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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Jan 01. 2022

Where are you?

@브라이언트 파크, 뉴욕. 사진출처 tripsavvy


여름 뉴욕 거리는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였다. 거리마다 공연이 넘쳤고, 가볍다 못해 헐벗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긋했다. 곳곳에서 들리는 버스킹 음악이 거리를 채웠다. 음악이 들리는 어느 곳에서든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곳이 최고의 공연장이 되었다. 분위기에 취해 습하고 끈적한 뉴욕의 더위를 잊기에 좋았다. 


 나는 숙소가 있는 뉴저지에서 아침마다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장기 여행자였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버스를 타고 거리로 출근했다. 거리를 쏘다니는 것이 내 일이었다.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가서 돌아다녔다. 뉴욕 주간지 <빌리지보이스>를 뒤적이며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알 수 없는 갤러리 정보, 예술영화 상영이나 이벤트 정보를 얻곤 했다. 내 정신의 곡식을 찾아가는 길에서 뉴욕이 감추고 있는 표정을 읽어내려고 애썼다. 


어느 날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영화 상영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상영 영화는 <러브 스토리>였다. 고등학생 때 탈출구 중 하나는 <TV 명화극장>을 보는 것이었다. 많은 영화를 이 프로그램에서 보았고, <러브 스토리>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배경 음악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프란시스 레이의 ‘Snow Frolic’. 제니와 올리버가 눈밭에서 눈싸움을 할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이 명장면을 뉴욕 한복판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렜다.      


 손꼽아 기다리던 디데이가 왔다. 평소처럼 뉴욕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영화 상영 시각보다 두어 시간 일찍 공원에 갔다. 한여름 브라이언트 파크 잔디는 물오른 초록빛이었다. 쏟아지는 햇살에 반사된 초록빛에 눈이 부셨다. 잔디밭 한쪽에는 영화 상영을 위해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뉴욕 한복판, 초록이 눈부신 공원에서 시크한 뉴요커들 틈에 섞여 영화를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팔딱거렸다. HBO 건물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커피를 홀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해가 완전히 지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직딩처럼 보이는 뉴요커들이 하나둘씩 공원에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Where are you?”가 들렸다. 귀를 쫑긋하고 들었더니 휴대전화 너머에 있는 일행에게 위치를 묻고,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어느새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빈자리가 드물었다. 먼저 자리 잡은 일행은 나중에 와서 두리번거리는 일행에게 손을 높이 들어 신호를 보내곤 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피크닉 매트를 펴고 삼삼오오로 모여 앉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장애물 피하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걸었다. 급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몸이 어색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이 연출되지 않은 몸짓이 끝나면 사람들의 만남이 완성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뉴욕의 힙한 장소에서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여름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일행을 만나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영화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작은 파티를 열려고 모인 것처럼 보였다. 와인잔을 서로 부딪치고, 맥주잔을 들고 오갔고,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으며 도란거렸다. 나는 야외 영화 상영이 품은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문화에 살았던 터라 그때까지 야외 상영을 본 적이 없었다.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친구나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나처럼 혼자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술 시간에 그림물감을 안 챙겨가서 주어진 시간에 할 일 없는 학생처럼 어색하게 자리를 지켰다.      


여름에는 다른 계절에는 느낄 수 없는 활기가 있다. 여름 오후 빛 속으로 가볍게 입은 사람들이 내뿜는 고유한 법석임이 대기를 채웠다.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법석임 탓인지, 여름 공기의 뜨거움 탓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아무튼 두 활기가 만나 공원은 순식간에 거대한 축제장이 되었다. 해가 뉘엿거리자 여름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 속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기분이 들었다. 대기는 뜨거운데 가슴 한구석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몄다. 뉴욕 거리에서 그토록 탐냈던 자유인이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혼자였다. 자유가 차고 넘쳐서 이날만큼은 자유가 짐스러웠다. 곁에 있는 아무나 붙잡고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쫑알거리고 싶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자유를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쩌다, 왜, 여기 있는가. 두 시간쯤 내적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음을 달리 먹으려고 앉아 있는 자세를 바꾸고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사람들이 보여주듯이 축제를 즐기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해는 더디게 넘어갔다. 뉴욕을 진짜 즐기는 법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구경했지만, 마음도 몸도 기운이 점점 빠졌다.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내 자리를 맡아줄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역사적(?) 순간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린 시각은 9시 무렵이었다. 지쳐서 더는 못 기다리겠다, 싶은 순간에야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웅성거리는 불특정 다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준비물 안 챙겨와서 벌서는 것 같은 시간이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영화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제니와 올리버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엉뚱한 다짐을 하곤 했다. ‘다음에 브라이언트 파크 같은 야외 영화 상영에는 혼자 오지 않겠어, <러브 스토리>는 혼자 보지 않겠어.’ 하고.      


 영화 같은 하루를 보낼 거라고 기대했지만, 나는 이름 없는 관객일 뿐이었다. 영화 감상은 두 시간 동안 현실을 벗어나 가상 세계에서 주인공이 되어보는 체험이다. 여행자로 낯선 도시에 머무는 것은 영화 감상과 비슷했다. 뉴욕이 아무리 매력적인 도시일지라도 나는 잠시 머무는 여행자이자 구경꾼일 뿐이었다. 내 진짜 삶은 뉴욕에 없었다. 내 삶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에 있었다. 진짜 삶이 빠진 뉴욕 골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나를 돋보기를 들고 확대해 보았다.


 등을 돌려 달아나고 싶었던 현실이, 생활의 무게가 만들어내는 까탈스러움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내가 주인공인 애증의 도시, 서울로 달려가고 싶었다. 매캐하고 유해한 서울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역동적이어서 따라가기 버거운 속도를 자랑하는 서울의 품에 와락 안기고 싶었다.      


 떠남은 뜻밖에도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순간을 몰고 온다.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이야말로 내 것이란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있을 곳은 이벤트가 있는 곳이 아니라 일상이 있는 곳이다. 진짜 삶의 향기가 무엇인지, 떠나봐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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