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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Dec 29. 2021

도피의 쓸모

뉴욕의 여름이 얼마나 습한지 알게 되었던 해. 



필름 카메라 시절, 부지런히 도망(?) 다녔던 흔적이 담긴 사진을 상자 하나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채 꺼내 보지 않은지 이십 년 가까이 된다. 틈만 나면 떠나는 이십 대 작가의 글을 읽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내 ‘도피 시절’이 떠올랐다. 


상자 뚜껑을 열자 사진들이 깊은 어둠에 갇혀 제멋대로 포개져 있었다. 전문 도망꾼이었던 내가 묵묵하게, 그러나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문을 개방한 댐이 한꺼번에 엄청난 물을 쏟아내듯이 상자에 고이 잠든 내 청춘이 쏟아져 나왔다.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봄의 니스 해변에서 앉아 있는 내가 있었다. 니스로 갈 때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작은 소동이 떠올랐다. 투르역에 예약한 기차 시간보다 일찍 가서 기다렸다.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차장에게 기차가 왜 안 오는지 물었다. 차장은 “기차는 이미 떠났어요.” “그럴 리가요. 내가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기차는 안 왔다구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우겨봤지만, 오지 않는 기차를 탈 방법은 없었다. 두 시간쯤 기다려서 다음 기차를 타고, 저녁에야 니스에 도착했다. 니스역에 내려서 역에 걸린 커다란 시계와 내 손목시계가 다른 시간을 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니스 호스텔의 시계도 내 손목시계와 다른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시간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이상한 나라에 사는 토끼가 된 것 같았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이유를 알았다. 서머타임이 시작되었지만, 뉴스를 보지 않아서 몰랐다. 웃음이 났다. 한 시간 늦게 갔으니 예약한 기차는 당연히 떠나고 없을 수밖에.     

 

 꽃무늬 셔츠를 입고 타임스퀘어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면서 위계질서 가득한 학교 분위기에 숨이 막혔다. 여름 방학을 틈타 뉴욕으로 도망쳤다. 한 달 동안 매일 뉴욕 거리를 쏘다녔지만, 답답한 마음은 뚫리지 않았고, 오히려 갈증만 났던 기억이 났다.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걸었지만, 갈증은 심해지고 허기가 졌다. 허기를 채우고 갈증을 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고, 그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다. 골목에 있는 갤러리와 영화관을 찾아다니며 고단했다. 나만큼 지쳐 보이는 사람들의 옷깃을 스쳤다. 무언가 더 나은 게 있을 거라고 믿고 뉴욕에 정착한 이들의 얼굴은 어둡고 표정이 없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며 애타게 찾아다니던 나도 누군가에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행복, 더 나은 미래 등 떠다니는 추상적인 말을 잡으려고 허공에서 두 팔을 휘두를 때였다. 

 미국독립기념일에 허드슨강이 보이는 뉴저지 다리에서 사람들 틈에 섞인 모습도 보였다. 별다른 감흥 없이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술렁거리는 낯선 분위기에 적응해 보려고 했다. 나는 왜 뉴욕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걸까. 


 친구와 몽생미셸 수도원 앞에서 수도승처럼 검은 옷을 입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친구가 파리에 놀러 와서 함께 프랑스 북부를 여행했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생 말로에 도착해서 머물 숙소를 구하지 못해 망연자실했던 오후가 담겨있었다. 일주일 동안 친구와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의 내면을 더 알게 되어 기뻤지만, 같은 이유로 힘들었다. 힘들어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 동료들과 소양강으로 워크숍 갔을 때 찍은 사진도 있었다. 바지통이 넓은 청바지와 짧은 티셔츠를 입고, 볼캡을 쓰고 동료들 사이에 있었다. 직장 내 단체 행사에 내키지 않아도 참석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퇴사를 꿈꾸었다. 그리고 어느 해 정말 퇴사했다. 그때 동료들이 한마디씩 써서 준 작은 노트도 있었다. 송별회 의식(?)을 담은 노트를 받은 일은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노트를 건네받던 순간을 찾을 수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다르게 목표도 분명하고 열정적이었던 이들이 쓴 짧은 문장에 나도 모르는 내가 들어있었다. 나도 잊고 있던 나를 읽었다. 뭉클했다.     


 나는 쓸모없는 도피에 젊음을 탕진한 건 아닐까. ‘저기’에서라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 서사를 지어내곤 했다.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 내가 나인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자꾸 달아났다. 내면에서 고개를 드는 질문에 치열하게 답하는 대신 비행기에 오르면서 ‘저기’에 답이 있다고 나를 속였다. 결국 저기가 어딘지 모른 채 돌아왔지만. 


 낯선 도시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는 고민이라고는 어느 골목에서 헤맬지였다. 골목에 있는 집 안의 일상은 내 것과는 다를 거라고 믿으며 굳게 닫힌 문 안을 기웃거렸다.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까지 걸으며 새로 만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드는 창조자였다. 


 서울에서는 나는 규칙을 따르는 사람일 뿐 내 의지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가하게 골목을 걷고 싶어도 대단한 결심을 해야 했다. ‘바쁨이 정상’인 사회에서 한가하다고 말하면 모자라 보였다. 목적 없이 다른 동네를 어슬렁거리면 ‘이 시간에 이래도 되나’하며 슬그머니 눈치가 보였다. 빈둥거리는 일이 체질인데. 분위기 탓인지, 당당하지 못한 탓인지, 자꾸 주변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했다. 타인의 시선과 규칙을 벗어던지는 방법은 도망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돌아와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에 젖은 종이처럼 축 처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연습을 꾸역꾸역 반복했다.      


 뒤늦게 들어간 영화과 대학원을 마치려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현실과 타협은 그만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졸업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했다. 학문은 나를 구원해 줄 도구가 아니었다. 목적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던 공부에서 갑자기 길을 잃어버렸다. 막연하게 바라보는 것과 실제로 몸을 던져 헤엄치는 일은 언제나 다르다는 걸, 겪어야 깨닫곤 했다. 영화를 보면 나도 막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빈 페이지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보면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내 주특기가 발동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목적 없이 읽고 사유 과정을 거쳐야 빈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걸 기다리지 못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파는 사람들의 숨은 뜻을 읽지 못했다. 소비사회에서 꿈을 이루는 것은 지갑을 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살 수 있는 꿈은 진짜 꿈이 아니었다. 꿈을 사서 이루어도 공허했고, 금방 싫증이 났다. 진짜 꿈을 이루려면 우직한 시간을 보내며 땀을 흘려야 했다. 땀은 정직하다. 하지만 나는 땀 흘리는 대신 게으름과 사이좋게 지냈다. 번번이 뜻하지 않은 곳에 가 있었고, 재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다. 어쩌면 포기할 구실을 열심히 찾았는지도 모른다. 열정 결핍, 재능 부족이라고 스스로 규정해 버렸다. 그만두는 구실을 찾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고 그럴듯했다. 돌아보면 나는 쉬운 길이 보내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건 아닐까. 비겁함을 숨기느라 허겁지겁 떠난 건 아닐까. 낯선 도시로 떠나려면 일정한 용기가 필요했고, 무작정 떠날 한 줌의 용기에 위안을 얻은 건 아닐까.


 낯선 도시에서는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마음에 안 드는 나를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 여행은 게으름을 떨치고 현재를 강렬하게 느끼는 방법이었다. 최선이 아니어도 받아들여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으니까. 그것이 만족이든 체념이든 깨달음이든. 체념과 만족은 냉동 피자와 화덕피자만큼의 차이가 있다. 화덕에서 구운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진짜 피자 대신 딱딱하고 조미료 맛이 도는 ‘피자 같은 맛’에 만족하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 도시 저 도시를 수도 없이 기웃거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기웃거림이 아주 쓸모가 없진 않았다. 미지근한 시간이 쌓여 뜻밖에 뜨거운 시간이 되기도 했으니까. 도피자로 살면서 진짜 ‘지금, 여기’에 있는 법을 터득해갔다.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옷을 입고, 명품이 아닌 가방을 메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걷는 사람들의 지혜를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십 년은 묵은 낡은 외투를 입고도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따뜻함은 낡지 않은 것을 훔쳐보았다. 너덜너덜한 마음에 비싼 신상 외투를 입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갖는다고 해서 내 정체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물건에서 생기는 게 아니다. 정체성은 생각, 태도, 습관, 취향, 말투에서 나온다. 존재 자체만으로 반짝거렸던 청춘기에 잦은 도피를 통해서 얻은 결론이다. 그러고 보면 도피가 무조건 나빴던 건 아니다. 어떤 도피는 해 볼 만 하다.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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