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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Dec 12. 2019

별 것 아닌 일상

골드코스트

2주 넘게 일하면서 이제 제법 일에 익숙해졌다. 나는 일을 느리게 배우는 편이다. 그래도 한번 몸에 익으면 꽤 잘 하는 타입이다. 워낙 소라형과 라인이형이 일을 잘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일은 생각보다 단순한 작업이 많았다. 물론 오랫동안 여행을 하며 놀고 먹다 하루에 10시간씩 서 있으면서 하는 일은 죽을 맛이다. 거기다 주방에서 신을 부츠를 돈이 없어서 제일 싼 워크 부츠로 사다 보니 내 사이즈보다 한 치수 작은 거 밖에 없어 그걸 신고 서 있으려니 일이 끝나고 나면 발이 퉁퉁 붓곤 했다.


가장 오래되기도 하고 일도 잘하는 소라형의 데이오프날이었다. 라인이형과 둘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보통 날이면 9시쯤 넘으면 슬슬 마감하면서 청소하고 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9시쯤부터 접시가 엄청나게 몰려 오기 시작했다. 10시에 단체 손님 예약이 있단다. 9시 반이 지나고 10시가 넘으니 이제 접시가 쌓이고 쌓여 제대로 요리가 못나갈 지경까지 와버렸다. 헤드셰프인 베니가 씩씩거리면서 주방에 들어온다.


“소라 전화해서 불러! 지금 너무 바쁘니까 어쩔 수 없어”


데이오프지만 구세주처럼 소라형은 차를 타고 15분만에 도착하더니 30분만에 그 많던 접시들을 착착 정리하고 라인이형과 나에게 할 일을 지시하며 진두지휘 하고 1시간이 지나니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접시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정말 대단한 형이다. 


그렇게 여느날보다 3시간이나 늦게 마치고 새벽 1시쯤 넘어서 각자 입에 코로나 한병씩을 물고 집에 도착해서 씻고 2시쯤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기절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 꿈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점점 그 사이렌 소리는 커져온다. 조금 있으니 뭔가 방송 소리도 들려온다. 놀라서 잠을 깨니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온 빌딩 전체에 화재 경보가 울리고 얼른 대피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하루 종일 서 있어서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화재경보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금지 되어 있어 15층에서 열심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다.


하필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 날 잠도 덜 깨서 비몽사몽하게 1층 로비에서 화재경보가 꺼지길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다시 방송이 나온다. 



“화재경보가 오작동 한 것 같습니다. 입주민 여러분은 다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


다시 집으로 올라갔지만 한밤 중에 오르락 내리락 운동 했더니 이미 잠은 안온다. 전날 하루 종일 일하고 2시간 좀 넘게 자고 다시 눈이 반이 감긴 채로 일하러 갔다. 소라형이 나를 맞아 준다.


“야 너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어제 그거 조금 일 했다고 그러는거야? 이 쌕기 빠져가지고”


그리고 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 소라형이 따라오란다.


“임마 이건 내가 아무나 안해주는 건데. 소라 스페셜 커피가 있어. 잠깐만 기다려”


식당과 바를 같이 운영하는 여기 삭스에서는 커피 내리는 기계가 있다. 소라형이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더니 거기에 두유를 타주신다. 


“야 마셔봐. 맛있을 꺼야. 아직 셰프들도 안왔는데 천천히 시작하자. 커피들고 따라와 담배나 하나 피고 시작하자”


이렇게 무섭지만 나를 너무 잘챙겨주는 소라형 덕분에 이렇게 또 하루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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