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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Oct 13. 2024

아프냐 나도 아프다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아이러니


“선생님, 저 열나는 것 같은데 열 좀 재주실래요?”

삐빅 -

“네, 37.3도 측정되셨네요. 약간 미열이 있으신 것 같은데 다른데 불편한 곳 있으세요?”

“아, 아니요. 혹시 몰라서 재본 건데 괜찮은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불편한 부분 있으시면 벨 눌러주세요~“


여기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인지 고깃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진동벨과 콜벨 사이에서 이제야 고요함을 찾은 때였다.

밀린 차팅을 입력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휠체어 끄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지끈지끈, 타이레놀을 몇 알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쉴 새 없는 두통이 알람을 울렸다. 어느새 간호사 스테이션 가까이 다가온 휠체어가 보였다. 미리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보호자 따님 곁에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60대 여성 환자분이 보였다.


“어디 불편하셔서 나오셨어요?”

“선생님, 엄마가 열나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체온 좀 재주세요.”

“네, 잠시만요.”


그날따라 유독 체온 측정을 해달라는 환자, 보호자분들이 참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잠시 후 체온계 화면에 측정된 36.9라는 숫자.


“체온은 정상 체온입니다. 혹시 오한이나 두통 같은 다른 증상은 없으세요?”


두 번을 더 측정했지만, 숫자는 똑같았다. 36.9

혹시나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체온을 측정해 드릴 의향이 있었고 환자분이 원한다면 그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지만 60대 여성 환자와 따님 두 분 다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살짝 어색한 미소와 함께 병동 복도를 떠나셨다.


휴, 이제 다시 밀린 차팅을 마저 해볼까.

그런데 어디까지 내가 작성했더라. 환자분의 명단과 기록을 살펴보며 모니터로 조금 더 가까이 고개를 내민 순간, 머리가 띵- 시야가 흐렸다가 명확해지기를 반복했다. 그제야 아까부터 나를 짓누르던 두통과 몸의 열기가 확 정수리로 퍼져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뚜껑이 열릴 것 같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내 정수리 뚜껑을 열면 김이 폴폴 날 것만 같은 뜨거움. 이상징후였다.


알코올솜을 꺼내 들어 체온 측정계를 소독하고 귀에 꽂아 넣었다. 잠시 후 삐빅- 소리와 함께 측정된 체온은 38.6도.


이미 타이레놀은 먹을 만큼 먹었다. 여기서 약을 더 먹었다가는 간에 부담이 될 것 같아 두통과 열감을 삼켜내며 시계를 쳐다보던 그날, 이제 한 시간쯤 남았다.


한 시간 후면 퇴근이다. 제발, 그때까지만 참자. 제발 참아줘, 내 몸뚱이야.






그리고 다시 2021년의 어느 날이 되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의 공포에 떨며 팬데믹의 시작과 과정을 동시에 걷던 어느 날, 의료진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한 그날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 나는 이브닝 근무를 앞두고 이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했다. 내 뒤로도 수많은 의료진이 접종을 위해 흰 가운과 유니폼 소매를 걷어 팔뚝을 내보이며 서있었다. 이거 맞으면 코로나 증상의 위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때. 어쨌든 병원에서 근무를 계속해야 했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려면 내 몸이 건강해야 했다. 그렇기에 정부 지침을 따르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을 마치고 병동으로 복귀했다. 근무 시작이다.




“선생님, 열나는 것 같은데 체온 좀 재주세요.”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 같은데.

그날도 유독 체온을 측정해 달라고 요청하시는 환자 보호자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몇 년 전 어느 날과 비교하면 병원 안에 있는 모두가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고 있었다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그날의 상황과 대사 모두 비슷했다.


“37.1도입니다. 오한이나 기침, 콧물, 가래 증상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한번 재봤어요. 괜찮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이네.”

“네~ 지금은 따로 열은 없으신데 혹시 불편하신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비슷한 상황, 비슷한 대사.

그 몇 년 전의 열감과 두통이 떠오르자 갑자기 온몸에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몰랐던 건지 아니면 이제야 눈치챈 건지 모를 정도로 몸이 뜨거웠다. 그런데 몸의 열감과는 별개로 팔다리가 욱신거리며 자기 멋대로 덜덜 떨려오는 근육의 움직임 또한 느껴졌다. 오한이 시작됐다. 아, 이게 바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후 시작된 발열인가 싶었다. 오케이, 시작됐군.


시작은 38.0이었다. 이미 타이레놀을 두 알 먹은 상태였다. 상황은 비슷했다. 내 옆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도 두통을 호소했고, 선생님의 체온 역시 38.5도를 웃돌았다. 함께 일하는 다른 선생님들 역시 비슷했다. 38.3도, 38.8도 비슷비슷한 체온을 공유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괜찮냐는 말로 격려했다. 이 정도는 우리 모두 참을 수 있잖아. 그렇죠?


웬만한 아픔이나 통증은 무디게 생각하는 편이고 또 잘 참는 편이었다. 나도 그랬고 옆에 있는 선생님도 그랬다. 타인의 아픔에는 공감하며 위로하지만 막상 나의 아픔과 힘듦은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이 정도는 뭐, 괜찮지. 죽는 병도 아니고, 이 정도는 참을 만하지 뭐.


처음엔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점점 곁에 있는 선생님들 얼굴이 굳어갔다.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복용 권장 시간을 지키려면 아직 두 시간 정도가 더 남아있었지만, 아픔과 통증을 참지 못하고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넣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 반팔 유니폼을 입고 있어 솜털이 솟고 오한을 참지 못한 선생님들이 결국 옷장 안에 걸려있는 카디건까지 빼 입고 팔뚝을 문질러댔다. 생각보다 강력한 증상이었다.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더 심각한 건가? 아직 정확한 데이터도 없었고 주위에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맞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 물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선생님, 열 한 번 다시 재보세요.”

“그래야겠어, 아무래도 이상해. 생각보다 센데?”


그때까지도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웃으며 위로했다. 38도대 정도 체온쯤은 괜찮으니까. 그런데 체온 측정계가 39도를 가리키면서부터 우리 병동을 맴돌던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39도? 생각보다도 더 센 놈인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만병통치약이라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타이레놀은 더는 우리 몸 안에서 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쳤을지도 몰랐다. 더는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욱신거리는 팔뚝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한겨울 추위를 맨몸으로 맞서는 것 같은 오한에 시달리며 마침내 모두가 체온 40도를 돌파했다.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다. 이후로도 체온 측정을 해달라는 요구는 빗발쳤고, 저녁 주사를 돌기 위해 방문한 병실 곳곳에서 내 안색을 살피는 환자 보호자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빨개요.”

“선생님... 주사 맞아서 그러신 거예요? 어떡해... 얼굴이 엄청 아파 보여요...”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괜찮은 얼굴이 아니었다. 좀처럼 아픈 티를 내지 않는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더욱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티가 났나 보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려 고개를 흔들어댔다. 흐려지는 시야와 송곳 바늘로 관자놀이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두통, 마치 보이지 않는 진동마사지기로 내 팔다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온몸의 떨림.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경험을 몇 시간이나 체험한 후에 마침내 퇴근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들어가셔서 푹 쉬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마지막으로 병동을 나서기 전 우리는 다시 체온을 쟀다. 각각의 체온은 모두 달랐지만 평균은 여전히 39도를 넘은 상태였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던 그날 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밤이 늦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내 안색을 확인하더니 계속 한숨을 쉬어대던 그날의 부모님 숨소리.


“다 죽어가네, 아휴. 환자들은 뭐라 안 하디?”

“응 그냥 뭐. 생각보다 엄청 아프다. 나 이렇게까지 열나는 거 처음이야. 아까는 40도 넘어갔었다니까, 죽는 줄 알았어. 물론 죽지는 않았지만 “


쯧쯧,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속상한 듯한 엄마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세수를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도저히 샤워를 할 컨디션도 아니었고 빠르게 양치와 세수만 하고 이 무겁고 축축한 몸뚱이를 침대에 눕히고 싶었다. 푹신한 이불을 덮고 기절하듯 잠이 들고 싶었다.


물을 틀어놓고 세수를 하며 연거푸 얼굴을 닦아내다가, 정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것도 눈물 세수인가. 슬픈 것도 아니었고 평소에도 있던 일이었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난 거지? 눈물이 났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더 눈물이 쏟아졌다.


뭐야, 나 왜 울어? 내가 지금 큰 병 걸린 것도 아니고 나보다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울긴 왜 울어. 누가 보면 죽는 줄 알겠네. 야, 너 이러면 안 돼. 네가 지금 울 때가 아니야. 이건 시간 지나면 낫는 거야. 자고 나면 다 낫는 거라고. 열 그까짓 거 40도 좀 넘어갔다고 울긴 왜 우냐 바보같이.


흐르는 물에 얼굴을 계속 닦아내고 가까스로 진정한 후에 수건으로 벅벅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수건으로 문지른 탓인지 아까부터 그랬던 건지 그도 아니면 울어서 그런 건지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하루 밀려왔던 서러움이 올라오는 것도 같았다. 그래, 감사한 일이고 또 감사한 일이지. 나는 지금 건강하다는 게 감사한 일은 맞는데. 오늘 하루는 조금 힘들다. 나도 아픈데, 이렇게 아픈데. 누가 누굴 돌보고 간호하고 있는 거지?


문득 어느 날 방송에서 들었던 임재범 가수님의 여러분 노래가 생각났다.

내가 힘들고 아플 땐 누가 위로해 주지?


그 노래 가사를 생각해보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나는 분명 몸이 아프고 힘들고 편찮은 사람들을 돌보고 간호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맞는데. 그게 당연한 건데. 그런데 오늘처럼 나도 많이 아프고 유독 지치고 힘든 날은... 그래서 내가 힘들고 아플 땐 누가 날 위로해 주지?




+현재도 의료계에서 최선을 다하시며 열정을 쏟아 의료와 간호를 제공하시는 모든 의료 관련업계 종사자 선생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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