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 책방 아저詩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 책방 아저詩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_기형도,詩 「정거장에서의 충고」 전문




이 詩, 다시 살필 적마다 점점 더하여 느끼는데요. 그러니까 마치 세간의 온갖 바닥을 쓸고 다닌 탕아蕩兒가 일러주는 말로 읽혀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어쩌면 저도 제 속에 모르는 상처, 벌어진 틈이라도 있어 그런지 무언가 후-욱하고 지르며 들어옴을 강렬하게 느낍니다. 이를 일러 '푼크툼 puncktum'이라 하는 걸까요. 엉뚱하거나 삐딱하게 기울어진 시선 같아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를 잠깐 생각다 곧 잊어버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반골 기질이랄지 하는 따위가 또 아주 쓸모없는 것 같진 않아서요. 특별히 요즘처럼 하- 수상한 시절에는 더더욱, 게다가 아주 요긴한 듯싶습니다. 코로나19 창궐 지경에, 정말이지 대단히 아니된 사정에, 무능 운운하는 데에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그러니까 저는 계속, '희망을 노래하'렵니다 ~ '0'/ 어쩌겠어요, 이렇게 생겨먹은 걸. 게다가 이런 스스로가 아주 밉지만은 않습니다(이따금 종종 미덥지 않지만, 그런데 이건 어차피於此彼 피차彼此 same same 아닙니꽈 ~ '0'/).



그나저나..

그러게요, '어쩌다 집을 떠나왔'을까요. 인간種의 에덴은 어디?! Answer me!!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아...ㅜㅡㅜ


'나부끼는 구름' 아래의 풍경.


곱게 개어 쌓아올린 '죽음' 밟고 부자유한 장벽 오르지만 그래도 모자란지 빛 들어 '입구'인 것만 겨우 가늠.

더 얼마나 많은 '죽음'을 쌓아 올려야 하는지..

한편에서 民이 건너는 '좁고 어두운' 터널, 길이가 얼마인지 걷느라 애를 써도 더디고 느린 것만 같고..

사이 '의심으로 끝없이 갈라졌던 길들', 돌고 돌아 다다르는 끝은 다름 아닌 이 가슴이었으니.

'주저앉으면 그뿐', '어느 구름이 비를 뿌릴지' 가늠한다고 애쓴 세월 허송한 셈.

때에 이르면 알게 될 일을, 닿게 될 길을, 나' 또한 머지않아 흘러가게 될 그곳.

헤매인 탕아에 이입하여 닿은 저물녘 生의 정거장.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도 '쓴다 /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정원 초과를 모르는 이 육신을 정거장 삼아 마음껏 머물다 가시라, 불안이여 ~



붙임: head 삽입, 루시드 폴 <버스,정류장> OST 음반

이전 06화정복여, 꿈꾸는 사업 ─ 책방 아저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