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가족사진
─ 책방 아저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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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 책방 아저詩

바람난 에미가 도망치고 애비가 땅을 치고 울고

애비가 섰다판에서 날을 새고
그 애비의 아이가
애비를 찾아 섰다판 방문을 두드리고

본드 마신 누이가 찢어진 속옷을 뒤집어 입고
지하상가 쓰레기장 옆에서
면도날로 팔목을 긋고

세 살 난 막내가 절룩, 절룩 자라나고
에미 애비와 누이의 일들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오늘,
밤마다 도시가 하나씩 함몰되고, 나는
등불에서
등심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고

_이연주,詩 「가족사진」 전문


살풍경殺風景한 세계의 일상. 이 가운데서 보고픈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취하려는 노력을 죄다 쓸모없음에 붙일 순 없겠죠. 다만 보/고픈 그래서 갖/고픈 걸 누군가를 그 이상 (배..etc)고픈 지경에 몰아 넣어야 취할 수 있다면, 그러지 않고는 취할 수 없다면 이를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대개의 사정이 어떠하든 그래도 살필 여지餘地, 나름 존재하지 싶습니다. 만일 이 시스템 어디 한 구석, 계속해서 착취 이는 형편이라면 이를 모른 척 넘길 일 만도 아닌 것. 따라서 이를 고민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 살풍경 이면에서 제가 누리는 바에만 골몰한 나머지 이에서 비롯하는 권태, 그 주머니 뚫겠다고 곧추 세우느니 고작 말초적 탐닉이라면 이건 쫌 -_-;; 머리 안쪽에 '엉덩이' 제국을 세우거나 말거나 입 밖에 내지 않으면 모르니, 그에 도덕이든 등등의 잣대를 들이밀리 없고 당초 그럴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일단 내었으면 그에 따르는 책임에 있어서만이라도 분명하게 감당해야 마땅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거침없이 이해하'는 후세後世에 이 살풍경 제조 책임 만도 무거운 형편;; '밤마다 도시가 하나씩 함몰되'는 참에, 해서 누군가는 '면도날로 팔목을 긋고' 있는 판에 말이지요. 최소한 제 욕망의 '등燈심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기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으르신들 ~ '_'


붙임. 1: 방년 만 서른마흔닷짤 독신 책방 아재도 반성.

붙임. 2: 인용 詩는,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