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오름 Sep 30. 2024

우리는 그걸 스토킹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친해서 그랬다는 핑계는 사양합니다

n년 전

그날은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정해진 시각 30분 전, 조금 더 이르면 1시간 전에 매번 회사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일을 시작하던 나는 오전시간을 활활 태우고 점심시간이 다 되었을 때쯤 이미 배터리가 방전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밥 생각도 없었고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주어진 유일한 고독한 시간마저 여러 사람들과 섞여 구내식당에서 밥이 아닌 남들의 말을 먹는 것도 피곤했고, 심지어 매일 끊이지 않는 동료와 상사 뒷담화에 미리부터 체할 것만 같은 기분이어서 혼자 쉴 목적으로 1층 커피숍을 찾았다.


딱히 커피가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이 지루한 시간과 피곤한 일정을 앞으로도 다섯 시간 이상 버텨내려면 직장인들이 필수로 이야기하는 커피수혈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렇게 몇 분을 앉아있었을까. 드르륵하는 소리에 커피숍 진동벨인가 싶어 테이블을 쳐다보니 내 휴대폰에 메시지 알람이 떠 있었다. 뭐지?


그 순간 내가 주문했던 커피도 마침 픽업대로 나와있어서 빠르게 테이크아웃잔을 들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에 사무실로 빠르게 걸었다. 지나가다 누가 나를 보기라도 한다면 분명 나는 그 사람의 손에 잡힐 것이고 이제 30분 정도 남아있는 점심시간마저 귀가 따갑도록 관심 없는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만 했다.


휴, 다행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 적어도 30분은 내 세상이다. 잠시 한숨 돌릴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한입 쪼르륵 들여 마신 후에 눈을 감았다. 그러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조금 전 읽지 않고 넘겨둔 메시지가 생각났다.


아 읽기 귀찮은데, 이따 읽을까.

아니야, 급한 일이면 어쩌려고 그래. 답장해야 되는 일이라면 근무 시간엔 더 힘들 거야.

잠금화면을 해제하자 카카오톡에 빨간색 알람이 떠 있었다.

광고 메시지를 제외한 몇 개의 메시지를 연달아 확인하다가 스크롤을 내린 지점에서 모르는 사람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뭐지?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클릭했다.

그리고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이 어떤 이야기인지 알게 됐다.


“왜 밥을 안 먹고 커피를 먹어요?”


하아... 이거 뭐지? 진짜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메시지가 왔는데, 그 사람은 내가 밥을 먹지 않고 혼자 카페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 어디에서 날 봤는지, 내가 아는 사람인건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회사 동료인지 아닌지 그 어떠한 정보도 모르는데 말이다.


차단해야 하나? 읽기는 했는데 그냥 이대로 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죄송한데 누구세요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내가 누굴까요~?^^한번 맞춰보세요ㅋㅋㅋㅋㅋ“


진짜 소름이 돋았다. 미친놈 아니야? 이 사람 뭔데? 장난치는 건가? 내 친구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진짜 또라이면 어떡하지?

놀라 쿵쾅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고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리고 일단은 메시지에 더 답장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를 잠시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밀려드는 업무폭탄에 치여 다시 일과에 몰입하느라 잠시 이 사건에 대해 잊어버렸다. 그리고 문제는 몇 시간이 흐른 후, 그것도 이미 퇴근시간 20분가량을 오버타임 한 후에 급하게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지나쳐 회사 정문을 나가면서 또다시 시작됐다.


지이잉-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이 부르르 떨렸다. 문득 겁이 났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또 그 메시지였다. 그 사람이었다.


“걸음이 왜 이렇게 빨라요? 하마터면 놓칠뻔했어요^^“


와... 씨.

무서운 걸 떠나서 더는 못 참겠다.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돌려보았지만 이미 회사 밖으로 빠져나간 직원들이 대부분인 탓에 텅 빈 거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잡히기만 해 봐라. 누가 이따위 장난을 쳐. 가만 안 놔둔다. 걸리기만 해 봐.

이를 갈며 통화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없는 번호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누구냐고 장난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차라리 내 눈앞에 나타나서 말로 하던가. 사람 안 보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숨어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건가 싶었다.

한참 후에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요약하자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그 사람은 타 부서 A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한다. 그 사람과 크게 접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얼굴은 아는 사이였고, 어떠한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단지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나이도 비슷한데 직장생활 이야기도 하면서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순수하고 사람을 믿어보려 했던 나는 훗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을 줄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쎄한 느낌은 피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생각과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봐, 내가 나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 인트라넷을 뒤져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걸 일일이 묻고 따지기엔 나는 직장 퇴근 후에도 바쁜 사람이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저 불친절하고 예의 없는 메시지에 계속해서 답장해 줄 의무도 없었고 그럴 에너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그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래,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누군지 얼굴은 아는 사이니까. 같은 부서는 아니어도 오다가다 하루에도 한두 번은 얼굴 볼 수 있는 사이니까. 굳이 일 크게 만들지 말자. 내가 착각하는 거일 수도 있지. 접근 방법은 조금 별로긴해도(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악이다)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그런 생각으로 메시지를 남겨두고 내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네. 나중에 회사에서 봬요.”


그런데 그 말을 한 내가 문제였을까. 그 말을 또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부풀린 그 사람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것일까.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음 날 아침, 출근 도장을 찍고 근무 시간 전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하러 어제와 같은 구내 커피숍을 찾았다. 한 손에 따뜻한 커피를 쥐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 멀리 회사 정문에서 어제 그 사람이 보였다. 피하려고 했는데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 네. 안녕하세요”


그러고 나서 나는 빠르게 손에 쥔 커피를 들고 자리를 피했다. 어지간하면 사내에 이상한 소문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남들이 오해할 만한 상황으로 누군가와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 되도록 조용히, 나는 내 할 일이나 하면서 무사히 업무 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또다시 나의 일상을 찌그러트리는 기분 나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맛점 하시라는 똑같은 메시지가 도착했고, 업무 중간쯤 오후 3-4시쯤이 되면 지금 많이 바쁘냐, 뭐 하고 있냐는 시시콜콜한 어쩌면 쓸데없는 메시지가 한두 개씩 날아왔다. 회사에서 업무 시간에 일 하지 대체 뭘 해야 하는데? 넌 한가한가 보다? 답장할 시간도 없었고 그럴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차단을 해버리고 싶었는데 같은 회사 안에서 어찌 되었든 얼굴을 마주 보게 되는 사람인지라 사실 그마저도 나에게는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일에 미친 사람이 돼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면 퇴근시간이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오늘 하루도 진짜 바빴다, 빨리 집 가서 조금 쉬고 다시 일해야지. 그 생각으로 회사 건물 밖을 나와 빠르게 걷다 보면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 퇴근하나 봐요.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내일 봐요^^ 저녁 맛있게 드세요^^


하... 씨.

맥락 없이 위 문장만 보면, 메시지만 읽는다면 보낸 이를 엄청 다정하고 센스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남자친구라거나.

썸을 타는 사이라거나.

그런데 그 상대랑 나는 전혀 그런 사이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대체 나에게 함부로 다정해 보이는 듯한 저런 메시지를 왜 보내는 걸까.


며칠을 고민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게 싫어서, 혹시나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까 봐. 남에게 싫은 말 하는 게 정말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어색하니까. 되도록이면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가자. 나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이러다 말겠지. 그렇게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화와 분노를 꾹꾹 삼켜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면 알아서 그만하겠지, 눈치가 있다면 알아서 관두겠지 싶어 이 사태를 방관한 지 2주쯤이 되자 A는 밤에도 대뜸 메시지를 보내왔다.

전형적인 구남친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말이다.


“자요?”


자면 어쩔거고 아니면 당신이 뭘 어쩔건데.

너... 나랑 뭐 돼?


한참 후에 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한 연락 정말 너무도 불편하고 불쾌하다고 말이다. 처음부터, 회사 인트라넷에서 내 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했던 그 당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시작한 메시지는 당신이 혹여나 좋은 의도로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너무도 그 마음이 불편하고 이러한 메시지도 너무 힘들다. 직장 동료로서도 이런 연락은 불편하고, 심지어 만약 남자와 여자 이성관계로서의 발전이나 호감으로서의 메시지라면 더더욱 앞으로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에 가까운 호소장이었다. 내 메시지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숫자 1이 사라졌음에도 그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래 차라리 답장을 하지 마라. 제발. 어쨌든 내 메시지를 읽었으니 여기서 끝난 거겠지? 나는 부탁에 가까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내에서 이 상황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벌벌 떨렸는데 상대는 아니었나 보다. 30분 정도가 지나 돌아온 답장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유감이네요. 다른 마음이 아니고 전 oo 씨랑 친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커피도 그렇고 밥도 그렇고 직장 동료끼리 술도 먹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oo 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뭐. 제가 불편하게 했나 보네요. 알겠습니다. “


아니, 이게 무슨 경우지?

말의 앞뒤 상황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이게 바로 신종 가스라이팅인가? 싶었다.

직장 동료끼리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술도 마시고 할 수 있다고?

그래.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엄연히 말해서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누군지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내 연락처를 알려준 적도 없었다.

어떠한 경로로 내 연락처와 주소를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떠한 의도로 접근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불친절하고 예의 없는 경우는 살면서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내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마신 것 같은 정말 불쾌하고도 재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아 정말 기분 뭣 같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살다 살다 내가 전남친, 구남친도 아니고 오다가다 얼굴 몇 번 본 직장 동료(친하지도 않은 동료!)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아야 하나?


그 생각은 점점 내가 뭘 잘못했나?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 자책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아니야, 아냐. 나는 잘못한 거 없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찝찝한 기분은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 일주일을 넘어가며 나는 그때 그 일을 잊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2주 정도가 다 되어가던 어느 날의 퇴근시간. 또 한 번의 메시지를 받게 됐다. 그 메시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그때 그 일을 그냥 기억 속의 어떠한 작은 해프닝 정도로 넘기고 말았을 테다. 그럼에도 인생은 참 얄궂다. 또 인간 대 인간이 만나는 그 어떠한 관계는 대부분의 경우 내 예상을 빗나간다.


“잘 지냈죠?^^ 어제 oo 씨 살고 있는 동네 갔었는데. 혹시나 oo 씨 볼 수 있을까 해서 기다렸는데 밖으로 안 나오더라고요. 어제 집에서 뭐 했어요? ”


그때의 내 웃음소리라고 할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왔던 그 소리.

진짜 미친 듯이 무섭고 심장과 손이 벌벌 떨려서 어떻게 내 감정을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그 숨소리.

ㅎㅎㅎㅎㅎ 남발을 해야 하는지, ㅋㅋㅋㅋㅋㅋ 남발을 해야 하는지.

욕을 남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그 혼돈과 공포의 순간들.

그대로 카톡 내용을 캡처했다. 혹시 몰라 삭제하지 않고 있던 그 A와의 첫 대화부터 오늘의 메시지까지 다 캡처해 두고 근처 카페에 가서 인터넷에 검색했다.


‘스토킹‘

‘스토커 심리‘

‘스토킹 협박’

‘모르는 사람이 스토킹’


온갖 연관 검색어부터 스토킹에 관한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지만 딱히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근처 경찰서 앞까지 가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문을 열지 못하고 되돌아 집으로 왔다. 실질적인 물증이 없으면 처벌이 쉽지 않다고 했고, 그 인과를 밝혀내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내가 물리적이거나 언어적인 폭력을 당했거나 실제로 육체적인 위협을 받았거나 협박을 당한 것까지는 아닌 이 상황에서는 그저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끝날 확률이 더 많다는 내용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건 혹시나 그 사람이 나를 해코지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만일 자기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물증이 없는데 내가 우기고 있는 거라고 한다면?

혹시나 앙심을 품고 나에게 혹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난동을 피우면 어떡하지?

가족에게 말도 못 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이 사람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부서장님을 찾아가 면담요청을 했다.

왜 그동안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말을 시작으로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하신 후에는 바로 타 부서 팀장님과 인사담당자를 연결해 주셨다.

몇 명을 거쳐 한참의 이야기 끝에, 나는 혹시나 이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무섭고 걱정된다고 말씀드렸다.

A가 속해있는 타 부서 팀장님은 본인이 이야기를 잘해보겠다고 했다. 걱정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연락 한 통을 받게 됐다.

그 A가 퇴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혹시나... 이게 나 때문인 거면 어떡하지? 나 찾아와서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일이 되는 걸 바란 건 아닌데. 진짜 그랬던 건 아닌데.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내가 이후로 그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한 일은 없었다. 이사를 가야 하나도 고민 많이 했지만, 현재까지는 아무 탈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타 부서 팀장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사실 나 말고도 A가 이렇게 접근하며 연락해 온 여자 직장 동료들이 몇 명 더 있다고 했다. 그들도 다 나와 같이 해코지를 당할까 봐 무서워서 선뜻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타 부서 팀장님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혹시나 서운한 마음도 들겠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이해해 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A랑 얘기해 봤는데, 얘가 나쁜 애는 아니야. 아닌데... 그냥 oo 씨한테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그런데 표현할 줄을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 물론 나도 잘못된 방법이라고 타이르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게까지 나쁜 애는 아니니까... 찾아가서 해코지하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진짜 경찰에...”




이후로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진짜 경찰에... 그다음에 내가 듣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만일이라는 그런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혹시라도 내가 만일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땐... 이미 늦은 게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쯤에서 끝나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종종 회사 출퇴근을 하며 정문과 후문 뒤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를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자주 휴대폰을 껐다 켜보기도 하고 메시지창을 새로고침하느라 몇 분을 써본 적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가 울리거나 부재중전화에 찍혀있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질식할 것 같기도 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는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렇게 몇 달 후, 나는 회사를 관뒀다.

지금까지도 그 회사 근처는 가지 않는다.

혹시나... 그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작가의 이전글 매일매일 기다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