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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Dec 31. 2021

서점일기 2021.12.31 ─ 공동체'만들기', 유감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공동체, 꾸려 보겠다고 아등바등인 지역민 있다면 서포트 ← 해당 기관 들어선 배경으로 곧 존재 이유.

천차만별의 '차이'를 백인백색의 '다름'으로 좁히는 걸 장기 과제로 접근 ← 단위 사업 입안 목적이자 해당 주체(단체)의 존재 이유.


당사자 아닌 누구라도, 당연하다 싶고 그래야 마땅하다 여길 법.

그러나 파고들면 엇나고 심지어 실종 지경;;


대체 왜? 어째서?!



→ 성과/실적 평가는 연단위로 집행하는 예산 바탕으로 지원하니 당해년이라는 단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 평가 기준과 척도 또한 성과-물物로써의 가시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이해.


→ 문제는, 그 물성物性에 대한 판단 자체가 고인 물 지경의 과거에 매몰된 형편이지 않냐는 것.


→ 처음부터 무형의 말[言]을 중심 삼은 것처럼 보이는 활동이야말로 토대 구축 위한 밑작업으로 중요하다 여긴 나로서는, 담당 기관 중책의 '인문학 관련 모임 활동의 일환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라는 발언에 내심 충격!!(물론 진행 활동에 대한 직·간접 개입 등은 전무全無). 밑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독에 물을 부어야 하는 일이야말로 공공의 영역이라 나름의 생각을, 서점 창업 초기 '브런치'에도 남긴 바 있다. 모자란 나도 아는 걸 모르진 않을 테고. 단자로 동떨어진 개개인, 그 사이를 연결지어 그러니까 점 단위를 조직화하는 데 필요한 활동에 대해 소위 혜안까진 기대도 않는다만 이처럼 구태舊態에 붙박힌 줄 모르고 의연依然이면, 게다가 이로써 의연毅然하기까지 하면 사업 주체로는 답답한 노릇 아닐 수 없고. 더 큰 문제라면, 이런 시각들로 주류 이루는 지원 행정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꾸리는 사업이래봐야 전시성 행사 위주일 밖에 다른 도리 없다는 것.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듣기로 3개년까지 그러니까 '만들기' 상태를 벗고 명실상부 '공동체'로 자리할 수 있기까지, 입안立案 되는 연단위 사업 계획에 심각한 하자, 또 전년 사업 진행 간 문제로 불거지는 게 없는 이상 지원을 기본 삼는다 했던 것 같은데.. 담당 실무진 의견이 저러하면 글쎄 곱게(?) 보아줄까 싶고. 그런 한편 단위 사업 진행한 주체로서 이쪽은 이쪽대로 '이럴 거면 굳이..'라는 데로 기운다.


→ 결국 기획은 거듭되어도 뻔한 부류 양산 지경에 그치는 건, 새로 생각할 필요를 더는 형편으로 버티는 현실이 완강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제 편의 취하는 쪽으로 이골 난 사정일수록 당장의 현실이 편하니까. 물론 기성旣成이라고 모두 나쁘다는 게 아니다. 능률/효율, 생산성 무엇보다 개선/창의/혁신의 싹을 (의도치 않았다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짓밟기 때문.


※ 터울 벗어나 이야길 확장해보자. 이런 일, 도처到處에 산재散在. 그러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 보수화, 이것이 자신의 태도로 굳고 경향으로 자리하지 않는지 점검을 게을리 말아야. 게으를수록 외부! 충격!!으로만 느껴질 테니;; 여유는 점검에서 비롯한다고;; 갑갑x답답해;; 기득권旣得權이 별 다른 게 아니라니까;; 이런 게 죄다 기득권. 대체 어디까지 설명으로 다가서야 하는지 모를 일;; 속지 않으려니 방황할 수밖에 없는 구조, 하면 이를 이루는 성원들로 자성自省이 우선은 둘째 치고라도 최소한 뒤따르기라도 해야하는데 전무인 상태로 수렴인 중에도 그저 좋은 말로! 알아듣게!! 다시 말해 저 자신만은 존중받자고 우기니 기도 안 찰 노릇;; 양심 어디 GOD'소'? 엉?! 심우尋牛!! '소'[牛] 어디다 팔아 먹었냐고?? 누가 키우고 있냐고?? 어?? 이거야 원 ~~;;


→ 연단위 사업 계획으로 지원 확정, 책정된 예산이 460여 만원. 계획안 구성은 다달이 진행인데 크게 3개로 구분지어야 하는 틀거리에 맞추어 3개 주제로 묶음. 그런데 1개 주제 기간 내 집행하지 못한 예산을 다음 주제와 결부지어 새로운 활동 입안 집행하려니 변경 신청 후 재가 받아야 한단다;; 이유도 미루어 짐작하겠고, 절차 또한 이해는 되지만.. '만들기'에 중점이면 탄력적으로 운영, 가능한 범위로 접근할 여지조차 없다는 데 당황스러움 너머 황당하기까지;; 연간 사업으로 지속성 띄는 활동을, 매월 그것도 달에 2회씩 연속하던 처지로 의욕이고 자시고 푹 꺾이는 경험. 이래저래 기운 빠지는 지경에 짐을 더는 게 아니라 더하는 듯싶게 느껴지니 함께 활동하던 학생들이 도출한 안案을 깔고 앉아 무지르는 악역을 자처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하기사.. 누구를 탓할까. 처음부터 헤아려 염두에 두고 계획에 인입시키지 못한 내탓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의 특수성을 감안할 수 없었는지, 아쉬운 이상 유감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여지 자체가 없다면 고만고만한 활동으로 느긋하게 또 이를 주력하는 게 가능한 사정으로 전문화(?)된 단체들로만 소위 그 '공동체'로 자리하지 않겠나? 우익 단체 인사들이 주워섬기는 전문 시위-꾼(?)마냥. 전문 아니면 어디 가능하겠냐는 의문, 가시질 않는다.


※ 와중에 히트작 《오징어 게임》은 공동체'만들기'에도 영향 끼쳤으니, 전통놀이 시연 짧은 영상을 수일 내 제작/제출할 것을 명! 받았더랬다. 취지야 활동 단체 홍보를 목적으로 한다니 이해 못할 것 없지만, 단위 사업 수행도 벅찬 마당에 며칠 상간에 급조된 영상으로 대체 어디에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것인지. 그래도 아니할 수도 없는 을乙임을 새삼 실감하며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비롯하는 비애, 이와 유사하게 기관 실무진의 난처(그러니까 아마도 '이런 거 어때?' 식의 탑-다운 아니었을지) 같은 걸 한꺼번에 떠올리니 '에라 모르겠다' 심경으로 급전직하 중 제출은 했다. 각 단체로부터 해당 영상 취합 편집한 영상은, '집담회(集談會?)' 자리에서 상영되는 걸로 식순에 올라 있었다. 구청장 위시 여러 귀빈 모셔다 마을공동체 연간 활동 보고 겸사겸사 함께 자축 등등 하는 행사인 만큼 그래 그래 뭐(단체가 예산 지원을 결정하는 기구나 관련 인사 앞에서 아양 떠는 소위 말도 아닐 뿐더러!!). 행사 당일 필참 요하는 문자 사전에 받았으니 잠시나마 얼굴 비추고 참석 명단에 동그라미 긋고 왔다. 그날, 무릎과 연결되는 대내광근 이상 반응을 밴드로 바짝 조여서는 절룩이며 소소한 납품 건 처리하는 사이 들렀더랬지.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중에 '대체 이게 다 뭐하자는 짓인가' 싶기도.. 다시 떠올리니 서글퍼지네 그랴 ~~;;


→ 공동체도 조직! 물론이다. 당연한 얘기. 민간기업은 물론 가계/개인의 소비까지 모두 지출 사전 계획과 검토 그리고 사후 검증 그러니까 적법을 기본으로 적절하게 쓰였는지를 증빙 통해 확인하고 검증하여 차후 보다 세심하게 계획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를 습관으로 굳게 하는 경험은 굉장히 중하다. 더구나 재원이 혈세血稅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집행까지의 과정은 까다롭다 싶을 정도의 단계를 두지 않을 수 없고 그래야 마땅하다 싶다. 때문에! 공동체 꾸리는 그러니까 '만들기' 단계에서부터 구축하게끔 하는 게 결재 라인. 문제는 연단위로 수행하는 사업의 지출 범위 그러니까 예산 규모 대비─나조차 경험 바탕 하드웨어 구축을 목적 삼는 것이라고 머리로는 납득하려 하지만─적절한지 여부에 있어서는 갸웃한다. 솟는 의구심 가시질 않으니 왜냐하면, 주어진 예산 안에서 활동 계획 시 빈도가 늘수록 본 사업의 주된 활동의 가외 업무에 힘이 쏠리는 형국이기 십상이란 것. 물론 참여 성원 간 역할 분담이 원활하게 이뤄진 상태라면 게다가 그를 수행하는 데 있어 충분한 역량을 보유한 성원들로 이뤄진 집단이라면 문제될 일이 없을 터이다. 그런데 이제 막 그러한 조직화를 시도하는 그러니까 공동체로 꾸리려는 '만들기'에 들어선 성원들로 이게 되겠냐는 것. 대체로 기획부터 사업 계획 입안 후 예산을 따내어 실제 활동으로 구현하는 매회 업무 수행까지, 주축으로 움직이는 인력이 전담하다시피 한다;; 모르니 알려 일러주고 이해를 시키는 동시에 계획한 업을 치뤄내기까지 준비부터 하잘것없다 여기는 제반 사항을 일일이 챙기다 보면 본 사업에 대해선 제가 기획을 했어도 염두에 둔 수의 일각만 드러내는 것으로도 방전 지경이 되고 만다;; 이것이 왜, 어째서 중한가를 매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고, 문건 생산 만이라도 손을 덜자고 맡긴 것을 다시 살펴 상당 부분 결국 재작성/출력 후 외려 결재권자인 형편에서 품의/지출결의 실무 담당하는 총무에게 서명 좀 해주십사 쫓아다녀야 하는 형국이 되면 정말이지.. 하기사 미들 그러니까 허리급 부재인 채로 활동에 욕심 내어 꾸렸으니 급급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할 수 있고, 일견 옳은 말이지만 이조차 당사자나 다름 없는 내 입장에서 볼 때 허탈하게 느껴짐은, 정작 경험칙으로 쌓아야 할 당사자 이를 테면 청년층에의 지원은 다소 과장하면 아·묻·따;; 일례로 참여 학생들이 별개로 꾸린 활동 등에 이를 테면 4개월 200만 지원 게다가 일체 증빙 생략 등의 조건(?)을 목도하게 되면 460만 가운데 176만 정도를 쓰는 데 생산하는 서류, 다시 '이게 다 뭐하자는 짓인가' 싶을 따름이다. 물론 예산의 성격 상 가능한 형편과 그렇지 않은 경우 있음을 몰라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런데 배워야 할 당사자에게는 지원 위주요, 이를 가르친다면 좀 그렇고 어찌 되었든 전수할 역량과 자원 그리고 경험을 보유한 층에는, 지원은 명목인 데 반해 정작 본 사업보다 가외 업무에 시간 등 소진되는 상황이면 이건 본말전도 아니냐는 것. 본 활동에 집중해야 할 역량을 부수적인 업무에 들이는 품으로 소진하는 구조가 과연 단체 또 단체를 꾸리고자 덤비는 측, 해당 당사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말이다. 청년 세대 지원책을 보다 까다롭게 하라는 게 아니라는 건 따로 이르지 않아도 십분 이해할 거라 믿는다(설마? 이마저도? 아니겠지;;). 실무에 자신을 갈아넣는 형태로 뽑는 활동에 진절머리 나는 활(동)가들의 입장을 계속해서 경험 지속케 하는 게 지원의 목적은 아닐 듯싶은데..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완벽 기하자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덤비려면 〔{[공동체]만들기}를 만들기 위한 준비모임〕 같은 걸 사전 발족/출범.etc 해야 하는 거 아닌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로서는 그 '공무公務'를 정의하는 기본부터 다시 다잡아야 하잖나 싶다.

내년 대선은 이를 계기 삼기 좋다 여겼는데 마침 이런 쪽으로 얼개 잡고보자는 후보도 들어섰으니.

후보 흠결 네거티브 경쟁에 휘말릴 정도의 당사자 결격, 나로서는 글쎄올시다~여서.

순실 로봇도 끌어내린 촛불들로 기우가 지나치다 싶기도.

사람이 지은 역사에는, 격동의 '열월熱月'도 있었지.

이를 불가피로써 조형, 거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역시 공모/협잡 그러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식으로 상호 간 연루된 때문, 아니었나?

소유를 바탕으로 한 애착이 옅은 고로 가난한 마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잃을 게 없는 형편인 나로서는 뭐 어떠랴 싶은데.

아니 죄다 이미 자기 상賞으로 취해 들인 바가 얼마나 되면 그리 부들부들할까 싶기도.

아! 내가 복福 된 형편이로소이다, 그려!!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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