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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Nov 18. 2019

호주에서 가족이 생기다

골드코스트

일은 시작해야했다. 서핑도 즐겁고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좋지만 빌린 돈이 다시 또 줄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돈을 빌릴 수는 없다. 호주 전기공사 일을 하루 만에 때려치고 또 금방 일 구할 수 있겠지 하고 이곳저곳 이력서만 넣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 영어에 한국어 그리고 일본어까지 한다고 직업을 가렸던 것 같다. 세차장이나 청소 그리고 접시 닦는 구인 광고는 몇 개 봤지만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대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크루즈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몇 개 넣었지만 답이 오는 곳은 없었다.


‘골드코스트에는 내가 할 일이 없는 건가’


하고 생각하면서 이 도시를 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냥 서핑 갔다 일본친구들이랑 밥 먹고 집에 와서 주환이랑 수다 떨고 있었더니 현아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같이 일하는 언니네서 밥 먹을 건데 같이 가실래요? 아직 밥 안 먹었죠?”


현아는 불쌍한 나에게 가끔씩 밥도 사주고 집으로 초대해 요리도 해줬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엄청 챙기는 고마운 동생이다. 대신에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건 딱히 없고 호주에서 대학 다니고 있는 현아 과제를 도와주곤 했다. 나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왔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도 했다. 영어 P.P.T 쯤이야 몇 백 번도 더 해봤다. 그렇게 조그맣게 얻어먹은 밥값만 했다. 


아무튼 잘됐다. 어차피 주환이도 오늘 저녁 약속 있다고 해서 오늘 저녁은 또 뭐 해먹지 하고 고민하던 차에 흔쾌히 가기로 했다. 


초대받은 집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도착하니 창문으로 비치는 호주 야경이 너무 멋지다. 우리집 뷰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정말 멋있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현아랑 같이 일하고 있다는 친한 언니 예솔이. 나보다는 두 살 어린 동생. 까무잡잡한 피부에 호리호리한 체격. 그리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첫 만남에 얻어먹으려니 어색해서 뭔가 도와줄 거 없냐고 물어봐도 손님은 계속 앉아있으란다.


예솔이네 집에는 일본인 룸메이트가 두 명 있었다. 여자애 나오코. 남자애 테페이.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놀았다. 테페이는 곧 일본으로 돌아간단다. 



메인요리가 나오고 배터지게 먹었다. 뭔가 울컥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은 것 같다. 너무 고맙고 즐겁고 지금까지 즐겁게 살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일과 돈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항상 위축되어 있었다. 그게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예솔이가 말했다.


“오빠 지금 다른 도시로 가도 일 없는 건 마찬가지에요. 제 생각에는 여기서 조금 더 버티면서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건 어때요? 아 우리 오빠가 일하는 곳에 한 명이 나가게 되서 자리가 생길 지도 모르는데 한번 물어볼께요”


그렇게 이것 저것 얘기하다 보니 예솔이 남자 친구 소라형이 왔다. 나보다 두살많은 이 형은 큰 키에 또렷한 눈빛. 절제된 말투. 첫 만남부터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일 마치고 방금 들어오시고는 냉장고에서 병 맥주를 하나 꺼내 물고는 말씀하신다.


“그래? 그럼 내가 셰프한테 언제 자리나나 한번 물어볼께”


그렇게 난 가족이 생겼다. 평생 같이 갈지도 모를 그런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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