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오름 Sep 29. 2024

컵라면을 먹지 못하는 사람

당신은 눈물버튼이 있나요? 저는 컵라면이요

불어 터지고 식어빠져 차가운 컵라면을 먹어본 사람만이 방금 막 끓인 물로 부어낸 따뜻한 컵라면 한 입의 참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죽을 만큼 힘든 경험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들이 많았을 테다. 나이가 몇 살이든, 여자이든 남자이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취준생이든 직장인이든 모두가 각자의 고민과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을(불행이나 죽을 만큼의 힘든 일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아 이렇게 표현했다) 굳이 내 인생에서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혹은 먼 훗날에 이 일을 상기해봤을 때 내가 그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쉽지 않지만 꺼내볼 때마다 아프고 힘들지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야 오늘을, 그래도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기니까.






그날도 어김없이 불안에 떨며 출근한 하루였다. 동트기 전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병동에 도착했을 때는 텅 빈 스테이션과 간간이 울리는 모니터 알람소리만이 가득했다.


지금 시각 새벽 4시 40분. 정규 근무시간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두 시간 후.

 

일단 먼저 물품 카운트를 하기 위해 한 손에는 장부, 한 손에는 삼색볼펜을 쥐고 처치실과 병동, 오염세탁물실과 소독실을 왔다 갔다 하며 있어야 할 물건들을 체크한다. 중앙공급실로 내려간 드레싱 트레이는 몇 개인지부터 시작해서 오전 회진 때 사용할 드레싱 카트에 현재 준비되어 있는 처치물품들부터 세어본다. 각종 의료기구 하나하나씩 세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해본 사람들은 알 테다. 물건이 자리에 있는 경우보다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 말이다.

심지어 처음 본다면 다 거기서 거기같이 생겨먹은 각종 겸자와 가위. 사이즈만 다른 똑같은 용도의 포셉, 소독포, 과산화수소 솜을 담가놓은 통, 알코올을 잔뜩 묻힌 멸균솜을 담은 통, 베타딘 볼 통은 정말 사람을 바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몇 개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대단하고도 짜증 나는 물품카운트였다. 트레이만 80개에 달하는 수준이고 그 외 각종 체크할 사항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내가 일하는 직장, 병원이었다.  


신규 간호사라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까. 개수가 잘 안 맞는 것은 물론이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몇 번을 해야 겨우 카운트를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규 간호사에게는 유산소 운동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헉헉대며 오늘도 30분가량을 뛰어다닌 끝에 나는 심폐지구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끝끝내 가위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누군가는 ‘그럼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싶겠지만 이 역시도 신규 간호사에게는 말처럼 쉽지 않은 위기상황이다.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가위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오전에 사용할 약품장 정리도 해야 하고, 차팅 준비도 미리 해두어야 하고, 낙상 예방 활동 평가도 해야 하고 욕창 예방활동 시행 평가도 점검해야 하는데... 할 일은 태산인데 이 가위 하나 찾자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맨날 먹는 욕이지만, 찾을만한 데는 다 찾아봤음에도 보이지 않는 가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마침 아침 라운딩을 끝내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선배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받아주는 인사는 없었다. 그런데 뭐, 익숙했다. 처음에는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혹시 귀가 잘 안 들리는 건가 싶기도 했었는데 그건 아닐 테다. 대답은 안 했어도 나를 한번 쳐다보기는 했으니까. 둘 중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급했다.


“선배님... 저 죄송한데요 아침에 물품 카운트를 하는데 가위 하나가 도저히 보이지 않아서요. 장부에 체크되어 있지 않은데 혹시 다른 병동에서 빌려간 물품 중에 가위가 있을까요?”

내 나름대로는 저 질문도 엄청 고민하고 고민한끝에 조심스럽게 내뱉은 질문이었다. 어떻게 물어야 그나마 덜 혼날 수 있을까. 내가 무턱대고 가위의 행방을 너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찾아볼 만큼 다 찾아본 후에 묻는 것이다. 도저히 이 지구상에 분명 어딘가 존재할 가위의 위치를 지금 나는! 도저히 현재로서는 찾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물어본다는 의미로 허리를 잔뜩 숙여 정중하게 묻고 있었다.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잔뜩 날이 서 치켜뜬 눈으로 나를 흘겨보는 선배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앙칼진 목소리도 함께였다. 때마침 슬슬 라운딩을 다 끝낸 건지 메인스테이션으로 하나둘씩 복귀하는 선배간호사들이 보였다. 아, 잘못 걸렸다. 역시나 오늘도 전쟁 시작이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


카트를 밀며 들어오는 선배들에게 목과 허리가 꺾이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굽실대며 (이 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스갯소리로 실제로 나는 이로부터 몇 년 후 목디스크를 얻게 됐다. 나이트 근무 중 응급실로 실려내려 가 급하게 찍은 MRI와 각종 검사 결과로 알게 됐다. 현재도 꾸준한 치료 중이다.) 인사를 하고 있는 내 위로 조금 전 가위의 행방을 묻는 질문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또다시 시작됐다.


“야, 신규가 나한테 가위 어딨냐는데?”

“우리 중에 누구 가위 가지고 있는 사람 있냐? 장부에 없는 가위를 왜 나한테 찾아? 진짜 웃긴다 쟤.”

“야, 너 지금 나한테 가위 없어졌다고 얘기한 거 맞니?”


당신이 차지간호사니까, 책임 간호사니까, 도저히 저는 모르겠어서 물어본 거잖아요. 이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요? 물론 속으로만 지껄였다.


또 자기들만의 잔치가 시작됐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가위다. 의료용 가위. 내가 잔칫상에 직접 대령한 가위말이다. 대체 그까짓 가위가 뭐라고.  


퇴근 전, 인계 사실 때야 알게 된 거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내가 하루종일 마음에 담고 있던 그 가위는 지난번 듀티 선생님이 카운트를 잘못한 문제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상 나는 애초부터 찾을 수가 없던 가위였다는 이야기다. 젠장. 그런데 더 열받는 사실은 아무도 그걸 나에게 알려주지도 말해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오전부터 뛰어다니며 물품 카운트를 하고 심지어 욕을 먹으면서도 ‘네가 카운트할 때 안 보여서 사라진 물건이니까 진짜로 못 찾아내면 네가 직접 물건 사와’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꾹꾹 참고 알겠다고 대답한 나에게 그 어떤 누구도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데에 엄청난 회의감이 들었다. 데이 근무 인계가 끝난 후에 당신들끼리 시시덕거리던 중 흘린 이야기를 우연하게 내가 들었을 뿐이다. 그래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게 잘못이겠지. 마치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내가 몰래 훔쳐들은 것처럼 되어버린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코가 막혔다. 마음속 응어리를 꾹꾹 눌러내며 울음을 참고 참아본 사람들은 안다. 진짜로 코가 막혀 눈이 매워진다.




점심도 못 먹고 일을 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가위 대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너 남아서 공부하고 가. 내가 내일 확인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니 처음으로 퇴근하고 일찍 집에 갈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희망에 부풀어있는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선배들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들에게 거슬리지 않게 탈의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이제 진짜 퇴근을 외치며 병동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선배 하나가 배가 고프다며 자기는 컵라면 하나를 먹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선배들도 따라서 컵라면을 먹고 가겠다며 가방을 내려두고 간호사실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날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선배들에게 이야기했다면 그날의 결과가 달라졌을까. 오늘이 달라졌을까? 그렇지만 그날 나의 선택은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른 반대 방향이었다.


신라면 컵라면 네 개에 물을 부어놓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선배들은 나는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이야기에 무척 신나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적으로도 종종 만나는 것 같았다. 친한가 보네. 그래 뭐, 몇 년을 봤으니 친하겠지. 그런데 참 시간 안 간다. 왜 이렇게 3분이 오래 걸리지.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휴. 불편해죽겠다.  속으로 숫자를 세며 나름대로 3분에 가까워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때, 닫힌 간호사실 문 틈으로 전화벨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스테이션에 아무도 없는 건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에 우리라도 받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였다. 근무 시간도 끝났고 내가 지금 전화를 받는다고한들 어떤 환자, 어떤 처방을 지시하는지도 모를 저 전화벨을 사복차림의 내가 받는 게 맞는가 하는 고민도 되었다. 만일 선생님들이 바깥에 있는데 내가 지레 겁먹고 나서는 거라면?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냐고 혼나면 어떡하지? 지금 여기 선배들은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은 건가? 아니면 벨 소리를 무시하는 건가? 어차피 누군가는 받을 거니까? 아 모르겠다.


때마침 3분이 지났나 보다. 선배들이 하나둘 컵라면 뚜껑을 열고 면을 건져내 먹기 시작했다. 빨간 국물을 호로록 들이마시며 맛있게도 컵라면을 먹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 컵라면이 잘 소화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뚜껑을 열고 면을 집어먹으려던 순간이었다.


“야, 너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와. 왜 자꾸 전화가 울려대. 시끄럽게.”


“네. 알겠습니다...” 쭈굴쭈굴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그날의 전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메모지에 급하게 적은 전화로 전달받은 사항을 이브닝 선생님께 전해주려 휘갈겨 쓴 이면지가 몇 장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사복차림의 나. 텅 빈 스테이션. 그리고 그 앞을 기웃거리는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서 나는 마치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대체 뭘까. 내 정체성은 뭘까. 나는 지금 간호사가 맞나? 사복차림의 나를 다른 사람들이 간호사로 보기는 할까? 그렇다고 간호사가 아닌 건 아닌데. 아니 그렇지만 근무 시간은 끝났는데. 그런데 끝나지 않은 업무의 연속이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비어있는 간호사 스테이션.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달아 울리는 1번, 2번, 3번 전화벨.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들처럼 내가 점점 작아져 우주를 둥둥 떠도는 외계생명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귀가 웅웅 거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며 여기가 어디인지, 몇 시인지, 내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도 잘 모르겠는 바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가 느꼈던 그런 증상 또한 공황 증상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닫혀있던 간호사실 문틈으로 선배 간호사들이 가방을 메고 줄줄이 나오면서 내 정신이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내가 조금 전까지 스테이션에서 전화를 받았던 건 맞나? 아닌가? 나는 분명 컵라면을 먹으려고 간호사실에 들어가 앉아있었고... 그러다 선배들이 나가서 전화를 받으라고 해서 이곳에 왔었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야, 너 여기서 뭐 해?  우리 먼저 간다. 들어가서 라면 먹어.”


선배들은 자리를 떠나면서 내 등을 밀었다. 얼떨결에 다시 간호사실 안으로 들어온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텅 빈 책상에 이제는 홀로 남아있는 컵라면이 보였다. 조심스레 컵라면 뚜껑에 손을 올렸다. 이미 온기가 사라져 버린 빨간색 컵라면.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었는데, 사실 안 봐도 뻔했는데... 차라리 뚜껑을 열지 말 걸. 그날 그 컵라면을 보지 말 걸.


다 식어버리고 불어 터져 국물 하나 남아있지 않은 컵라면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불어서 제대로 된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그 컵라면을 입에 넣지도 못한 채로 텅 빈 간호사실 안에서  홀로 남겨진 컵라면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퉁퉁 불어 모양을 알아볼 수조차 없고 차게 식어 온기마저 사라진 그 컵라면이 너무도 내 모습 같아서,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바짝 마르고 생기를 잃어 흉측해져 버린 그 작은 컵라면이 너무도 불쌍해서 버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끅끅대며 컵라면을 안고, 나를 안고 울었다.





 

 

+​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은, 저는 컵라면을 먹습니다.


이전 02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울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