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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Jan 31. 2024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아니한가

-불편하지만 시골에 사는 이유

지금까지 나열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시골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우선, 아이의 서울 학교에서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초등 3학년에겐, 그것도 외동이로 자라 가정 내에서의 또래 상호작용이 부족한 아이가 견뎌내기엔 힘든 고통이었을 정신적 폭력을 당한 우리 아이의 마음 건강을 지켜주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부산,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사는 동안 종종 심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던 아토피 증세도 거의 사라졌다. 확실히 도심에 비해 공기가 좋긴 한가 보다. 

게다가 고입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는 읍면 거주지 소재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대학입시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을 노려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니 또한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내가 브런치에서 구독하는 작가가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바로 저 ‘농어촌 전형을 염두에 두고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를 하여 살면서 강남의 월 2백만 원인 고액 학원비를 감당하면서도 열심히 아이를 학원으로 픽업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글이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학벌 지상주의를 버릴 수 없는 학부모들이 많다. 나도 내 아이가 학구열이 뛰어나서 강남에 있는 학원에 다니겠다고 하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또 평생 안고 가야 할 것만 같았던 부동산 담보대출의 늪을 우선은 탈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서 비정규 기간제 일자리긴 하지만 급여소득이 발생하는 일을 수년째 할 수 있어서 나의 자기 계발비나 아이 학원비 정도는 종종 충당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마음의 여유도 생겨 내 20대 이후 버킷리스트인 ‘내 이름을 단 책 한 권 출간하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 강의 수강도 하고 모임도 참석하면서 내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일부러 귀농 귀촌을 하러 시골에 내려가는 젊은이들도 있는데 아이 하나만을 생각하며 이곳에 내려올 때의 첫 마음을 생각하면 조금(?) 불편한 건 감당할 수 있다. 소박한 삶을 꿈꾸며 도끼 한 자루 들고 한적한 시골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 헨리 데이빗 소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이 쓴 『월든』에서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기후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라고. 스스로 효모나 기타 첨가물을 넣지 않은 밀가루와 물로만 반죽해 구운 빵을 먹고, 의자 같은 작은 가구는 만들기도 했지만, 가구가 또 없어도 앉거나 설 수 있다고도 강조한다. 또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께서도 자신의 책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산문집에서 “인간의 행복은 큰 데 있지 않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조그만 데 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자작나무의 잎에도 행복은 깃들어 있고, 벼랑 위에 피어 있는 한 무더기 진달래꽃을 통해서도 하루의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 빈 마음으로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본문 p.61)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 식구 모두 각자의 공간 하나씩 차지하고 쉴 수 있는 방이 딸린 이 수도, 가스, 전기가 항시 공급되고 14층인 집까지 엘리베이터가 데려다주는 아파트에 사는데 도심권이 아니면 어떠하리. 이 수도권에서, 인구가 100만이 넘었다고 특례시로 불리는 도시 내에서 어쨌든 고라니와 너구리를 마주칠 수 있고, 겨울이면 철새들이 날아오고 산속에서나 들을 법한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 앞이 탁 트인 비닐하우스 농장이라 하루 종일 온전히 햇살을 받는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리며 살 수 있으니 매일 휴양하는 느낌이지 않은가. 정권이 바뀌기 전부터 자치단체장마다 우리 옆 동네까지만 닿는 경전철을 인접 경기광주역과 연결하는 전철을 놓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으니 뭐 언젠가는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저 이렇게 자연경관이 덜 훼손된 이 환경을 눈에 되도록 많이 담자. 소소하지만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게 사진도 많이 찍어두자. 언젠가 ‘그땐 그랬지. 아파트 주변으로 고라니, 너구리도 함께 살고 말이야.’ 하며 흐뭇한 회상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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