주 안주하기엔 튀긴 완탕이 딱이라 또 시켜먹었다.
식당에 앉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맥주 한잔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멍하게 있으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해서 숙소로 가서 한숨 잤다. 자고 일어나니 벌써 어두워져 다시 야경을 보러 나갔다. 살짝 부슬비가 내려 낮의 더움이 좀 가시는 듯 하다.
어제 예약해 놓았던 ‘미썬’ 유적지 투어를 갔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베트남에 와서 유적지를 한번도 못가본 것 같아 한번 가보기로 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자바인들이 시초였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문명이 생겨나기 전 자바섬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미썬 문명을 꽃 피운 것이다. 돌을 직접 깎아 만든 불상들이 인상 깊다. 훗날 크메르인들이 이 문명에 영향을 받아 크메르 왕조가 탄생했다고 한다. 투어내내 불상들에 머리가 없는 것이 많았는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불상 머리들을 다 프랑스인들이 다 베어갔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머리가 붙어있는 불상들은 최근에 다시 복구한 것들이다. 슬픈 역사다.
미썬 유적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어둑어둑하다. 오늘도 아름다운 이 도시 호이안의 야경을 보며 걸어보고 내일은 다시 훼로 가기로 했다. 훼에서 다시 라오스로 가는 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보다 짧게 받은 베트남 체류기간 때문이기도 하고 사기꾼들이 득실득실한 이곳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순박했던 라오스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