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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Nov 16. 2019

호주 백수의 일상

골드코스트

돈도 없는데 자취를 하니 요리해 먹는 것도 일이었다. 캐나다에서 몇 년 자취해봐서 대충 죽지 않을 만큼 몇 개는 만들어 먹을 줄 안다. 캐나다에서 베이글 가게에서 알바도 해봤다. 


제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은 역시 토스트다. 그런데 식빵 사서 토스트만 해서 버터나 잼을 발라먹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게 문제다. 그렇게 먹으면 쉽긴 하겠지만 빵 한 통을 다 먹어야 배가 부를 것이다. 


일단 룸메이트 주환이와 집 앞에 콜스로 장보러 갔다. 콜스는 말하자면 한국의 홈플러스 같은 곳이다. 일단은 1불짜리 식빵 한 통을 샀다. 그리고 냉동 코너로 가서 냉동 야채 믹스를 샀다. 마실거는 제일 싼 콜스표 주스다. 야채만 먹기는 좀 그러니 제일 싼 소시지를 몇 개 샀다. 계란도 몇 개 샀다. 아 참 냉동 야채는 영양분이 덜 할 것 같아 양파도 몇 개 샀다.



식사 준비 끝!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조리법이다. 먼저 제일 안 익는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굽는다. 그리고 조금 익을 것 같으면 옆에 냉동 야채 믹스를 뜯어서 옆에 같이 굽는다. 내가 굽기 담당을 할 동안 주환이가 양파를 썬다. 양파를 썰다 결국 주환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형님. 너무 눈 매워요. 자꾸 눈물이 나네요”


양파를 썰 때 나오는 양파 즙이 눈에 들어가서 일 것이다. 그럴 땐 안경을 끼면 훨씬 낫다는 것을 어떤 지식정보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난다.


“주환아. 방에 들어가서 안경이나 아니면 선글라스라도 끼고 나와”



선글라스를 끼니 주환이는 눈물을 그치고 행복해진다. 눈물로 썬 양파를 야채와 같이 볶고 거의 다 완성 될 때쯤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고 구워 나온 빵에 버터를 바르면 끝! 쉽다. 남자의 요리다.



그렇게 우리 두 남자는 거의 매일 이렇게 먹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씩 한국 음식이 생각날 땐 집 앞에 한인슈퍼에서 라면도 사서 끓여먹었다. 그리고 우리의 요리는 조금씩 진화하여 아보카도를 곁들이기에 이르렀다. 



우리 아파트에는 뷰가 끝내주는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이 있다. 그리고 기구가 정말 몇 개 안되지만 미니 헬스장도 있다. 여행한다고 잘 못 했던 운동도 같이 하고 수영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도 즐긴다. 사람이 멍해지면 이것저것 생각이 다 든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


궁금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고 왜 이러고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아마 돈이 없어서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현아한테 또 빌린 500불을 다 쓰고 다시 현아를 만났다.



“현아야 계속 이렇게 빌려달라고 하기 미안하니까 그냥 한꺼번에 1000불만 빌려주라”


현아는 또 흔쾌히 오케이란다. 그렇게 내 빚은 온지 한달도 안되서 총 200만원. 다시 빌린 1000불로 이제 본격적으로 서핑을 하기 위해 서핑보드와 서핑 수트를 샀다. 매일 갈때마다 장비를 빌려서 돈 나가느니 어차피 매일 가는거면 그냥 내 걸 사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일은 때 되면 구해질 거고 이렇게 매일 집에 있으면서 돈 아끼며 우울해 하느니 즐기기로 했다.


빌린 돈으로 서핑보드와 서핑 수트를 사는 나는 긍정의 왕. 결국 뭐 다 잘 될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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