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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Sep 15. 2024

나의 첫 번째 창작물, 그러니까 시작은 이러했다

함부로 열심히 했던 결과


신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쌀쌀한 봄이었다.

대학교 입학이라는 캠퍼스의 낭만과 스무 살 청춘의 설렘 사이에서 나는 지독히도 낯선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과 출신도 아니었고 심지어 문과 출신도 아니었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생리학을 배우게 되었다.


생리학 첫 수업에서 배운 뉴런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정말 생소하고도 어딘가 와닿지 않는 먼 단어로만 느껴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 화이트보드와 교수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우리 반 학생들을 둘러봤다. 턱을 괴고 펜을 굴리는 친구, 책상 밑으로 휴대폰을 만지고 있던 친구,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던 친구. 모두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인 것 같아 나도 조금은 그들과 동질감이 생긴 것도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나를 제외한 반 학생들 대부분은 나처럼 뉴런과 시냅스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던 게 아니라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또 들어서 지루함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지도 교수님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학번 순서대로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 교수님과 진로 적성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학업 계획과 포부, 그 외 궁금한 사항들을 이야기 나누기 위해 모두가 같은 방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100번째. 내 순서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응, 그래. 오름이는 학교생활은 할 만하니? 공부하는 건 어때? 힘든 건 없고? 궁금한 건 뭐든 물어봐.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일대일로 면담할 기회가 많지는 않거든”


교수님의 질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다른 학생들은 무슨 질문들을 하고 어떤 고민들이 있을까. 중간고사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학과 생활을 슬기롭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물어봤을까?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면 학점이 몇 이상이 되어야 하는지, 소위 말하는 빅 5 병원에 들어가려면 자소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토익과 토플은 어느 정도 수준이면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다들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슬기로운 대학 생활이 뭔지도 모르겠고 좋은 직장, 큰 병원의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토익 토플 점수에도 관심이 없었다. 자소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내가 가고 싶은 병원에 취업하려면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모두가 꿈꾸는 직장에 입사하려면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다만 나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입만 달싹거리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지도 교수님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교수님께 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이야기로 입을 뗐고 면담을 나누면서 눈물을 보였다.


“저는 간호사가 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 같은 애는 아픈 환자를 돌볼 자격이 없어요...”


“저는 간호학과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에요. 돈 벌려고 왔어요.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왔을 뿐이지 공부도 재미없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에요. 그래서 반 친구들이랑 대화도 잘 안 통하는 것 같고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요.”


“다들 학점이니 스펙이니 열심히 사는데 저는... 모르겠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잘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간호사는... 봉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남을 도와주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선한 마음으로 대가 같은 거 바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들을 위하고 돌봐야 하는 직업인데 저는...”


“이런 마음으로 간호사가 되겠다고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일이 너무 괴로워요. 교수님, 저 같은 애는 의료인 자격이 없는 거 아닐까요? 어디다 말할 데도 없고 혼자 외딴 세상에 남겨진 것처럼 겉도는 느낌으로 매일매일 학교에 와요.”


“교수님 저는 자퇴를 하고 싶어요... 제가 이런데, 이런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서 졸업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일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자격이... 없어요”



나는 조그마한 과 사무실 안에서 교수님과 마주 앉은 책상 위에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며 한참을 끅끅대다 울어 젖혔다.

교수님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계시다가 내가 울음을 어느 정도 멈추자 내 손에 휴지를 쥐어주셨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오래된 필름 카메라 속 사진처럼 고정된 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오름아,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해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래서 오름이 네가 간호사가 되어야 하는 거야.”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친구들, 일반 시민들에게 다 물어봐 봐. 직장을 왜 다니냐고. 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 것 같니?”


“직장이 좋아서 다니는 사람은 없어. 있다고 해도 극소수야. 오히려 오름이 네가 이런 생각들을 한다는 게 환자들을 위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거겠지? 그래서 오름이 너 같은 친구들이 간호사를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또 막상 일을 해보면 다를 수 있거든. 그렇게 해봤는데도 나랑 맞지 않는다고 하면 그땐 그냥 돈을 벌러 다닌다고 생각하면 돼.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 돈을 벌려고 직장을 다니고 매일매일 싫어도 회사에 출근을 해. 먹고살아야 하니까.”


“오름이 네가 정 그때 가서도 일이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생각을 바꾸면 돼. 환자를 돌보러 왔다, 남을 간호한다, 봉사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나는 그냥 단지 돈을 벌러 왔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다니면 돼. 그러면 스트레스 덜 받고 직장에 다닐 수 있어. 다들 그렇게 살고 있거든. 나라고 이 일이 좋아서만 계속했겠니? 너희 선배들도 다 좋아서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다들 먹고살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오름이 너처럼 오히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간호사를 하는 게 맞아. 오름이 너는 정말 좋은 간호사가 될 거야.


그러고 보면 어릴 적에 부모님도 비슷한 말들을 자주 했던 것 같았다.

‘아빠는 이 일이 좋아서 몇십 년째 하고 있는 줄 알아? 다 너희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야. 먹여 살리려고.”

텔레비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먹고 사려고 하는 거죠 뭐.’


그래, 다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다.

먹고살려고.

다들 먹고살려고 이렇게 한다.



그런데 정말...

다들 이렇게 산다고?


남들이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고 말할 때 그 말을 인정하기보다 나의 마음에서 계속해서 피어나던 질문을 조금 더 진지하게 묻고 고민해 보면 좋았을 텐데.


정말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아서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산다고?

먹고살려고 어쩔 수 없이 싫어도 참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게 맞는 거라고?


그때 내 의견을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대학교를 자퇴했었더라면.

‘지도 교수님의 조언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전 제 인생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볼게요’라고 조금 더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간호사는 취업 100퍼센트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여러 직업과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았더라면.

부모님의 기대감, 경제적 환경, 집안의 장녀로서 나의 꿈을 추구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서 가정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그 모든 생각들에서 벗어나 나를 믿어줄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시작이 달랐으니 결과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때는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 만든 주위 모든 환경과 사람들을 원망하며 탓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주위 환경이 어떻든,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했든, 주위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기대하고 평가하든지 간에 나는 나를 믿고 나의 선택을 존중했어야 했다. 남 탓을 할 것이 아니라, 환경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탓해야 한다면 나는 나를 제일 먼저 탓해야 했을 것이다.

결국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렸고 휩쓸려버렸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결국 그날 나는 과 사무실에서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되었다.

행복해질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의 목표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열심히 했다.

싫지만 나름대로 애를 쓰며 최선을 다했다.

함부로 열심히 살지 말라는 이야기의 숨겨진 의미를 이제는 안다.

하지만 스무 살, 그 어린 날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기 싫은 전공, 원하지 않았던 대학, 바란 적 없는 진로였지만 그럼에도 남들에게 뒤처지는 게 무섭고, 좋든 싫든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고 싫어도 참고 버티게 만들었으며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 뒤처지지 않으려면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렇게 나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나름대로 꽤 괜찮은 학점과 스펙으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시작이었다.


함부로 열심히 살아온 결과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어떻게 다시 풀어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의 엉키고 엉킨 실타래.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내 인생의 첫 번째 창작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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