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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Nov 06. 2019

호주에서의 첫 면접

골드코스트

인터넷 직업 사이트에 이력서 몇 개 넣어봤더니 연락이 왔다. 한국에 한전 같은 호주 전기공사에 마케팅 자리다. 일단 면접보러 오라고 전화가 와서 가긴 가는데 막상 가려니 걱정이다. 


45리터짜리 배낭 안에 옷이 있어봤자 몇 개 없다. 거기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와서 다 후줄근한 나시나 빛 바랜 반팔티 몇 장뿐이다. 신발도 맨날 신고 다니는 조리 빼고는 헬스장에서 진짜 혹시나 운동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해서 들고 온 담배빵(?)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푸마 러닝화 한 켤레다. 뭘 입고 가지.


잘 찾아보니 실수로 넣었는지 꽤 깔끔한 피케티 한장이 있다. 면바지도 한장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신발은 구멍 난 러닝화를 신고 가기로 했다. 조리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행히 회사가 집 근처다. 집에서는 걸어서 5분거리. 센트럴이라는 건물에 있단다.



면접장으로 들어가니 나만 아시아인. 나머지는 다 백인이나 흑인밖에 없다. 아휴 이거 백프로 떨어지겠구만. 그렇지 않아도 인종차별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호주에서 아시아인인 나를 써줄리가 없다. 


면접을 봤다. 면접자들 다 같이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왔으니 재밌게 이야기하고 놀자는 마음으로 즐겁게 면접을 끝내고 다음 날 전화를 준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좋단다. 


다음 날.


면접 통과되었으니 바로 출근하란다. 뭐지. 난 왜 뽑힌거지. 일단은 옷이 없으니 똑같은 옷을 입고 갔다. 한 30명정도 면접보러 온 것 같았는데 10명 정도 뽑혔나 보다.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더니 우리를 모아놓고 이것저것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여러분은 지금 호주 전기공사에 입사하셨습니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일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말을 시작으로 호주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비자 등 알맞은 서류를 설명하고 앞으로 하게 될 일. 그리고 제일 거슬리는 것. 복장이었다. 마케팅이긴 한데 오피스보다는 외근이 잦을 거란다. 그래서 신발은 어두운색 구두에 정장 까지는 아니지만 셔츠에 긴바지를 입어달라고 한다.


난 하루 일하고 그냥 그만뒀다. 돈도 없는데 무슨 옷을 사라는 거야. 그리고 이런 일은 왠지 한국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돈을 빌렸으니 여유도 생겼고 언젠가 직업 구하겠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긍정적인건지 바보인건지. 뭐 괜찮다. 


일을 하지 않아 수입이 없고 지출만 있는 상태인 나에게 생각보다 500불은 많은 돈이 아니었다. 500불은 금방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또 현아를 만났다.


“현아야 진짜 미안한데 아직 직업은 못 구했고 돈은 다 떨어졌는데 500불 더 빌려줄 수 있어?”


현아는 또 흔쾌히 허락한다.


그렇게 내 빚은 벌써 100만원. 이거 쉽지 않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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