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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Jan 07. 2022

서점일기, 우리 곁 서점이 사라지는 이유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소유물로 갖추니 교양. 그 장場에서 탈락 지경인 소위 루저를 동정, 그네들에게 베푸는 선의 곧 시혜로 갈음하는 실천? (…) 이런 과시 소비 행위에 봉사, 부합하는 형편으로나 제공되니 이른 바 문화? 유명무실이라 아니할 수 없겠고. 그러니 실상 무변無變 지경에서 공회전 거듭, 그야말로 겉돌기 연속일 밖에 

https://brunch.co.kr/@nemo-book/193 붙여서.



그래, 문화.

文으로 化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이해하면, 박제 지경으로 곤두박질 연속인 그러니까 거래 위한 품品으로 그 격格에 매장! 이후까지 모두 문화. 과정 간 이루는 활동이야말로 본의에 부합하는 것임에도 이후 격에 매장된 결과물 취득에만 치중하는 데서 문제로 불거지는 게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전도顚倒나 다름없는 상태를 마치 본래인 양 여김은 어찜인가. 이런 태도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어쩌면 자본제capitalism 때문이지 않을지. 열성으로 익혔든[습習] 타성으로 젖었든 간에 이미 버릇[관慣]으로 굳어 자리한, 자본제 내에서의 플렉스를 목적 삼기 때문이지 않나. 마르크스가 짚은 대로 C-M-C'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뒤집은 인위, 곧 M-C-M' 사이클링에만 진심이니 제 이름 아래 두려고 벌이는 싸움으로 얼룩지는 일상. 그야말로 Money 소유의 격格─apostrophe( ' )을 다투는 현장, 어디서든 목격화폐로 계량하는 수익 ← 환원 목적으로 열심히 밟는 페달*. 그렇지만 애완동물 놀잇감마냥 붙박인 그 쳇바퀴, 굴린다고 앞으로 나아가나? 결국 구르는 건 저 자신으로, 그저 제자리를 맴돌 뿐. 그러니 평생을 달음질해도 한 치 앞 가늠 못하는 상태로 다다르니 생의 종착. 그런데 이에 아랑곳 않으면서 습속 유지한 채로, 그러니까 이 자본제 사이클을 그대로 복사/관철하면서, 이르기만 문화라 이른들 무슨 소용에 닿을까. 닿지 못하니 겉돌 밖에. 하여 덧없음의 망령에 사로잡히기 일쑤. 사실 겉돌고 맴도는 원인/배경/구조 뭐라 이르든 간에 그를 밝히려는 데서 문화는, 제 이름에 부합하는 존재 이유를 실근實根으로 취하게 되는 것. 하기에 이름[名] 따로 실實 따로인 형국으로는 어불성설일 밖에. 정말이지 실패야말로 따놓은 그 당상에 어울리는 유일한 감투. 그러나 그 실패라는 감투야말로 자본제 하 취하는 실리實利의 훈장인 양 둔갑하는 지경을 목도하면 그만 입이 다물린다. 정말이지 서글플 따름.



본의와 무관하게 그저 (국한 지경에서 비롯할 뿐인) 소견일 거라 이해는 하면서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표현 있으니 이른 바 '사준다'. 이러한 의사, 직·간접으로 접할 때면 온몸에 기운이 쭈-욱 빠진다. 동네에서 소규모 서점을 꾸리는 형편들로, 그래도 당장의 우리 사정보다 책무를 우선하자는 편에서 정가제를 비롯하여 이야기를 거듭해온 처지에서 이번엔 소비자로 기관/독자의 편에 아쉽다 여기는 바를 나름 정리하여 남겨보련다.


* 때문에 화폐 저량貯量 또 그 가능성으로 우열 가르는 평가, 결국 천박에 수렴하게 마련. 모로 가도 서울이면 장땡이니 어차피 모 아니면 도라고 편법/탈법/불법 감행에 과감, 일확으로 천금 거머쥐려는 욕망 아래 죄다 구속된 바나 다름 없으니 그야말로 부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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