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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Sep 22. 2024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울텐데

누가 싸가지인가

입사 1일 차, 아니 2일 차, 아니지 3일 차. 그것도 아닌가 4일 차였나?

일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똑같은 날이었다.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내 체중은 이미 3킬로가 넘게 빠진 상태였다. 입사 전에도 나는 이미 저체중이었다. 170에 가까운 키에 몸무게는 45킬로를 왔다 갔다 했다. 나름대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던 나는 이미 혈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눈밑은 퀭했고 입꼬리는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입사 며칠 만에 나는 경직된 얼굴에 뻣뻣한 태도, 삐그덕거리는 움직임, 말을 잃고 생명을 잃은 로봇과 비슷한 생김새로 변해갔다. 그 정도로 매일매일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시달렸단 소리다.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내가 원인이 되어 혼났고 아니라고 대답하면 말대꾸한다고 혼났다. 그렇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치 보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지금 반항하는 거냐고도 혼났다. 뭐 어쩌라는 거냐,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요즘 말로 세상이 나를, 직장이 나를 억까하는 것 같았다.


병동 안에서 내 이름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고 매번 야 소리 아니면 호칭조차 없는 부름에 응답해야 했다. 환자나 보호자,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으면 예외였다. 씨씨티비도 예외였다. 누군가 있을 때는 그래도 이름이든 호칭이든 둘 중 하나로 나를 불러주기는 했다. 눈빛은 마치 짜증 나는 널 당장이라도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는 살벌한 얼굴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켜보는 누군가가 사라지면 나라는 존재는 매번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병동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는 하루살이처럼 그들 주변을 맴돌았다. 차라리 하루살이는 며칠이 지나면 생이 끝나기라도 하지. 나는 지긋지긋한 이 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끔찍한 굴레 속에 갇혀 사는 먼지 같았다. 갈 곳을 잃은 채 여기저기 떠도는 먼지말이다.


“야!!“

“야, 차오름!!“

“차. 오. 름. 선. 생. 님. 이리 와보세요.”

“차오름쌤!!!!!!”


“네!!!!”

“저, 여기 있습니다!!!”


헉헉대며 8 병동 복도 끝자락에서부터 간호사 메인 스테이션이 있는 복도 중앙까지 전력질주하듯 달렸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달리기에 소질이 없었다. 4명이 달리면 4등, 8명이 달리면 8등으로 언제나 달리기 대회만 했다 하면 꼴찌를 도맡는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전력질주로 달려봤자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었을까. 그래서였을까. 그래봐야 10초 정도의 오차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커다란 병동이라 하더라도, 복도와 복도 끝을 질주한다고 하더라도 내 발에 족쇄가 채워져있지 않은 이상 그 거리를 달려오는데 10분 이상이 걸린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스테이션에 도착해서 숨도 고르지 못한 채 헉헉거리고 있자니 머리 위로 선배 간호사의 한숨과 쏜살같은 말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박혔다.


“뭐 하는데 이렇게 늦게 와. 몇 번을 불렀는지 알아?!”

“너 일부러 그러냐? 선배가 부르면 재깍재깍 와야지, 뭐 하길래 대답도 없어?”


“죄송합니다. 환자분 라인이 빠져서 다시 잡고 있었... “

“야! 너 지금 나한테 말대꾸하는 거니? 얘 웃긴다. 우리 때는 선배가 말하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가 먼저였어. 하여튼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가...”

“... 죄송합니다.”



내가 노냐? 놀았냐고. 병실 안에서 환자 손목에 주삿바늘을 끼워 넣고 있는데 선배 간호사의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틀렸다한들, 꽂고 있던 바늘을 내팽개치고 병실 문밖으로 전력질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죄송하다고 대답을 했건만 그 단어는 허공에서 사라져 증발된 것처럼 선배 간호사는 소위 라떼시절을 운운하며 한 순간에 나를 싸가지 없는 애로 낙인찍었다. 싸가지 없다...? 그런데 싸가지가 뭐였지? 나 같은 애를 싸가지 없다고 하는 건가? 나 같은 애가 뭔데?






살면서 하루가 이렇게 길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집 앞마당에서 동네 친구들이랑 딱지치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때에도, 엄마가 저녁 먹으라며 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에도,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밀린 방학숙제 일기를 쓸 때에도 이렇게까지 하루가 길었던 적이 없었다. 대체 왜, 안 끝나? 하루가 대체 왜 아직도 안 끝나고 있는 거냐고.


새벽 4시, 방에서 일어나 전날 밤 울어 퉁퉁 부은 눈을 어렵게 뜨고 찬물로 어푸어푸, 얼굴을 세차게 헹궈냈다. 전쟁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텨서 살아남아보자.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나에게 억지로 웃어본다. 분명 웃어보려 했는데 입꼬리가 당겨 올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입꼬리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금세 울상이 된다. 왜 그렇게 슬퍼 보이냐고 나에게 물을 새도 없이 가족들이 깨기 전에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외투와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새벽 4시 20분, 아직은 쌀쌀하고도 캄캄한 3월의 아침 출근길. 첫차도 없는 시각. 정시 출근은 오전 6시 30분이지만 막내이기에 당연하게 이 시간에 출근이다. 라떼는 2시간 전 출근이 기본이었다며, 3시간 전 출근도 비일비재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1시간 30분 전에 출근하는 나 같은 애는 이것도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같은 라떼를 지낸 이들은 한 병동 내에서 똘똘 뭉쳐 ‘요즘 애들은 그래서 그런지 싸가지가 없어.’라는 가스라이팅을 시전 했다. 누가 싸가지 없는 애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속으로는 칼을 갈았지만 띵-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추고 문이 열리며 8 병동 안내판을 보는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한 마리의 어린 짐승이 되어 배고픔에 굶주린 야생동물이 날뛰는 광활한 대지에 홀로 버려진 나. 지옥 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병동에 도착한 시간이 5시 이전이니, 그때부터 계산하더라도 족히 반나절이 흘렀다. 그런데도 점심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건 일상이었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스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모니터 속 검사 수치를 확인하며 면담 중인 레지던트, 담당 간호사가 누구냐고 소리치던 수간호사, 레지던트 여러 명에 둘러싸여 회진 중인 교수님 뒤를 쫓아 달리던 선배 간호사, 드레싱카트를 뒤적거리며 어시스트할 간호사를 찾는 인턴쌤, 앞다투어 나 좀 봐달라는 환자 보호자들 틈에서 나는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어린양 이었다. 귓가에 웅웅 거리며 시끄럽게 섞여 들어오던 사람들의 목소리, 미간을 찡그리며 넌 거기서 뭐 하고 있냐는 듯한 나를 보는 못마땅한 얼굴들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져 8 병동 공기를 부유하는 티끌만 한 먼지 같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수습기간이랍시고 반토막난 건 내 월급이었는데 보잘것없는 이 몸뚱이와 머릿속이 반토막이 되었다. 산 채로 8 병동 도마 위에 오른 싱싱한 횟감인 나는 어마무시한 칼날에 송송 썰려 여러 토막으로 해체되고 있었다.



“...쌤”

“차오름 쌤!”


“아...? 네! 네! 선생님.”

“인턴쌤 드레싱 좀 도와줘. 이것만 하고 내가 바로 갈게.”


제가요? 진심으로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되물을 사람이 없었다. 던지듯 말을 내뱉고 어디론가 발 빠르게 사라진 선배 간호사의 뒷모습을 찾아 고개를 빼꼼 거려 봤지만 머리카락 한 올 찾을 수 없었다.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전 아직 드레싱 어시스트를 배워본 적이 없는데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드레싱 종류와 적응증에 대해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는 달랐다. 수습기간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수습기간이라고 봐주는 것 하나 없는 직장 생태계.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제 겨우 입사한 지 1주일 차 신규 간호사가 배워본 적 없는 정형외과 드레싱을 어시스트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대꾸할 말도, 별다른 방법도 없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턴쌤과 함께 무거운 드레싱카트를 끌고 전쟁에 나섰다. 이번 작전은 감염 예방이다. 손끝에 와닿는 드레싱카트의 손잡이가 너무도 차고 시렸다. 2차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온도가 높은 환경보다는 낮은 환경이 유리하다. 다행히도 아직은 내 손끝이 차가웠다.


일주일간 거추장스러운 존재, 싸가지 없는 존재로 낙인찍혀서 그런 걸까.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를 주워들을까 겁먹었던 것과 다르게 인턴쌤과의 드레싱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물론 인턴쌤 역시도 선배들에게 치이며 때론 혼나기도 하며 배우는 성장의 단계에 있는 위치여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건 인턴쌤은 적어도 나를 인간적으로 대우해 줬다는 사실이었다.


소독이 끝난 부위에 멸균 거즈를 올리고 붕대를 감는 일, 베타딘 소독볼을 상처 부위에 콕콕 찍어 바르며 방수용 테이프를 붙이는 일을 얼마간 반복했는지 모른다. 사이즈도 제각각, 붙이는 테이프도 제각각, 붕대를 감는 위치와 방법도 제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같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사이즈를 잘못 추측해서 애꿎은 테이프를 건넸을 때도 보통 같았다면 보는 눈이 없다고,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핀잔을 줬을 선배 간호사들과 다르게 인턴쌤은 웃으면서 “음... 그 옆에 테이프로 할게요. 아래쪽에 있는 조금 더 작은 붕대가 나을 것 같아요. “라며 나를 가르쳤다. 가르친다는 표현은 원래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분한 태도와 나긋나긋한 목소리, 정확한 정보 전달이었다. 그렇게 온 병동을 다 돌았을 때쯤 간호사 스테이션이 보였다. 어느덧 시간은 1시간이 넘게 흘러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름쌤도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


인턴쌤이 손을 씻고 병동에서 사라지자마자 방금까지 조용했던 주변이 시끌벅적 소음으로 가득 찼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분명 웅성거리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점점 그 목소리들이 커져가며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눈을 한번 세게 감았다 뜨자 등짝에 착-하고 뭔가가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의도야 어쨌든 그날 내가 선배 간호사의 손바닥에 등짝을 맞았다는 사실은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이것만 하고 오겠다던 선배 간호사 1은 아직도 인계가 끝나지 않았는지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쉬지 않았고, 내 등짝을 때렸던 선배 간호사 2는 인계 시간에 뭐 하다 이제 오는 거냐고 소리를 꽥 질러댔다. 큰 소리가 나자 인계가 끝났는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선배 3, 선배 4가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가까운데.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바짝 다가온 선배들 사이에 어느새 나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설계된 새장 안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야, 너희도 봤지? 인턴쌤이랑 하하 호호 아주 신났더라 얘?”

“누가 보면 연애하는 줄? 야, 너 인계시간에 인계 안 듣고 연애하다 왔니?”

“요즘 애들 진짜 당돌하다 당돌해. 벌써 인턴쌤 꼬신 거야? 야 행동 조심해. 괜히 우리까지 욕먹이지 말고.”


다 마신 커피잔을 손에 쥔 채로 선배들은 내 어깨를 툭, 툭, 치며 간호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닫힌 문 앞에서 우두커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아니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이래? 누가 연애를 했고 누가 누굴 꼬셨다는 건지 소설을 쓰고 앉은 선배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너희들이 가르쳐주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일 떠넘기며 나를 내보낼 때는 언제고 기껏 한 시간 내내 뛰어다니며 일하다 온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 같아 허탈하고도 억울했다. 이미 내가 들어갈 수도 없도록 꽉 닫힌 간호사실 안에서 한참 동안을 나를 욕하는 소리와 함께 내 이름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하, 진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도 정도껏이지.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눈이 시리도록 빛을 내고 있는 백열등에 눈꺼풀을 닫았다. 그러자 뺨으로 주르륵 눈물이 타고 흘렀다. 울지 말자. 여기서 울면 진짜 나 불쌍해지는 거야. 울지 마. 우악스럽게 팔목으로 눈을 벅벅 닦았다. 어느새 인계가 끝났는지 나에게 드레싱 어시스트를 맡긴 선배 간호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나 정말 괜찮아. 선배님이 고생했다고 말해주면, 아니 괜찮냐고 한마디만 물어봐준다면 괜찮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해야지.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드려야지.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쪽으로 오는 줄 알았던 선배 간호사는 앞서 들어간 선배들을 따라 간호사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비켜. 어디 있다 인계 다 끝나고 와? 너 내일 인계 때 오늘 내용 모르기만 해 봐. “


다시 한번 내 몸이 살짝 틀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과장해서 내 오른쪽 어깨에 멍이 들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싶었다. 선배가 향하던 간호사실 문이 이윽고 다시 한번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 안에서는 여전히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선배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내 어깨를 툭툭치고 들어가는 대신 반듯하게 다려진 내 유니폼에 차라리 커피라도 흘려줬으면 싶었다. 그 핑계로 너무 뜨거워서 그랬다고 펑펑 울고라도 싶었다. 여럿이 툭툭치고 지나간 내 오른쪽 어깨, 마음속 깊이 남은 두려움과 상처는 나만이 아는 것이었다. 분명 난 어딘가를 세게 얻어맞은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아플 일이 없을 텐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맞았다는 걸, 아프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작은 흔적조차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8 병동 앞, 닫힌 간호사실 문 앞에서 그렇게 한참을 그들의 웃음소리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불과 몇십 분 전, 드레싱카트를 끌며 내일 보자던 인턴쌤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내일 봐요’


선생님 그런데요, 내일도 제가 멀쩡하게 출근할 수 있을까요?


엿같다. x발...

입 밖으로 낸다고 모두가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엿이라면 바꿔라도 먹지.

학생 때도 잘 안 하던 욕이 다문 입술 틈새로 절로 흘러나올 것만 같아 입 밖으로 새지 않게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짓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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